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에 왔다. 키오스크에서 포장 주문을 하고 대기 의자에 앉았다. 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전화가 와있어서 연락드립니다.”
낯선 여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내가 누구한테 전화했을까?’ 기억을 더듬으려는 순간 그녀는 또 먼저 답까지 해준다.
“혹시 주문 전화하셨나요?”
“네.”
“저희 이제 가게 안 해요.”
“네.”
우리의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야근이 잦다. 저녁 식사가 마땅치 않을 때 우리는 가끔 김밥집에 전화 주문을 한 후 정해주는 시간에 찾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통화가 안 되어 근처의 다른 김밥집으로 갔다. 포장 김밥을 들고 돌아가는 길에 불 꺼진 그 김밥 가게 안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았다. 늘 비어있던 자그마한 식탁 네 개는 그대로 있었다. 식탁 의자 위에 커다란 비닐 가방이 하나 놓여있고 주인 없는 슬리퍼만 빈 가게의 냉기를 우두커니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착잡한 기분이 나를 또 휘어 감는다. 더 정확한 감정은 슬픔이었다. 슬픔마저 익숙해져야 했던 담담하면서도 처연해지는 감정이 나를 또 한없는 바닥으로 가라앉게 한다.
“사장님! 애쓰셨습니다. 입 짧은 남편이 사장님 김밥을 좋아했어요. 맛있는 음식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방금 통화한 번호로 나름의 위로 문자를 적었다. 하지만 보내지 않고 삭제를 눌렀다. 가끔은 나의 주체할 수 없는 이 오지랖이 버겁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침묵도 언어다. 나는 그녀에게 침묵이라는 언어를 전하고 싶어졌다. 인간의 어떤 위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광야 한가운데에 혼자만의 시간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오목 가슴 밑에 고이는 체기 나는 감정을 끌어안고 몸부림쳐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깊은 슬픔의 시간이 나를 다독이며 말을 건넬 때가 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나도 잘하고 싶다. 실패 많은 인생의 보상처럼 보란 듯이 우뚝 서고 싶다. 그러나 어느덧 슬픔이라는 감정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는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실패와 절망 앞에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나의 욕심과 열심을 주님 발 앞에 내려놓는다. 우리의 눈물을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산 소망을 회복하게 하실 주님을 바라본다. 쓰디쓴 이 실패의 조각들도 아버지께서 우리 인생에 허락하신 그림의 한 조각이었음을 인정하는 백성으로 살아지길 기도해 본다. 인생이란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 같다. 굴곡진 삶의 마디마다 믿음의 굳은살이 돋아나는 인생으로 살아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