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뭐 해?”
“우리 만나면 어디 갈까?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나의 대답은 셋 중 하나다. “아니”, “몰라”, 혹은 “아무거나”.
언젠가부터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귀찮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냥 ‘하고 싶은 것’ 이 없다.
뭘 해도 괜찮고, 뭘 먹어도 괜찮다.
어차피 기대가 없어서 아무거나 하자는 게 아니라,
진짜 아무거나 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안 하게 되더라도
별로 서운하거나 속상하지도 않다.
‘아무거나’의 집합에는 공집합도 포함되므로
약속이 있었다가 취소되어도 나쁘지 않다.
쉬면 나도 좋지, 땡큐!
취향이 없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걸까.
좋고 싫음이 있어야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사소한 선택일지라도)
집중과 결정을 하게 될 텐데,
그런 게 없으니 나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비워버렸나 보다.
가끔은 이런 내 모습에 “이래도 되나?” 싶지만,
예민하고 까칠한 것보다는 백 배 낫지,
라며 자기 합리화를 시전 한다.
SNS를 보면 삶이 즐거운 사람들 천지다.
내가 이렇게 멋지게 잘 살고 있는지를 과시하려는 걸까,
혹은 세상에 무궁무진한 할 거리를
너도나도 뒤처지지 않게 소개하고 또 소개받으려는 걸까.
어젯밤 인스타에서 발견한 그 디저트를 먹으러
산 넘고 물 건너 먼 거리를 달려가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의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긍정적으로 정말 대단하다, 비꼬는 것 아님 주의!)
나도 한때는 저런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가물가물하다.
이런 세상에 대해
영국의 전설적인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은 이런 얘기를 했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요즘은 이 말이
타인의 경험을 부러워하고 무분별하게 따라 하는 삶을
경고하는 데 자주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위험(?)하다는 소셜미디어조차 하지 않는다.
혹시나 남들의 삶에 영향을 받아
나도 이것저것에 유혹당할까 봐?
아니다. 그냥 나는 소셜미디어조차도 ‘하고 싶지가’ 않다.
내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때로는 자랑하고 싶은 그런 모든 활동 자체가
‘귀찮아’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이쯤 해서 극도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나의 일상을 소개해 보겠다.
아침 8시 알람이 울린다.
출근 시간까지는 2시간이 남았고,
아침에 일어난다고 딱히 할 일은 없기 때문에 다시 눈을 감는다.
9시 반이 되어 슬슬 침대에서 일어나 보려 꼼지락 댄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화장은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출근 준비에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10시가 다 되어서 집을 나선다.
일터가 가깝기에 출근에도 15분이면 충분하다.
비교적 시간과 일정에 자유로운 자영업을 하는지라,
별다를 것 없는 오전의 루틴을 마치고 나면
퇴근을 기다리는 내가 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 시간을 체크하지만,
퇴근한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집에 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면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하루 종일 몸을 많이 쓰거나 머리를 많이 쓴 게 아니기에
피곤할 일도 없지만,
잘 시간을 기다리면서 유튜브 몇 편 혹은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TV를 본다.
어라, 잘 시간이 다 되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좀 더 만지작거리다
오늘도 잠에 든다.
휴일의 나는 어떨까.
오늘은 5년 차 남자친구와 일주일에 하루 만나는 날이다.
남자친구는 집에서 20분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약속 시간은 최대한 널널하게 잡을 수 있다.
점심시간 식당에 사람이 많이 붐비는 걸 둘 다 싫어하니
11시 반 정도에 점심을 먹기로 한다.
30분 전에 집에서 나서면 되고,
나갈 준비에는 역시 15분이면 충분하다.
(5년쯤 만나면 남자친구도 쌩얼에 이미 익숙할 때다.)
10시가 넘어서야 뭉그적뭉그적 몸을 일으킨다.
남자친구 집이 역세권이라 식당이 많아서
집 근처 식당에 간다.
이제 이 근처에서 안 가본 식당은 새로 생긴 식당뿐이다.
사실 그마저도 가보고 별로인 곳을 제외하고 나면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같다.
점심을 먹고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나와
커피를 마시러 간다.
쿠폰이 있으면 스벅, 쿠폰이 없으면 투썸.
오늘은 쿠폰이 없으니 투썸에 가서
커피 두 잔과 디저트 한 개를 시키고 자리에 앉는다.
별다를 것 없는 얘기를 하고
화장실을 두어 번 다녀오면 카페에서 나설 때다.
동네 산책을 슬슬 하며
저녁엔 뭘 먹을지 구경하다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집 근처였으니 다음 주는 여의도,
그다음 주는 잠실, 그리고 그다음 주는 또 다른 장소가 될지언정
큰 틀에서의 패턴은 변화가 없다.
이런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랬지.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아침에 눈이 떠진다면,
그게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요즘의 나는 휴일에 눈을 뜨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다시 눈을 감기도 하고,
이미 잠에서 깼는데도 출근 시간을 기다리며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지 않고서는
도통 여유롭게 일어나는 법이 없다.
누군가의 저 말이 맞다면,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통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고 하면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거나,
그로 인해 불안하고 괜히 남들에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열등감을 겪는 상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혹은 그 정도가 조금 심각하다면
아마도 경미한 우울 증상을 겪고 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뇌과학이나 심리학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면
이런 상태를 설명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건 말이지,
지금의 나는 그러한 부정적인 상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무기력이나 번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로기 상태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이런 나라서 힘든 것이 아니란 말이다.
다만,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을 품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나도 ‘정상’인 건지,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