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2학기의 대학생, 불면증이 생겼다>_2번째 이야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 어떤 길로 가든 상관없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늘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변명하는 나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다. 방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제자리에서 전전긍긍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말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 멈춰서 있을 것이 아니라, 어느 길이든 가보면 된다는 것.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나의 지도에 새로운 길이 그어지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20대들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와 같은 고민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진로를 구체화시키기를 바라는 사회지만 당사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다.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것도 없고 확실히 경험해 본 것도 없는데, 주변에서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는 대부분의 나와 같은 대학생들은 너덜너덜해진다.
꽃으로도 사람은 때리지 말라더니 질문에서 오는 공격은 무자비하다. 그럼 나는 또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제껏 내가 겪어온 대학 생활과 시간을 거슬러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서 겪은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학교를 16년을 다녔는데 막상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알아서 만들었어야 할 ‘스펙’이 훨씬 중요했다.
이와 같은 걱정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점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소한 걱정이어도 매일 매 순간마다 고민하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걱정은 불안과 무기력을 먹고 자란다. 그렇게 자라난 걱정은 오늘 하루를 발목 잡고, 마음을 답답하게 조여오는데, 하루는 며칠이 되고 며칠은 몇 주가 되다 보니 일상이 막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나의 상황을 동정하지 않으려 했다. 우울과 무기력이 한순간 밀려와 침대 위의 나를 잠기게 할 때면, 숨이 막히기 전까지는 나의 현재를 되돌아보며 인정하고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려 했다. 그리고선 천천히 일어나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했다.
따듯한 물로 씻고, 달달한 음료 한 잔을 마셔보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 앞 공원을 잠깐이나마 걸어보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에게 괜히 응석도 부려보고, 위로가 되는 책이나 영화 대사 한 줄을 곱씹어 보며 잠시 동안이나마 힘을 얻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망치는 것도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지만, 나를 살리는 것도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오늘도 ‘하고 싶은 게 없어도 오늘을 살다 보면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또한 이제는 마음이 궁핍해져 허상일지라도 그저 풍만한 마음을 빌려서라도 안정적이고 싶어 지곤 하던 스스로가 미웠다. 주변에서 빌릴 것이 더 이상 없어서 걱정까지 대출을 하는지. 과도한 걱정 대출에 붙을 쓸데없는 이자를 생각하기로 했다. 잊지 말자, 걱정 대출의 이자는 불행을 앞당길 뿐이다. 모르는 것은 알아가면 되고 안 맞는 것은 해봐야 알 테니.
내 인생에 달린 물음표는 결국 스스로 대답해 온점을 찍어야 한다. 결국에는 그것만이 정답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