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나를 자각한 이후,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과연 괜찮은 상태라고 받아들여도 될지 모호했던
나의 마음을 해석해보고 싶었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탐구했는데,
과연 해석이 되었을까?
부족하지 않지만 균형을 이룬 걸까,
가득 차지 못함을 못내 받아들인 걸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외줄에 올라탄 것 같은 나날이었다.
소비하는 삶은 본능이라 했다.
내가 본능을 거스를 만큼 특이한 인간은 아니기에,
어딘가에서 해소되고 있을
나의 소비 욕구들을 조용히 추적해 봤다.
장을 보러 나갔다가 멈칫,
눈에 들어온 감자칩 한 봉지를 담는다.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가
옆 테이블이 시킨 치즈사리를 괜히 추가해 본다.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그냥 오늘의 소소한 행복.
그런 정도의 소비가 만족스러운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남들보다 아주 많이, 더 길게 이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원하는 소비의 양은 아마 이 정도.
좀 더 과감한 소비도 시도해 보았다.
몇 년 전부터 ‘예쁘네’라고 생각만 하던 반지를 드디어 샀다.
명품도 아니고 화려하고 값비싼 것도 아니기에
누군가는 기분 전환 겸 충동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의 반지다.
막상 사고 나니, 별 것 아닌 것을.
그 오랜 기간 사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아마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면 굳이 하지 않겠다는
모종의 강박이 있었던 듯하다.
그 강박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굳이 느끼지 않아 보기로 한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그냥’ 사고 나니 오랜 꿈이 현실이 된 듯 소중한 감정을 느꼈다.
최근 도통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다.
식욕은 없지만 식사량은 많아
여전히 가득한 살과 함께 살아가는 내가
정말 오랜만에 헬스장도 등록했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꾸준히 가고 있다.
예전에는 어서 침대에 들어가려고 퇴근했다면,
요새는 퇴근 후 기구 몇 개, 러닝 몇 분 옮겨 다니다가
집에 가니 더 잘 자게 된다.
항상성 충만한 몸은 운동을 시작했다고 쉽사리 달라지지 않지만,
그냥 왠지 건강해질 것 같다는 믿음의 영역에서 꾸준히 해보려 한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10년과 함께 할 일거리도 열심히 찾는 중이다.
이번 주, 오늘, 지금 할 것에만 집중하며 살던 나의 최근을 되돌아보니,
‘하고 싶은 것’ 이 아닌 ‘할 것’이라는 카테고리를 꾸준히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이 아닌 내일, 다음 달, 내년에 ‘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생각은 씨앗이 되어 언젠가 싹을 틔울 테니,
곧 ‘하고 싶은 것’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지는
의욕적인 아침은 갖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잠은 많아서
모두에게 주어지는 24시간이 마치 나에겐 더 적게 주어지는 느낌도 여전하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닫힌 방 안에서 평온하고 조용했던 마음을
조금 열어보기로 했다.
마음의 중심으로만 향하던 모든 것들을
조금만 바깥을 향해 내어 보기로 했다.
이런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내 상태를 이렇게 정의해보고 싶다.
욕구 휴면기
: 잠재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나,
지금 하고 싶은 것의 실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끝없이 되뇌던 지난 몇 년.
그렇지만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던 상태.
욕구 충만한 삶을 살던 지난날의 모습.
의욕 없음에 강박을 갖지 말자는 자기 합리화.
들뜨지도 않고 조용히 침잠하는 잔잔한 마음속.
닫힌 방 안에서 문을 빼꼼 열어볼까 말까.
끝을 잘 맺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완벽주의.
어쩌면 ‘Ready’에서 멈춰버린 듯한 모습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휴면기에 들어간 모습과 많이 닮았다.
휴면기의 생물들은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 하지만,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기운차게 깨어나기 위해 존재하며,
다시 맞을 좋은 환경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역시!
지금 나의 모습이 멈춘 것이 아니었구나 깨닫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촛불이 하나 켜지는 듯하다.
이 작은 촛불이 어디로 날 이끌게 될진 몰라도
어딘가로 다시 출발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괜스레 큰 위로가 된다.
현실은 조금씩 겨울을 향하고 있지만
나는 한 발 앞서 봄을 향해 나아갈 생각이다.
긴 휴면의 끝에서 기다릴 나를,
지금 만나러 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