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 INFP의 혼자 사는 이야기_2
봄꽃을 보다 울컥한 적 없는지. 이런 걸 보고 봄을 탄다고 하나. 그런데 우울까진 아니고, 그저 애틋한 거다. 매화, 복숭아꽃, 살구꽃, 목련, 벚꽃, 개나리 이런 것들. 봉오리를 터뜨리는 게 사람으로 치면 살갗을 터뜨리는 고생이 아닐지. 그 고생을 기꺼이 견뎌 기껏 해봐야 열흘 남짓. 열흘 남짓을 살랑이겠다고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그 모습이 귀한 거다. (네. 저 인프핀데요.)
특히 목련을 좋아하는데, 고등학교 때였나. 학교 진입로에 있는 일명 33계단(33개가 아닌데 왜 33계단이었는지 나도 모름) 곁에 있던 커다란 목련 나무. 그 나무는 봄만 되면 손바닥도 아니고 얼굴만큼 커다란 꽃을 피웠다. 그 아래 앉아있다 한 생각이 지금까지도 내 이런저런 견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데, 아름다운 모든 것은 슬픔을 속성으로 한다는 거다.
요새 너무 바쁘게 살아 그런지, 아님 살며 생기는 일들에 면역이 생겨 그런지. 일기라 봐야 "오늘 야구를 봤다. 졌다. 개 짜증 나는 두산 망해라." 따위밖에 쓰지 않는 지경인데. 지난주 저녁 산책 길에 오래간만에 감성이 흐드러졌더랬다. 역시나 목련 아래서. 요 잠깐을 절정이자고 1년을 꾹꾹 인내하는 겹도록 애틋한 꽃들을 보면서.
그때 듣고 있던 노래가 아이유의 <에필로그> 였는데 코 끝이 찡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다음으로 가요
툭툭 살다 보면은 또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러리라고 믿어요
- 아이유 <에필로그> 중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힘을 얻어 사는 사람이었지, 나는. 기억, 달의 마음, 꽃의 생각, 풀의 말, 나무의 시간, 떠난 사람들의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흔적. (물리학자는, 인간이 죽은 뒤에 몸이 썩으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모두 원소가 되어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없어진다'는 개념은 아니게 된다고)
순간순간을 절절하게 사는 나는 늘 마음이 피로하고 신경이 예민하다. 그런데 또, 체력은 고갈되어도 정신력은 지팡이라도 짚고 선다. 그 지팡이. 보이지 않는 것들 말이다. 저무는 봄꽃이 흔드는 손 같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