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 어딘가에서 마음이 동하면
우리는 그것을 ‘하고 싶은 것’이라 부른다.
그 ‘하고 싶은 것’이라는 뭉뚱그린 개념 안에는
뭔가를 사고 싶은 ‘물욕’,
뭔가를 먹고 싶은 ‘식탐’,
그리고 뭔가를 수행하고 싶은 ‘경험 욕구’가 있다.
요즘은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일단 사야(buy) 하기에,
우리는 이들을 통칭해 '소비'라고 부른다.
바야흐로 사기(buy) 위해 사는(live) 우리들이다.
나도 한때는 소비하며 살았다.
아니, 소비하기 위해 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더 이상 사고 싶은 의지가 없다고 느낄지언정)
뭔가를 끝없이 소비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만 예전과의 작은 차이가 있다면,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각의 부재가,
스스로에 대한 의문으로 점점 쌓여가고 있다.
인생은 소확행이라고 했던가.
소비는 확실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존재로 진화한 듯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하는 인간 Homo Sapiens,
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
도구를 쓰는 인간 Homo Faber.
그렇다면 소비하는 인간은 없을까?
역시나, 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라면
이미 누군가가 오래전에 기가 막히게 정리해 두었을 줄 알았다.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Homo Consumen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점점 더 많이 소비함으로써
내면의 공허함과 수동성, 외로움, 불안을 보상하려는 인간.
이후 질 리포베츠키와 개드 사드는
Homo Consumericus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소비행위를 진화심리학적 특성으로 해석했다.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내가 과거에 욕망이 많았던 것과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그 차이와는 별개로,
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가?
그 욕망은 어디서 샘솟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엄마를 보며,
‘저게 사는 거지’라고 느꼈던 나.
그렇다면 욕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삶의 본질과 연결된 근원적인 특성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곧,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상태를 해석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마침 그런 인간의 소비 생활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책을 발견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개드 사드의 『소비 본능』을 빌렸다.
나는 생물학을 전공했기에
생명과학의 원리에 기본적인 관심이 많다.
여기에 더해 심리학이나 인류학이
생물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은 늘 매혹적이었다.
진화심리학 관련 교양 수업이나 책을 만나면
일단 떠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에,
개드 사드의 이 책은 나에게 호기심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소비 본능』에 따르면, 인간은 사는(buy와 live) 존재다.
Homo Consumericus는 자연선택과 성 선택이라는
이중의 힘을 통해 진화해 온 종이다.
대부분의 소비 행위는
진화론의 네 가지 주요 동인인
생존, 번식, 혈연 선택, 상호주의에서 비롯된다.
많은 소비 현상은 이 네 가지 목표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하는
선천적인 필요나 선호에 의한 것이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쳐 형성된 유기체인 Homo Consumericus.
우리의 소비 행동은 인류 공통의 생물학적 유산이다.
짝짓기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소비—
화장품, 하이힐, 짧은 치마, 보정속옷, 성형, 피부관리.
이 모든 것은 상대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진화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3장 발췌)
희망은 삶의 활력소다.
우리는 수많은 목표를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일반적으로 낙천적이고 희망에 가득 찬 사람들은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기에,
‘희망’ 은 대중에게 팔리는 가장 가치 있는 상품이다.
자기 계발서는 가장 성공적인 책 장르 중 하나다.
자기 계발과 웰니스, 행복,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욕망은
진화적으로 중요한 보편적 관심사다. (8장 발췌)
충동구매는 저장 강박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충동구매자는 기능적 가치가 없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짝짓기 불안이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를 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수치가 낮고 자존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외모와 패션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며,
구매 행위를 자신의 기분을 달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9장 발췌)
책을 읽을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비하지 않는 삶’ 은 과연 비정상일까?
본능을 거스르고 욕망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나는 내가 본능을 거스를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규분포곡선에서 그 어느 형질 하나 튀지 않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해석은 하나.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소비 욕구가 해소되고 있는 건 아닐까?
특히 8장에서 다룬 ‘희망 상품’의 소비를 읽으며
하고 싶은 것을 잃은 나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행복과 건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근원적 욕구다.
그 욕구의 가시적인 표현이
‘하고 싶은 것’이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결국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왜 없는가에서 시작해,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불행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연결고리를 찾아,
그에 대한 합당한 해석을 통해
지금의 나의 상태는 결코 불안하거나 불완전하지 않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욕구는 어디서 해소되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어떻게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매슬로우는 인간 욕구의 5단계에서
자아실현을 최상위에 두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아실현보다 측정 가능한 목표에 더 집중하는 사회다.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 이 되었다는
결정적인 지표를 얻기 위해
형이상학적인 자아실현보다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면 원하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원하는 ‘그 무엇’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소비는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을 자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나를 이해함으로써,
소비를 지혜롭게 통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