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글쓰기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엔 글쓰기는커녕 책 읽기에도 관심이 없던 내가
왜 그 강좌를 신청했는지는 아직도 약간 의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꼭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분야라도
도전하고 실행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뭘 써야 할지를 고민하지 말고, 일단 아무거나 써라.”
쓸 것이 없다면 ‘오늘은 쓸 게 없다’라는 문장부터 써 보라는 것이다.
시작이 어려울 뿐, 누구나 빈 종이와 펜만 있다면
(요즘은 빈 화면을 띄우고 키보드에 두 손을 살포시 올려본다면)
뭐라도 쓸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는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생각했다.
이렇게나 하고 싶은 게 없는데
그런 나의 삶에는 어떤 행복한 일들이 있는 걸까.
재미없는 삶을 사는 건 죽기보다 싫었던 나인데,
삶의 재미 포인트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게’ 허무하지도 않았다.
재미없는 삶이란 얼마나 재미없는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원초적 의문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되었다.
내가 얼마나 하고 싶은 것이 없는지 열변을 토하다 보니,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건지,
할 마음이 없었던 건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경계가 모호했던 건지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반 몇 화를 쓰면서 갑자기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나는 요즘 이 책을 쓰는 재미로 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나에 대해 쓰기 위해 생각하고,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야!’ 하면서
이 책의 쓸 거리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해서
글을 쓰다 혼자 피식 웃은 적도 많았다.
이 글을 쓰는 행위가 곧 요즘 나의 삶의 재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나에 대해 쓰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고
이걸 어떻게 엮어나갈지 고민하면서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책에는 얼마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에 대해
담길 예정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종이의 양면과도 같아서
뒷면뿐인 인생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앞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년의 할 일이 생겼고,
아주 오랜만에 내년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을 계속 자각하고
그 이유를 떠올리며 이 연재를 이어가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재 중반 이후부터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이전의 ‘스케줄 부자’가 되어
연재 일정을 맞추느라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글을 구상할 때나 연재 초반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이런저런 다양한 각도로 돌아보고 분석하며
마치 셀프 상담을 받는 듯한 시간이 이어졌다.
물론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도,
그리고 다시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 지금도
여전히 행복한 마음인 것은 변함없지만,
잔잔한 물결 같은 평온한 마음과는 별개로
‘하고 싶은 것이 다시 생겼다’는 감정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에너지가 되는 건 틀림없었다.
새로움이 간절했다기보다는
새로워서 더욱 좋다는 마음가짐이 또한 행복했다.
오랜 기간 빈칸으로 넘겼던 다이어리도 다시 꺼내 들어
각종 스케줄과 to-do 리스트를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또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휴면의 때가 오겠지.
그래도 이제는 그게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렇게 또,
오늘 하루도 ‘바쁘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