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 좋은 건 평소보다 더 안심한 채 게으를 수 있다는 거다. 비를 먹은 건 공기만이 아니라 눈꺼풀도 마찬가지다. 암막커튼의 이음새로 깃드는 햇살이 없어 더 자도 된다는 생각을 여러번한다.
나는 여러모로 더딘 사람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안 그래보이지만 안 좋은 눈으로 작은 글씨 읽듯 고개를 빼고 보면 그렇다. 믿는 구석이 없으면서 조바심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부지런하다 싶은 하루는 카페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멍하니 날씨 구경을 하다가 책을 몇 문단 읽고 이런 글을 끄적이며 보낸 날이다. 지금의 나는 자본주의, 생산성과 효율이 중요한 경쟁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불시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듯하게 썼지만 결국 게으르고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자기소개다. 그러나 나는 INFP라는 나의 성격유형이 싫지 않다. 근 10여년을 같은 유형으로 점쳐지니 이젠 그게 아니면 서운할 것도 같다.
어제부터 종일 비가 내린다. 잦아들지도 않고 내리는 걸 보다보면 비는 다 어디로 갈까하는, 역시나 그다지 생산성은 없는 생각을 한다. 빗방울 하나가 깨지면 여러개가 될 텐데, 여러개가 돼서 땅에 스미면 혼자 깨지는 고통도 나눗셈이 되고 혼자 스미는 외로움도 나눗셈이 되는 걸까. 먼저 스민 방울이 더 아래로 깊게 가라앉거나 마르기 전에 새로운 방울이 스미면 어떻게 되는 거지. 땅의 단면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빗방울들이 출근시간 경의중앙선 전철처럼 빼곡하고 질서 없는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는 비에게 불친절하다. 쉽게 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틈새로 꽃이 피는 일도 아주 가끔이다. (꽃은 엄밀히 말하자면 물을 좋아한다기보다 비를 좋아하는 것이다. 비에는 꽃이 머금기 좋은 성분이 있는 것같다) 틈이 많으면 무언가가 스며들기에 좋다. 물론 단단한 것에 비해 무너지기 쉬움을 감안해야 한다.
나는 틈이 많은 사람이다. 원래부터 비어있는 곳도 있고 어느날 지워진 곳도 있다. 틈이었다가채워진 곳도 있다. 달리 말하면 허술하다는 것이다. 자주 무너지거나 흘러내리는데 애석하게도 그럴 때마다 눈에 띄지 않게 무너지거나 녹아내린다. 스스로의 눈에도 띄지 않을 때가 있다. 다행인 건 그만큼 다시 쌓아올려 그럴 듯한 모습을 되찾기도 자주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과 물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물체라는 게 대부분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작가는 은연 중에 자신의 기억이나 심리를 작품에 담을 수밖에 없다는 건 만물에 작용되는 것이다. 외부의 힘에 적극 반응했다가 곧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탄성을 가진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밀도가 낮아 단단하기보다 말랑하고 뻣뻣하기보다 부드럽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보다 흙이 그렇고 시간보다 마음과 생각이 그렇다.
나는 모든 것을, 기쁨이든 슬픔이든 칭찬이든 비난이든 소리든 촉감이든 온기든 냄새든 맛이든 뼈가 아닌 피부와 장기로 느끼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뼈보다는 피부와 장기가 더 말랑하고 부드러우니까.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를 보다가 든 생각인데 죽은 몸을 태웠을 때 타버리는 게 피부와 장기라서 다행인 것 같다. 그건 타서, 불이나 연기보다 더 말랑하고 부드럽고 흐릿한 영혼과 같이 갈 테니 말이다. 그것들에 스며들었던 기억과 감정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빗방울처럼 깨져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일도 그리 무섭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