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지만
10년 전만 해도 나는 소위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보통 인간의 3대 욕구라 하면
식욕, 수면욕, 성욕(혹은 배설욕)을 말한다 했던가.
옛날의 나에게는
식욕, 스케줄욕, 취미욕의 3대 욕구가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80도 다른 에너제틱한 사람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되짚어보자.
식욕에 대한 그 시절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힌다는 대학원생 시절.
대학원생의 삶이란,
각자의 취향에 맞는 ‘먹을 것’에 꽂히게 마련이다.
누구는 술이나 담배, 누구는 디저트, 누구는 마라탕.
자기만의 중독 없이는 버티기 힘든 시절이었다.
나는 커피에 빠져들었다.
타고난 카페인 내성이 있는 체질이라
에스프레소 샷 기준으로 하루에 15개는 기본이었다.
연구실 건물 1층에 저렴한 학내 생협 커피숍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브랜드 카페가 입점했었더라면 커피값으로 파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마시는 것일 뿐.
대학원생의 현실 탈출의 욕구가
식욕과 만나 환상의 컬래버레이션을 이루어냈으니,
나란 여자, 맛집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다.
교내 비공식 모임이었지만,
알고 보니 각 단과대 대학원생들이 총집합(?)한
그야말로 ‘대탈출’을 위한 단체였다.
처음에는 학교 근처 맛집들을 섭렵하다가
점차 스케일이 커져 파인다이닝까지 들락거렸다.
엥겔지수가 100에 육박하는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말을 주고받으며,
짧은 기간 동안 평생 먹어본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음식을 경험했다.
안키모에 우니를 얹어 먹으면 극락의 맛이라는 것,
봄철 주꾸미 알과 겨울철 도루묵 알은 놓쳐선 안된다는 것,
이자카야 다찌석에 혼자 앉아 사시미 모리아와세를 시켜 먹는
멋진 신여성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나의 식도락 기행은 졸업 때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대학원 시절을 잘 견딜 수 있었다.
다만 한 번 오른 엥겔지수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내려왔다.
스케줄욕에 대한 그 시절 이야기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스케줄러에 따른 삶을 살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학과 행사, 단과대 동아리, 중앙 동아리,
각종 소모임, 교내 교외의 사회봉사,
게다가 연애도 하고 당연히 공부도 열심히 했다.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방학 스케줄이 꽉 차 있었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려고 하면
비어있는 날짜가 없어 한 달 뒤 날짜를 잡기 일쑤였으니
“너는 연예인 스케줄이냐”는 하소연도 자주 들었다.
취업 후에는 퇴근 후 저녁 약속은 기본.
평일엔 취미 활동과 동호회,
주말엔 직업학교 종일반 수업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쪼개며 살았다.
혹여 스케줄러에 빈칸이 생기면 각종 원데이클래스나
미술관, 영화 관람 등으로 채워 할 일을 만들곤 했다.
직장인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임시공휴일의
짧은 해외여행은 당연한 스케줄이었으니,
후쿠오카 정도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여행지였다.
연말이면 새 다이어리를 꼭 장만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만큼 잊어버릴 위험도 많았기에,
머릿속에 떠오른 ‘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다이어리 곳곳에 적어두는 것은 기본이었다.
먼슬리 페이지엔 확정된 스케줄을,
위클리 페이지엔 그날의 세부 일정과 순서를,
무지 페이지엔 아이디어와 미래의 할 거리들,
계획 중인 것들의 진행 상황과 메모를 끄적였다.
그 모든 걸 빠짐없이 기록하고 관리했던 나,
이쯤 하면 눈치챘겠지만…
맞다. 나는 파워 J형이다.
취미욕에 대한 그 시절 이야기
나의 가장 오랜 취미는 베이킹이다.
스무 살 무렵부터 쿠키와 케이크를
조몰락조몰락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다.
취미는 장비빨에서 시작한다 했던가.
주방엔 각종 베이킹 용품과 재료들이 한가득 쌓여갔다.
어느 방학엔 두 달 내내 밤낮없이 테스트하고
레시피를 수정하며 혼자만의 연구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디저트를 먹는 것보다 만드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내 주변에는 내가 만든 것들을 ‘먹어줄’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좋았다.
가족, 친구, 교수님, 각종 모임 회원들, 회사 사람들까지—
내 디저트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지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베이킹 원데이클래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3만 원이면 쉽게 사 먹을 것을
10만 원 들여 만들어 온다고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10만 원의 취미생활을 하면
케이크를 들고 집에 간다는 행복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긍정의 역발상이 참 대단하지 않은가.
원데이클래스에 몇 백을 썼다는 걸 알아차린 어느 날,
이렇게 하룻밤 취미로만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이참에 관련 학교에 다녀 자격증이라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선택이 지금의 직업으로 이어졌으니,
나는 취미가 업이 된 나름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취미를 어떻게 가졌을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마는,
나는 꽤 오랫동안 댄스스포츠를 취미로 했다.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처음 접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교수님의 조교가 되어
몇 학기나 연속으로 수업을 듣고
체육대학 소속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도 했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사회인 동호회에서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수업을 들으며 10 종목을 섭렵하고,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리는 연말 파티에서 공연도 했다.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으니,
취미치고는 꽤 거창하게 한 셈이다.
이 외에도 생화 꽃꽂이, 드라이플라워 작품,
보태니컬 페인팅, 유명 작가 작품 모사,
클레이 미니어처 제작, 전통매듭 공예,
클래식 공연 따라다니기, 피아노 연주,
니들펠트로 고양이 인형 만들기 등등…
이 정도면 나도 취미생활, 할 만큼 했구나 싶다.
번외 편. 나의 유일한 평생욕구, 수면욕
그 많은 취미도 결국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만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취미 잠, 특기 잠,
좋아하는 포켓몬마저도 잠만보였던 나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싶은 것은 오직 잠을 자는 것이다.
자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잠도 매우 잘 잔다.
몰아치는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체력적으로 힘든 날도 있지만
잠을 자기 시작하면 열두 시간은 기본,
스무 시간 가까이 자 본 적도 많다.
아무리 자도 등허리가 아프지도 않아서,
누가 깨우지만 않으면 업어가도 모를 사람이 나다.
내 사전에 ‘수면장애’라는 단어는 없으니,
한편으로는 타고난 복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집 밖을 나서면 오밤중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딸이기에,
가끔 집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자도
흔들어 깨우지 않은 부모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해 질 녘 잠옷 바람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우리 딸, 이 험한 세상 치열하고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대견해하셨을까.
(때로는 모든 것을 캐묻지 않고 각자의 마음속에
속마음을 묻어두고 사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
그땐 그렇게 나도 ‘바쁘게’ 살았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사람이 살면서 ‘할 것’의 총량도 정해져 있는 걸까.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은 것을 완전히 상실한 나는
눈을 뜨면 일하고 다시 오늘의 침대로 향하기 위해
일을 마치는 모양새의 삶을 살고 있다.
크게 바쁘지 않고,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는 요즘에도
나는 8시간 이상을 잘도 잔다.
잠을 줄여볼까 생각도 아주 많이 해 봤다.
우리 모두에게 24시간은 공평하기 때문에
잠을 지나치게 자다 보면 일상생활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자꾸만 잠을 자게 되면
깨어있는 동안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소모하게 되고,
이미 많이 줄어버린 나의 활동 시간 동안
애초에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할 시간도 없는 사태를 만들고 만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조차 생각하기 싫으니
잠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걸, '수면'이라는 '하고 싶은 것'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이제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을 넘어서
할 시간조차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잠은 죽어서 자라고 했는데,
이제는 욕망도, 시간도, 에너지도 줄어든 삶 속에서
나는 죽는 그날까지 잘 자기 위해 살아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