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 INFP의 혼자사는 이야기
정신과 약이 많이 줄었다. 진료를 시작한 초기에는 아침 세 알, 저녁 두 알, 취침 전 한 알이었는데 꼬박꼬박 잘 먹어서 저녁 약은 아예 먹지 않게 됐고 아침, 취침 전에만 두 알 반으로 줄였다. 오늘 누군가 물어준다면 전할 수 있는 희소식은 그중에서도 항우울제를 5mg 더 줄였다는 것이다.
병원 나오는 길에 돌이켜보니 선생님과 명절 인사를 주고받은 것도 벌써 몇 번이다. 명절이 다가오는데 내 마음이 어떨지 궁금하셨단다. 그러고 보니 어제였나, 누가 SNS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언제쯤 마음을 추스르게 되냐는 글을 올렸더라. 답글을 쓰려다가 말았다. 이미 많은 답글이 남아있었다. 답글은 전부 비슷한 내용이었다.
지금 못 견디겠는 슬픔이야, 모든 슬픔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만 멀리 보면 무뎌지는 것뿐 아예 가시지는 않는다. 어떤 고개를 넘고 나면 그럼에도 살고 있는 나를 볼 수 있게 된다.
하늘이 유독 깨끗해 얇게 뜬 구름이 꼭 누군가의 얼굴 주름으로 보인다.
지난 계절에 휴대폰 메모장에 써놓은 게 있다. 유난히 울적할 때 썼나 보다. 그때의 기분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글을 다시 읽어보니 문장 끝마다 미적지근한 무력과 허탈이 묻어있다.
이제 끝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선생님이 "이제 시작이에요"라고 하셨어요. 매주 상담을 갈 때마다 웃으면서 약효가 잘 든다고, 금세 나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하셨는데요. 도착일 줄 알았던 걸음에 밟힌 출발선을 본 기분이 이런 걸까요. 뭐, 마냥 낙담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허탈하고 헛웃음이 나오고 그래요.
내 우울증은 오래 묵은 것 같대요. 하도 오래 묵어 피부의 일부처럼 붙어있다가 꿰맨 곳이, 불안장애의 형태로 터진 것이죠. 이유 없음이라는 무형이 때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얹어진다는 것을 아시나요. 이유 없는 불안, 권태, 허무, 자괴. 과녁을 빗나가는 화살보다 허공을 향해 쏘는 화살이 더 애처롭고 가엾은 거예요.
나는 지금 애처롭고 가여운 상태입니다. 눈에 띄게 슬프거나 아프진 않아요. 하지만 내 심리나 심장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순간이 잦습니다. 언제 나락에 제 발로 기어들어갈지 알 수가 없고, 알 수 없음이 방심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시퀀스가 많습니다.
그렇게 한 손에는 불안을, 한 손에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들고 축 처진 어깨인 주제에 무겁지 않은 척 버티고 서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위로받고 싶진 않아요. 말하자면. 기대를 걸만큼 두텁고 단단한 관계의 벽을 설계한 상대가 제게는 아직, 어쩌면 아주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고 잠에 들기 위해 깨어납니다. 세상은 여전히 나쁜 것과 나쁘지는 않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약을 줄이고, 다달이 진료를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을 멀게만 느꼈다. 호전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내 상태를 너무 얕게 본 걸까. 그래서 1년 운동장의 두 바퀴를 완주해가는 동안 신발끈이 풀리는 순간이 많았다. 우울과 불안이라는 땡볕 아래 무릎을 굽히고 주저앉아 더딘 손길로 리본을 묶고, 기립성 저혈압이 급습하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나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아직 남은 레일을 내다보며 몇 걸음을 걸어야 하나 가늠했다가 괜한 실망만 곱씹은 날들.
찌는 듯한 더위에 가기는 할까 싶던 여름도 이제 끝의 끝자락이다. 모퉁이만 돌고 나면 짧고 깊은 가을이 나타나리라. 다음 진료일에는 항우울제를 아예 빼도 될 것 같다는 말이 가시지 않은 바람처럼 맴돈다. 이 바람이 아주 가버릴 때에 내 우울과 불안의 근원도 가져갈 것이라 생각하면, 풀린 신발끈을 하고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