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온갖 ‘할 것’ 들로 가득 차 있다.
올해는 꼭 스페인어를 배워야지.
소품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취미 생활도 하고 싶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말차가 올해 유행이라
가야 할 디저트집이 너무 많네!
살 좀 빼야 하는데 헬스장을 다닐까, 필라테스를 해볼까.
연휴에 훌쩍 떠나고 싶은 여행지도 생각났다.
평소 꼭 갖고 싶던 그 가방 브랜드가
다음 주에 팝업 스토어를 연다는데, 예약부터 해야지.
아, 근데 이번 달 통장 잔고가 얼마나 남았더라...
하고 싶다고 여길 만한 것들을 떠올려 이것저것 적어보니,
‘하고 싶은 것’ 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경험이 남는 것, 물건이 남는 것, 그리고 살이(?) 남는 것.
그중에 내가 한때 가장 집착했던,
‘경험이 남는 것’에 대해 먼저 깊게 생각해 보려 한다.
경험을 한다는 것은 시간을 들여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다.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보지 않고는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경험은 셋 중에서 가장 노력이 많이 드는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지금도,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경험함으로써
나의 취향, 나의 성격, 더 나아가 나 자체를 알아간다고 굳게 믿는다.
요새는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쯤 품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일상에서 이룰 수 있는 소소한 것들부터
해외 먼 곳으로의 여행처럼 큰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목표까지.
다양한 ‘할 것’ 들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고 추려내곤 한다.
먹고 싶었던 식당이나 가고 싶었던 곳들을
‘도장 깨기’ 하듯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각자의 지도 앱에는 언젠가 가보리라 찜 해둔 ‘별표’가 무수하다.
특히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위 ‘핫한 것들’을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맛집은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하고,
인기 있는 팝업스토어는 전쟁 같은 예약을 치른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을 채워줄
‘하고 싶은 것’ 들을 해나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때론 이러한 경험을 향한 욕망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건지,
혹은 해야 할 것처럼 느껴져서 하게 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마치 대학생 때는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고,
직장인이 되면 호캉스를 통해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아니면 그 시절의 과업처럼 설정된 ‘경험의 퀘스트’를 수행하듯 살아가는 걸까.
특히 모든 경험을 인스타에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이게 정말 나를 위한 경험인지 혼란이 오기도 한다.
급기야 자기만의 취향 없이
남들의 소비 풍조에 나도 동참했다는 연대의식 자체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연대의식을 위한 경험을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취향이 없고,
이게 유명하다고 하니까
(그 맛이 별로인 것을 알면서도) 일단 가서 사진을 남기거나,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봐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김찬용 도슨트의 책, 『미술관에 가고 싶어 졌습니다』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제 국내에서 대중적인 전시를 기획할 때, ‘인증샷 찍을 예쁜 공간이 없는 전시는 망한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전시 관람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만한 공간은 전시의 기본값이 되었다.”
철저하게 원화 전시회에만 방문하는 나로서는
요즘의 미디어아트 전시처럼
인증샷을 찍기 위한 미술관 문화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내가 가지 않으면 그만이지 싶다가도,
미디어아트 전시가 성행할수록
그만큼 원화 전시가 들어올 기회가 줄어드는 건 아닌가 싶은
질투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인증샷 문화가 미술관의 대중화를 이끌어내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기회라고 해석했다.
뒤이어 책 말미에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다만, 경험의 순간이라는 본질보다 인증과 공유라는 보여주기 위한 표면적 행위에 매몰되진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문장은 미술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요즘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곱씹어야 할 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경험을 소비하는 현대인에 대한 시선을 따라오다 보니,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우울하지도 허무하지도 않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새해가 밝아오면 ‘올 해의 목표’를 세우곤 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자각할 즈음부터
나는 올 해의 목표 세우기를 멈췄다.
달력은 새로운 첫 페이지지만,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기에
목표는 다이어리 한 켠에 외로이 남겨질 뿐.
설 명절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어올 즈음,
“그래서 올해 목표가 뭐였더라…” 할 바엔
목표를 세우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것을.
게다가 돌이켜보면 작년과 재작년은 물론
수년 전 목표도 결국 비슷한 걸 보면,
나는 몇 년째 그 목표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꾸준히’ 살아온 셈이다.
그런 목표가 목표로서의 가치나 기능이 있긴 한 걸까.
그보다 더욱 스스로에게 의문스러운 것은,
하고 싶은 것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내가
이토록 하고 싶은 것이 없이 살고 있는데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끔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될까…” 싶은
가벼운 물음표가 생길 뿐이라니.
문득,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채 살아가는 내가
나도 모르게 일상에서 해나가고 있는 것들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곱씹어보게 되었다.
아무리 잠이 많아지고,
다를 바 없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한들
정말로 365일, 24시간
도장 찍듯 ‘똑같은’ 나날을 보내는 건 아니지 않은가.
혹시 내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매일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할 것’ 들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뒤통수를 맞은 듯
내가 무려 신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곱씹어보기 전까진 미처 몰랐다.
2년 전, 이렇게 활자를 읽지 않다간
정말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싶던 즈음,
영화나 공연, 도서, 제품을 제공받고
리뷰를 남기는 활동을 하는 카페를 발견했다.
처음엔 “리뷰 몇 자 남기면 공짜로 책을 주는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었다.
흥미로운 여행 책들,
내 오랜 취미였다가 생업이 된 베이킹 관련 책들로 시작해서,
점차 에세이들과 자기 계발서들로
언젠가 해보고 싶고, 되어보고 싶은 것들을
대리 체험할 수 있었다.
급기야 과학이나 국제정세, 역사에 대한 책들도 신청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 활동은 나의 취미가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왔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비록 행동으로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 보였지만
정신적으로는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결핍을 느끼지 않았던 거구나.
그리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다가 불현듯,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이 아닌 ‘할 것’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마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둘이 뭐가 다른 것이냐 묻는다면
나조차도 선뜻 답하기는 어렵지만,
‘하고 싶은 것’ 이 없다는 현실에서 결핍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가
조금은 설명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였구나.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하고 싶은 것’과 ‘할 것’ 은 나에게 어떻게 다른가.
그에 대한 답을 찾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