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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Aug 09. 2021

할머니와 손녀

할머니와 손녀가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요.

“오늘은 눈이 많이 쌓이겠구나.”

할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손녀에게 말을 건넸어요.

“할머니! 눈이 많이 오면 우유배달 아주머니도 힘드시겠죠?”

착한 손녀는 할머니의 굽은 손가락을 만지며 다시 물었어요.

“그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하루하루가 힘겨운 날이지.”


할머니가 사는 지하 단칸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어요.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에요. 

점점 소복이 쌓여가는 하얀 눈 위로 사람들이 조심조심 걸어가요.

할머니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손녀에게 말했어요.

“할머니가 너만 했을 때였지. 그때도 이렇게 눈이 많이 왔단다.”

하얀 눈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가는 벌써 그 시절을 더듬고 있었어요.


소녀는 길거리에서 성냥을 팔았어요.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성냥 하나만 사 주세요.” 

소녀는 힘껏 외쳤지만 매서운 찬바람은 사람들의 귀를 꽁꽁 가두어 버렸어요.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하는 날도 많았어요.

겨울밤은 무척이나 추웠어요.

소녀는 추위에 떨다가 길모퉁이에서 성냥불을 켜고 깜빡 잠이 들기도 했어요. 

지나가던 사람이 소녀를 깨웠어요.

“꼬마야! 어서 일어나. 여기서 잠들면 안 된단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서 소녀의 헐벗은 목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어요.

어떤 사람은 성냥 대신 동전을 소녀의 손에 쥐어주기도 했어요. 

마음씨 좋은 빵집 아주머니는 따뜻한 빵을 주었어요.

커다란 모자를 쓴 우유배달 할아버지는 하얀 우유를 주었어요.

허리가 굽은 세탁소 아저씨는 두꺼운 외투를 주었어요. 

돋보기안경을 쓴 신발가게 아주머니는 따뜻한 신발을 주었어요.


겨울을 버텨낸 소녀는 봄이 오면 꽃을 팔았어요.

어느 날 신문을 배달하던 소년이 다가와 수줍게 신문을 건네주었어요.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소년에게 말했어요.

“고마워. 하지만 나는 글을 읽지 못해.”

며칠 후 다시 찾아온 소년은 소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어요. 

소년은 외로운 소녀를 찾아와 글동무가 되어 주었어요. 

둘은 어느덧 사랑에 빠졌어요. 

많은 나라가 전쟁에 휩싸고 소년도 전쟁터로 떠나야 했어요. 

“전쟁이 끝나면 꼭 너에게 다시 돌아올게.” 

약속하고 떠난 소년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어요. 

소녀는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어요.

하지만 가난은 기다란 그림자처럼 소녀를 따라다녔어요. 


“할머니! 하늘에 계신 엄마와 아빠도 하얀 눈을 보고 계실까요?”

손녀는 눈물이 가득 찬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어요.

“그럼! 그렇고말고. 엄마와 아빠는 하늘에서도 너를 눈동자처럼 지켜보고 있단다.”

할머니는 손녀를 꼬옥 안아주었어요.


할머니와 손녀가 오늘밤은 따뜻한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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