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 가득하니 섬이라 할까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책(17)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by 김프피

제주에 바람이 많이 부는 이유는 못 다 쉰 숨들이 숱해서다. 뱉어지지 않은 숨들이 눈만큼 펄펄이고 바다만큼 망망해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자리, 바람이 대신 바쁘다.





지천을 덮고도 남는 죽음을 어찌할까. 허리만큼 쌓인 눈도 채 가리지 못한 울음을 무엇으로 달랠까.


촛불은 밀도 낮은 눈송이 하나에도 꺼지지만 그것을 지핀 마음, 그것을 다시 지피려는 마음은 계절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어서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히 그 섬이 자아내는 모든 것의 근원에는 슬픔이 있다.

슬픔이라 말 하지만, 그 두 음절로 과연 담을 수 있는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는 슬픔이 있다.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추위에 떠는 어깨를 굽어버리게 하는 것. 빨개진 손 끝을 파랗게 질리게 하는 것. 깨질 듯한 피부의 감각을 지워버리는 것.

위태롭게 차오른 것을 기어이 넘치게 하는 한 방울. 그 한 방울이 사랑이다. 사랑은 늘 그런 식이다. 울컥이 아닌 법이 없다.


그럼, 사랑이 그리할 줄을 미리 알고 돌아서거나 놓아버리면 넘침을 면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그런 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셈하여 보고 돌아서거나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시작됐을 수는 있으나 사랑으로 마무리될 수는 없다.

알고도 하고야 마는 것이 완연한 사랑에 더 가깝다.





바람과 물과 여인과 돌과 눈이 많은 그 섬엔 또 무엇인가 많다. 담담한 생김과 달리 무엇이 되었든 많은 섬이다.

그때 그 섬이 단단히 체한 것들. 하여 시간이 계속해서 게워내는 그 많은 것들. 썩지도 못하고 고여버린 것들.


활주로 아래, 갱도 아래, 바당, 모살밧. 어멍의 기억. 삼춘들의 혼. 날아가다 우듬지에 걸리고 철마다 동백나무에 맺히는, 소리를 빼앗긴 적막한 울음들.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다 하지 않아 자연의 할 일이 자꾸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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