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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갱 Feb 16. 2022

반려견과 함께 여행한다는 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내가 사는 텍사스에서 뉴올리언스까지는 편도 8시간이 걸린다. 미국에서 8시간 정도는 로드트립으로 충분히 가능한 거리여서 우리의 반려견 '서울이'와 함께 2박 3일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상당히 흔한 일이라 중간중간 휴게소나 쉼터에서 산책도 시키고 배변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전용 공간을 자주 볼 수 있다. 호텔 또한 반려동물과 동반 투숙이 가능한 곳이 많다. 한 마리당 돈을 지불해야 하거나, 포함인 경우도 있으며 복도에서 개 짖는 소리가 종종 들리곤 한다. 단, 주에 따라 강아지를 호텔 방에 홀로 두고 나가는 것은 불법이다. (물론 나는 불법이 합법이 하지 않는다.)


나름 편리해 보이는 이 여건들은 어디까지나 반려견과 여행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고 그 외의 일들은 모두 견주의 몫이다. 애초에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일반적인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미술관 및 박물관을 갈 수도, 여행의 여유를 온전히 즐기기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함께하는 이유는 그저 함께여서 좋기 때문이다.


강아지와는 단 하루를 가더라도 대부분의 용품을 모두 챙겨야 한다. 물통, 밥그릇, 배변패드, 인형, 복용하는 약, 침대, 사료, 빗, 하네스, 이동용 가방 등등 부모님은 나에게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하신다. 왜 또다시 개를 기르냐고 그냥 애 없을 때 둘이 편하게 즐기며 살지 그러냐며.. 개와 아기를 엮어 말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잘 알지만, 아이를 기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미 힘들 것을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행복한 부분이 많기에, 그럼에도 웃을 일이 많기에 기른다는 것을. 나는 10살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 생활해왔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던 모성애를 많이 느낀다. 그 친구를 보내고 4년간은 다른 강아지를 만질 수 조차 없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았으니까. 다시금 큰 결심 끝에 데려온 자식 같은  놈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게 되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오겠지만 이번만큼은 덜 후회하고 싶어 최선을 다해 키워보겠노라 다짐했다.



서울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생후 3개월이 되는 날부터 천천히 자동차에 적응을 시켰다. 10분, 20분, 30분 차근차근 시간과 거리를 늘려갔고 차에 타면 항상 간식을 주며 기분 좋은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차 안에서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배변 신호가 오면 소리를 냅다 지르며 의사표현도 하기 시작했다. 서울이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오히려 잠을 잔다. 막히는 길 보다 쭉 내달리는 길이 더 편한 것이다.


그렇게 8시간을 달 도착한 뉴올리언스의 밤.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국 같지 않은 느낌과 가장 유명한 버본 스트릿. 내가 지금 호찌민에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길거리와 광광 울려대는 음악소리 덕에 얻는 즐거움은 뒤로한 채 나는 서울이를 안아 올려 귀를 살포시 막아주었다. 서울이와 함께 왔기에 그 유명한 재즈바에도 당연히 갈 수 없었다.

또 뉴올리언스의 굴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들어 꼭 먹어봐야지 했건만. 반려견 동반 식당은 없었고, 투고 박스에 담아와 호텔에서는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생굴은 포장이 안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튀긴 굴과 크레올을 싸들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호텔방에 돌아오자마자 서울이는 잠을 청했다. 모든 것이 새로워 긴장할 만도 한데, 침대에 내 옷을 올려두니 똬리를 틀고 곤히 잠들었다. 비록 서울이와 함께 왔기에 원하는  먹을 수 없었지만 우리 곁에서 잘 있는 모습을 보며 그깟 굴이 뭐 대수인가 싶었다.


다음날 아침, 배변패드를 보니 아뿔싸 쉬를 한 방울도 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잠은 잤지만 역시나 편한 공간은 아니었던 거다. 일어나자마자 데리고 나가 배변을 시켰다. 전봇대를 때려대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니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다 함께 뉴올리언스구경하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의 버본 스트릿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고, 골목골목마다 예술의 혼이 묻어났다. 날씨는 또 왜 이리 따스운지 걷고 또 걸어도 힘든지 몰랐다.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온 점심시간에 우리는 서울이의 목줄을 다리에 묶고 와플과 치킨을 바닥에 앉아 뜯고 있었다. 바닥이 의자보다 더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여유가 있을 땐 공원 벤치에서, 차량으로 이동할 땐 자동차 뒷자리가 우리의 식탁이다. 남편과 서로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 어디서 먹지? 고민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먹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여행을 이어간다. 유명한 성당 앞 공원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고, 실내 재즈바에 갈 수 없으니 길거리 공연을 감상한다. 물론 이런 여유는 짧디 짧다. 예쁜 관경을 사진으로 남길라치면 목줄을 당겨대는 통에 사진은 흔들리고 찰나의 순간은 지나간다. 그래도 화를 낼 수 없다. 내 우선순위가 사진은 아니니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뉴올리언스의 명물 '베녜' 가게에는 서울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무려 세 봉지를 사들고 카페 한켠에 앉았다. 뜨끈뜨끈한 갓 튀겨 나온 빵을 허겁지겁 먹으며 "그래, 서울이와 함께여서 포기하는 것도 많지만 그 덕에 당연한 것들이 몇 곱절은 소중해지는 것 같다." 고 얘기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뉴올리언스 여행기를 쓸지 반려견과 함께하는 여행기를 쓸지 사실 조금은 고민했던 것 같다. 코시국에 그저 짤막한 해외 여행기를 읽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에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나는 여행 작가가 아니며, 그저 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작은 조각 하나를 꺼내어 쓰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미국에서 강아지와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미국 인구의 90퍼센트는 강아지를 사랑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아지에게 관심과 애정이 높다. "So cute!!"를 외치며 스몰 톡을 건네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만져도 되는지 항상 물어보고, 자신의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에게 갑자기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아마도 매너가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반려견과 함께 하는 여행이 크게 걱정스럽지 않았다. 어느 여행지를 가던 반려견과 함께 온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지도 큰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받아들이는 듯했다. 서울이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강아지는 싫어한다. 그래서 펫 전용 호텔은 갈 수도 없고 좋은 펫시터를 구하는 것 또한 어렵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다. 아니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을 했음에도 함께하기 위해서는 포기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당신의 반려견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서울이의 어린시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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