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게 얼마나 깊게 스며들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람이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는데,
먹는 것과 입는 것 둘 다에 관심이 없는 나는
살기가 참 편하… 다고 해야 할까.
(이 나이 되도록 캥거루족으로 부모님과 함께 사는지라
주거에 대해서는 할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진 지는 꽤 오래됐다.
‘인생 디저트’ 나 ‘인생 파스타’ 같이
자다가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벌떡 일어날 맛집이 나에겐 없다.
물론 그렇다고 입맛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살은 빠지지 않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 있는 중이다.
“아이고 아무거나 먹자, 땡기는 거 없다” 하시고
아무 식당에나 가서 1인분 든든하게 드시는 건
연세 드신 어르신들만 구사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식탐이 있어서가 아니라 위가 커서 이것저것 집어먹다 보면
아까 “먹고 싶은 거 없다” 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찾고 싶어질 정도다.
어쨌든, 나에게
“오늘은 뭐 먹으러 갈래?”라는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옷에 대한 욕심은 살면서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눈 뜨면 생각 없이 교복을 입으면 망고땡이었던
중고등학생 시절이 편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패션에 눈을 뜨기는커녕
서른이 다 되어서까지 ‘내 스타일’ 이란 것이 없었다.
연두색 스커트와 연분홍색 카디건을 매치해서
산뜻한 봄날의 룩을 표현한 날,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너 지금 진짜 수박바 같다!”
패턴이 있거나 색깔이 화려한 상의라면
하의에서 무채색이나 단색 계열로 톤다운을 시켜줘야 하겠지만,
옷을 사 본 적도 없고 구경한 적도 없는 나는
유독 흰색, 회색, 검은색 옷이 없었다.
가끔 눈에 예뻐서 사는 옷들은
죄다 믹스 앤 매치가 불가능할 정도의 독보적인 화려함을 자랑했고,
옷장을 열어봐도 입을 것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서 후회하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사 봐야 그걸 경험 삼아 점점 나아질 텐데,
애초에 많이 사지도 않으면서
‘후회할 바엔 대충 입자’는 마인드만 점점 커져갔다.
이렇게 패션 센스를 포기한 나도 서른이 넘어가면서
대충 입어서는 뭔가 남의 시선이 부끄러워지는 눈치를 획득하게 되었고,
서른 즈음에 드디어 ‘내 스타일’을 찾게 되었으니
바로 ‘유니클로 스타일’이다.
예쁜 건 잘 모르겠고
입어서 편한 것이 최고니
유니클로에서 엄선한(?) 스타일대로 입어야지.
그즈음에야 비로소
옷장에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가 자리 잡게 되었고
나는 수박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욕심만 없느냐? 나는 로망도 없다.
대개 여자들은 일생에 단 하루 주인공이 되는 날인
결혼식에 로망을 갖는 경우가 꽤 있다.
결혼식 준비의 포문을 여는 남자친구의 프러포즈에
‘답 프러포즈’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해,
결혼식장의 분위기가 내 상상 속 장면을 구현하는지 직접 보기 위해
식장 투어를 다니고,
버진로드의 색깔과 조명에 어울리는 드레스를 찾기 위해
드레스 투어를 몇 군데 다녀봐도
쉽사리 모든 것을 결정하기 어려운
행복한 고민을 하는 예비 신부들이 많다.
완벽한 당일과 그 속의 완벽한 나를 만들기 위해
피부관리와 경락, 다이어트는 기본이고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 남자친구와 싸울지언정
최고의 신부가 될 그날을 위해 인고하고 더욱 정진한다.
나는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단 결혼식장에 선 아름다운 나에 대한 로망이 없다.
단 하루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기가 귀찮고,
하나부터 열까지 신부님의 결정을 기다리는
끝도 없는 결재 서류를 받을 자신이 없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들어가야 하는 돈이 너무 아깝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명분 아래
(정말 한 번일지는 죽기 전까지 모르는 일 아닌가?)
해야 하고, 사야 하고, 써야 하는 많은 것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지치게 할 것이니까.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후
주변에서는 “그래도 간소하게라도 하지”,
“너 드레스 입은 거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라는
걱정 섞인 말들을 많이 했다.
유일하게 내 주변에서 “부럽다” 고 말을 건넨 사람들은
갓 결혼했거나 한창 결혼 준비 중인 남자 친구들 뿐이었다.
(왜 부럽다고 했을까,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긴 하다)
질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안 하겠다고 한 나의 결정이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어갔다.
다행히 이 결정에는
양가 부모님과 남자친구의 동의가 있었고,
신기하게도 우리 모두 결혼식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식 하지 않을 여자’가 되었다.
아참, 혹시 오해할까 봐 말인데—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거지,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욕심이 없는 것과 감정이 없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결정적으로 나는 물욕이 없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는 기분이 뭔지 잊어버린 것 같다.
피규어나 장신구같이 하나씩 사 모으는 재미가 있는 취미도 없고,
신상 립스틱이나 요새 유행한다는 패션 아이템,
하물며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는 명품에 대한 로망도 없다.
LA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을 때다.
이것저것 모든 샵을 다 들어가 보고
예쁘다고 사진을 찍고
실컷 착용을 해 보고 든 생각은,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할 것 같은 책임감에(?)
미키마우스 배지 하나를 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스무 살에 왔었다면 다 사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엄청 슬펐을 테고,
갓 직장인 때 왔었다면 백만 원어치 우습게
쥐도 새도 나도 모르게 질렀을 텐데,
영 물욕이 없는 지금 와서 참 다행이구나!
혹자는 “이미 다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되려 묻고 싶다.
지금 사고 싶은 그 물건은 필요해서 사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갖고 싶어서 사는 건가요?
필요해서 사는 것들은 물욕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릇 물욕이란,
지금 당장 없어도 전혀 지장이 없는 물건이
왠지 갖고 싶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소유욕,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오만 가지 이유를 들어
사야 하는 이유를 이미 머릿속에 합리화시켜 둔 것 아닐까.
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엄마는 가끔 이런 나를 걱정한다.
“엄마 나이쯤 되면 하고 싶은 것 다 해봤고,
못 해본 것들 있어도 딱히 아쉽지 않지만
너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니지 않냐” 고.
아직도 종종 갖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저게 사는 행복이지, 아기자기 재미있게 사시는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그러면, 사는 행복이 뭐니?”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이 불행한 건 분명 아닌데,
나는 그저 조용히 잘 살아가는 중인데.
정말, 나는 사는 행복이 뭘까.
… 모르겠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여하튼, 이렇게 오늘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