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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Sep 04. 2023

사람들은 나를 씹프피라 부르고 나는 그리 싫지 않아

태생 INFP의 혼자사는 이야기_2

MBTI를 처음해본 게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아무튼 교복 입던 시절임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그것도 친구들끼리 한 게 아니라 선생님이 테스트지를 나눠줘가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INFP니 ESTJ니 하는 네 음절의 알파벳보다 지도자형, 예가형- 하는, 유형에 따라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이 어울리는지에 따라 붙여놓은 유형의 이름들이 더 익숙했다. 처음했던 MBTI 테스트에서 나의 유형은 당연히 잔다르크형. 지금의 INFP. 내성적이고 답답하고 혼자 하는 생각의 도가 깊어 남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한다 해서 씹프피라고도 불리는, 나의 고정값이다.


이 또한 INFP의 특징이라는데, 자존감이 낮을 것 같고 생각이 많은 주제에 자기 감정 컨트롤엔 잼병인 INFP는 의외로 자신이 INFP라는 사실을 좋아한다. (일반화하기엔 임상 사례가 부족하니, 고 깊은 지인 풀을 가진 나란 INFP 가까이에 INFP는 고작 나 포함 3명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이 INFP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현실을 부정해 수시로 MBTI 테스트를 다시 해보지 않는다. 해봤자 같은 결과니까)




INFP를 INFP답게 만드는 키워드 중 제일은 '공감'이다. 특히 나란 INFP는, 우리가 미지의 공간에 고립되어 철저히 혼자 살아가지 않는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라고 여기고 또 그 관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철근과 시멘트 등 건설 자재들 모두 공감을 주 료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INFP가 INFP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남들에게 별다른 어필 없이 스스로를 알리고 싶은 이상한 관종인 우리는 대체로 말보다는 글로 쓰는 것에 더 자신이 있으나 내가 쓴 글을 남들이 읽어주긴 할까 싶어 쓰는 시도조차 망설이는데, MBTI INFP 유형을 설명해놓은 숱한 글과 짤들이 이를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관심 받고는 싶은데 관심을 주지 마세요.

낯선 이들 앞에선 입 꾹꾹이, 좁디 좁은 제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친구들 앞에선 '약 먹자, 프피야.'

일상이 망상과 과몰입이라 실은 내 인생도 트루먼쇼처럼 누군가 연출하고 기획해서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도.

다른 감정 표현은 툭, 건드리지 않아도 툭, 나오는데 플러팅은 뚝.딱.

인간 싫어. 고양이, 강아지 좋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 보면 눈물이 나. 이 작고 소중한 것들아.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려고 이렇게나 작고 소중한 거야. 내가 지켜줘야겠어, 정말.

매 순간의 스트레스와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듬어주는 건 보고싶던 공연의 티켓 뿐.


근 8년 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종의 특성 상 이직을 3번 정도 했는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가장 어려운 문항은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문항이다.

-간략한 자기소개 (500자 내외)

500자 내외를 채우기도 어렵지만 500자 내외에서 나를 완벽히 소개하는 건 더 어렵다. 내 하루의 역사도 유구한데 내 인생의 역사를 500자 내외로 줄이라니.


어쩐지 이 대사가 떠오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프리다>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프리다 칼로가, 고통으로 처절하였으나 그만큼 화려했던 자신의 삶을 담은 대본에서 '불편한 부분은 밑줄을 그어달라'는 말에 혼잣말로 답하는 대사다.



불편한 곳에 밑줄을 그어달라구요? 그럼 내 인생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텐데요.
- 뮤지컬 <프리다> 중에서

딱히 하던 이야기와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 대사가 떠올랐냐고? 그것 또한 INFP다.

조금은 약은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내가 INFP인 게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허술한 부분이나 내세울만한 것이 아닌 점을 "INFP라서 그래"라고 얼버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격한 언어습관이 나를 씹프피라 부른들 어떠한가. 그래도 좋은 걸.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같이 있으니까. (크라잉넛 <좋지 아니한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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