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훤하게 길어진 햇살만큼이나 성큼 다가오는 봄기운이 코끝에 물씬 풍기는 아침이다. 큰 길가의 인력사무소 앞에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여러 명 보인다. 아침 일곱 시인데 아직도 일터를 찾지 못한 외국인들이다. 그중의 한 청년과 신호등 앞에 나란히 섰다.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함께 건넜다. 그러나 청년의 발걸음은 나의 느린 걸음과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한양살이에 지쳐가는 아들 생각이 났다. 축 늘어진 어깨가 안쓰러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저만치 앞서가던 그가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윽고 길가 쓰레기 곁으로 허리를 굽힌 그의 손에는 큼직한 장난감이 들려 올라왔다. 그는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우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나의 존재감이 ‘그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일부러 찻길을 건넜다. 그때까지도 그는 정신없이 장난감에 눈길을 빼앗기고 있었다. 길 건너 그의 모습을 무심한 듯 지나치며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장난감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난감에 저렇게 진심인 것을 보면 그는 아마 어린아이의 아버지 같다. 장난감을 손에 쥐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일거리를 찾지 못한 날이 늘어나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돌아갈 날도 점점 더 멀어지는 조바심에 불안해하지는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음 날도 버려진 장난감은 길거리에 그대로 있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주변 쓰레기 더미와 함께 거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길가에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 들고 살피던 젊은 아빠의 가난한 마음이 눈에 밟혀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가 아픔의 시간을 잘 견디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과 재회하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나그네 인생길에 여러 모양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연에 조금 더 친절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인연이 길가에 함부로 버려지는 장난감 같은 모습은 아니길 기도한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 등이 있다. 인생의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인연에 감사를 표현하는 시간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볕을 마주하며 엄동설한의 겨울밤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멋진 오월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는 우리의 아픈 사연을 주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곁에 있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