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이유

태생 INFP의 혼자 사는 이야기_2

by 김프피

바람이 칼날인 와중에 피어있는 하얀 철쭉을 본 적이 있다. 아스팔트를 뚫고 돋은 민들레, 철조망 너머 고개를 내민 넝쿨 장미. 나는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애씀을 모른 척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은 시간의 불가항력을 인정해 가는 과정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불가항력조차 통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인가 보다.



어느 화가의 기증 전시회를 다녀왔다. 화가의 최근 작품 중 한 점에 유독 발길이 붙잡혔다. 시든 꽃가지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림. 한 철의 스러짐을 통해 생의 덧없음과 약속된 소멸을 담아내고자 했다며 화가는 덧붙였다.


숨이 다해가는 꽃들 사이, 연둣빛 이파리가 눈에 띄었다. 시간의 재물을 비집고 돋아난 작은 초록. 나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는다. 눈길이 하도 머무른 탓에 잔상이 남은 작고 여린 이파리 위로 붓을 쥔 화가의 손이 다가간다. 세월의 파도가 일렁이는 손등이 멈추지 않는다. 생을 하도 칠하고 칠하고 칠했더니 수채화 한 폭이나 그릴 수 있으려나 싶게 옅어진 팔레트를 계속 문지른다. 겨우 남은 그 옅음으로 이파리에 숨을 불어넣는다.


꽃 무덤에 숨어있다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 이파리처럼 생의 덧없음을 뉘우친 한 사람의 가장 안쪽, 심방의 구석, 바로 그곳이 화가의 방공호였다. 붓을 놓지 않는 마음은 내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모두 앗아가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단 하나의 행위. 화가의 그리는 일. 연주가의 연주하는 일. 쓰는 이의 쓰는 일.


예술하는 이의 사는 일.


금영화, 캔버스에 유채, 한운성


나는 나를 본다. 죽은 것들 사이에서 죽지 않으려는 이파리의 애씀으로부터 나를 발견한다. 지금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을 기어코 또 짓고야 마는 고집. 이게 나라는 것을 인식한다.


죽음과 합의를 보느라 의식이 온전치 못하던 생의 끝자락, 라흐마니노프는 그 커다란 손으로 연신 허공을 저었다고 한다. 마치 지휘를 하는 것처럼, 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죽음도 마에스트로와 비르투오소는 범하지 못했던 것이다.


궁극은 구경도 못할 것을 알면서 그래도 하겠다는 고집, 꾸역꾸역 걸어가는 미련, 나는 예술가의 그런 면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이제 내가 그것을 손에 쥔다. 고집이라는 정과 미련이라는 끌을 쥐어 매일매일 깎고 다듬어야 한다. 나의 글이 아닌 나를. 글을 써야만 하는 나, 살아있음에 써야만 하는 나를 다듬어야 한다.


예술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하는 ‘나’를 만드는 사람이다. '산다'의 자리에 '예술한다'를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손과 마음을 쉬지 않기로, ‘나’와 약속을 한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면 위에 우주 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