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쌀쌀하다. 나는 매일 치과 병원에서 두 시간씩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청소 두 시간 정도면 할 만하겠네.”
하고 시작을 했다. 하지만 아침 이른 시간에 그것도 요즘처럼 날씨가 춥거나 비라도 내리면 선뜻 집을 나서기가 싫어질 때가 많다.
“이 세상에 남의 지갑에서 돈 빼내는 일만큼 힘든 일이 없단다.”
하시던 엄마 말씀이 생각나면서 혼자 또 고개가 끄덕끄덕해진다.
치과 병원에는 아홉 명의 간호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나는 간호사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마무리 한다. 그래서 그녀들과 자주 대면하지 않는다. 사실 아홉 명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직원 사진 속에서 각자의 이름과 같이 웃고 있는 간호사들은 뉘 집 딸들인지 한결같이 곱고 예쁘다.
지금은 이렇게 곱고 예쁘게만 보이는 간호사들이 내가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무섭게만 보였을까? 지금도 병원 문턱을 넘자마자 자지러지게 우는 꼬마 친구들을 보면
“나도 네 마음 알아.”
하며 토닥여 주고 싶다.
우리 형제는 오빠와 언니, 나 그리고 귀여운 남동생이 두 명 있다. 오빠부터 막내까지 다섯 형제는 모두가 대성 초등학교 동문이다. 거의 두 살 터울의 우리 형제들은 항상 똘똘 뭉쳐서 잘 놀았다. 오빠가 동네 아이들과 딱지나 구슬치기를 하면 언니와 나는 딱지 통 과 구슬 통을 들고 오빠의 전리품들을 수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 다섯 명은 패를 나누어 집 마당에 금을 그어가며 부동산의 중요성에 일찍 눈을 뜬 땅따먹기를 했다. 오빠와 내가 한패를 하고 주로 언니와 동생들이 한패를 이루었다. 조그만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며 수학의 덧셈과 뺄셈, 그리고 손가락 유희를 배웠다.
해가 진 어두운 밤이 되어도 우리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우리 다섯 명은 이불 속에 줄줄이 누워 오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이야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눈썹 없는 간호원’ 이야기는 워낙 무서워해서인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오빠는 전기 불을 끄고 우리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어느 깊은 산골에 병원이 하나 있었대. 그런데 그 병원에는 눈썹 없는 간호원이 살고 있었대!”
오빠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지르며 이불 한가운데로 가려고 아우성친다. 금방이라도 눈썹 없는 간호원이 옆에 누울 것 같은 이불 가장자리를 벗어나려고 서로를 넘나들며 자리 싸움을 시작한다.
“어제 니가 가운데 있었잖아. 오늘은 나도 가운데 가 보자.”
“왜 맨날 너만 가운데 해!”
드디어 오빠가 소리친다.
“너희들 조용히 안 하면 오늘 이야기 안 해준다.”
우리는 오빠의 협박에 얌전해졌다. 군기 반장인 오빠의 이불 속 자리 배정을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오빠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밤에 아무도 없는 캄캄한 병원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대. 뚜벅뚜벅”
이쯤 되면 우리는 간이 콩알만 해지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언니가 묻는다.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발자국 소리가 나?”
머리 좋은 언니의 질문에도 아랑곳없이 오빠는 씩씩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휙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우리는 어둠 속에서 숨이 멎을 듯 했다. 꼴깍꼴깍 침만 넘기고 있으면 오빠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으악!”
“눈썹 없는 간호원이 입에서 새빨간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웃고 있었대.”
오빠가 으악 소리를 지르면 우리는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다가 울기까지 했다. 엄마가 안방에서 쫓아오시면 오빠는 동생들을 울렸다고 형제들 대표로 야단을 맞았다. 우리는 무섭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훌쩍거리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밤만 되면 오빠를 졸라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라고 부추겼다.
환갑이 다가오는 오빠에게 난 아직 한번도
“오빠의 진짜 꿈은 무엇이었어?”
하고 물어본 적은 없다. 우리 형제들은 너무 뒤틀린 시간들을 견뎌야 했기에 서로에게 아픈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던 오빠의 꿈은 공고가 아닌 인문고, 건축사가 아닌 작가가 아니었을까? 철없는 동생들을 일찍 재워서 스무 살 차이도 안 나던 여린 엄마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 했던 속 깊은 장남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만 해본다.
밤이 깊어간다. 아련한 그 밤.
“조용히 하고 안 잘래!”
하고 소리치던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목소리도, 올망졸망 빛나는 눈으로 이불 속에 줄줄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다섯 명의 철부지들도, 대책 없이 무섭기만 했던 우리 형제들의 ‘눈썹 없는 간호원’도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