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살았던 동네를 떠나는 이야기
겨우 2년 3개월. 2년 3개월을 전 직장 근처였던 이 동네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제 곧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집 없고 고향 떠나온 자취생의 숙명이기도 하다.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고 떠나는. 이 숙명은 나에게 운명처럼 여겨질 만큼, 스스로도 떠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새로운 동네에 가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은 외로움보다 훨씬 더 큰 자유로움을 늘 나에게 선사했다.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가장 행복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이것이었다. 나는 익숙한 것을 놔두고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에 별 망설임이 없다.
이번엔 좀 다르다. 떠나려니 섭섭하다. 그래서 심지어 집을 알아볼 때 제일 첫 번째로 고려했던 조건 중 하나가 지금 이 동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건 지겨워서 이 동네는 아니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곳에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이 걷고 싶거나, 카페에 가고 싶거나, 밥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불러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전 글에서 말한 적 있는 동네 기반 ‘걷기 모임’ 사람들이다. 올 2월, 이 모임에 들어가면서 사람들과 정말 많이 걸었는데, 이곳에서 얻은 건 정신과 신체 건강 이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건 이사 갈 때가 다 되어서야 도드라지게 느낀 ‘안정감’이다.
수가 적긴 하지만,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오래된 몇몇 친구들도 서울에 살고 있다. 이런 친구들과의 만남은 모임 사람들과의 만남과는 무게가 다르다. 아마도 모두 다 다른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약속을 잡아 만나야 하고, 자주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만남은 대화의 밀도가 높다. 그간 못했던 이야기와 고민들을 압축해서 나눠야,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임의 만남은 어찌 보면 정반대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고, 그렇지만 사는 곳이 가까우니 비교적 자주 본다. 고민을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걷고 싶은 날이면 모임 단톡방에 말한다. “한 시간 뒤에 걸을 사람?”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고 싶은 날이면 단톡방에 말한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 사람?” 모임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 가고 싶을 땐 단톡방에 말한다. “지금 그 카페에 있는 사람?”. 사실 이건 지금 당장 만나자는 소린데, 못 만날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모임 사람 중 한 두 명은 함께 하게 된다. 근처에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낯선 동네만을 찾아다니던 나에겐 생경한 종류의 안정감이었다. 나의 다른 인간관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덜 깊은 관계에서 얻는 안정감. 역설적이라 때로는 위태롭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활력을 줄 때가 더 많았다.
어제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한 정거장 지나 내렸다. 돌아가는 지하철은 10분을 기다려야 했고, 배는 많이 고팠다. 모임 사람들이 자주 가는 그 카페에 있을 것만 같은 친구가 생각났다.(한 정거장 지나 내린 그곳이 모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고, 카페도 거기에 있다) 연락했더니 그 카페에 있다고 했고,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연락한 지 10분도 안돼서 같이 저녁을 먹고, 친구는 카페로, 나는 집으로 걸어 돌아왔다. 제목에 ‘조금 섭섭한 이야기’라고 써두고 글을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많이 복잡 미묘하고 섭섭한 이야기’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