봄이다. 화사한 햇살에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한껏 기지개를 켠다. 이맘때가 되면 주부들의 손길이 바빠질 때다. 젓갈 냄새 풍기는 김장김치와 소금에 절인 동치미를 뒤로하고 냉이, 쑥, 미나리처럼 파릇파릇해진 봄나물로 식탁을 풍성하게 꾸며본다. 어디 변하는 것이 사람 입맛뿐이랴. 환한 봄볕은 집 안 구석구석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먼지들을 모조리 일망타진하라고 부추기며 할 일 많은 주부의 마음을 한가로운 대청마루에 붙들어 놓지 않는다.
포근한 감촉으로 긴긴 겨울밤 동무 삼아 뒹굴던 묵직한 무게의 이불들도 봄 처녀의 날개옷처럼 곱고 가벼운 이불로 변신한다. 옷장 문을 활짝 열고 추위를 버티게 해 준 겨울옷을 세탁소로, 옷장으로, 분리 수거통으로 보내며 봄을 맞이한다. 양파 껍질처럼 겨울의 잔상을 홀라당 벗겨내면서도 다시 다가올 삼동을 준비해야 하는 애잔한 삶의 고뇌가 있다. 세월에 밀려가듯 변덕스러운 봄 날씨 앞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때이기도 하다.
좁은 옷장 가득한 옷 가운데 유독 마음 가는 옷이 있다. 선뜻 버릴 수도 없고 아무도 걸칠 수 없는 낡은 오버코트 한 벌. 이 옷의 주인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이다. 아버지는 키가 커서 오버코트가 잘 어울리셨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의복이 단정하고 신발은 정갈했다. 딸 막내인 나는 아버지의 전속 구두닦이였다.
“은하야! 아빠 나가야 하니까 구두 닦아 두어라.” 하면 나는 작은 입을 삐쭉거렸다.
“왜 맨날 아빠는 나만 시켜.” 투덜거리면서 햇볕 따뜻한 툇마루에 쪼그려 앉았다. 캥거루가 그려진 오래된 구두약 뚜껑을 열면 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낡은 옥양목 헝겊에 굳어지고 갈라진 구두약을 힘껏 문질러서 아버지의 어깨너머 배운 어설픈 솜씨로 빛바랜 구두를 닦았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젊은 부모님과 고만고만했던 형제들의 모습이 산머리에 아지랑이 걸터 서성거리듯 아련해진다.
다섯 자식 모두 결혼시키고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신 부모님은 자주 여행을 다니셨다. 두 분이 외출하실 때면 어머니가 화장이 끝날 때까지 아버지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가만히 기다려주셨다. 가끔 입술 바르는 것을 잊은 어머니에게
“루주도 마저 발라야지.” 하며 챙겨주셨다. 외출하시는 아버지의 겉옷은 어머니가 늘 단정하게 입히셨다.
하지만 부모님의 봄날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건망증이 좀 심한 정도로 생각했던 어머니는 결국 치매 진단을 받았고 요양원으로 떠나셨다. 어머니가 안 계신 아버지의 의복은 항상 제철이 아니었다. 겨울에 반소매를 입고 여름에 겨울 스웨터를 입으셨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아버지는 다섯 자식의 집으로, 병원으로 계절을 잃은 채 전전하시다 몇 년 전 참으로 고단했던 삶을 뒤로 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단어들은 뜻이나 의미를 다르게 품기도 한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단어의 뜻은 평생 어머니의 눈물이며 짐이었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의미는 어머니의 그림자였다. 내가 어머니를 바라보기 위해 품을 수밖에 없는 그림자였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왜 이 외투에 유독 마음이 갔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여순반란사건으로 하루아침에 군인이던 형과 어머니를 잃은 중학생의 막내아들이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다섯 자식의 아버지가 된 내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 김 동 수라는 이름의 흔적을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가려진 서툴고 부족하기만 했던 이 어설픈 남자를 안아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라는 무게가 버거워질 때마다 ‘내 아버지도 이 무게감으로 힘들었겠구나.’ 하는 때늦은 미안함인지도 모르겠다. 집 밖을 나서는 아버지의 외투 자락을 털어주며 수줍게 미소 짓던 어머니와의 짧았던 봄날의 기억들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바닷가에 오두막집 한 채 짓고 네 엄마랑 살았으면 좋겠다.” 하며 요양원으로 떠나신 어머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셨던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무겁기만 하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한다. 어쩌면 비극과 희극 사이에 우리의 인생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랑 잘 지내시죠. 아프지 말고 행복하셔요.”
천국 바닷가에 작은 집 짓고 오손도손 지내고 계실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외투 깃을 높이 세운 훤칠한 아버지와 목화송이처럼 수줍음 많은 어머니가 바닷가를 거니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려본다. 주인 잃은 낡은 오버코트에 가만히 얼굴을 부벼 본다. 낮은 흐느낌이 물결처럼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