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갱 Dec 22. 2021

딸은 '엄마'가 아니다.


내 생에 꽤나 우울한 스토리 중에 하나일 수 있는 이 얘기를 마주하기까지는 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이 얘기가 빠지면 내가 완성되지 않기 때문인지, 발행을 취소하고 다시금 세 번째 고쳐 쓰고 있는 걸 보면 꽤나 마음이 복잡한 것 같다.


나에게 엄마란, 그리고 결혼이란 무얼까.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고 자란 것이 아닌데, 나는 왜 혼자 살기보단 남편과 함께 사는 걸 선택했을까.

우선 결혼하고 첫해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엄마와 나를 분리했다.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며 같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그 상대와 시대가 달라졌기에 난 절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엄마에게 아빠 왜 결혼했냐고 물었다. 아마도 서로를 헐뜯는다는 걸 알게 되는 시기였을 테니 두 사람의 결혼 이유에 대해 궁금나 보다.

엄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외할아버지의 타이어 사업이 실패한 뒤로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연애할 시간도 없이 돈 벌기에 바빴다고. 그러다 아빠와 중매를 했고 막내에 작은 신혼집과 차가 있는 걸 보고 처자식 굶어 죽일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 3개월 만에 결혼했다고 한다. 론 작은 체구여도 강단 있는 모습이 괜찮아 보였다고도 덧붙였지만. (지금은 아빠를 트럭으로 갖다 줘도 싫다는 말과 함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결혼의 전제 조건은 '사랑'이었는데 엄마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하질 않으니.. 너무 어린 나이에 몰라도 되는 걸 알아버린 기분. 그냥 말미에 그래도 '사랑'하니까 결혼했지라고 거짓말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은 암울한 마음었다.


'나는 사랑으로 탄생한 아이가 아닌 걸까?'

'어른들은 그럼 애를 왜 낳는 거지?'


어쩌면 이때부터 나는 사랑이 없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어땠을까? 마찬가지다. 그때 당시 서른셋 노총각이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집에서장가가라고 성화니 친구가 연결해준 중매 자리에 나왔 거다. 예쁘장한 얼굴에 장녀인 엄마가 맘에 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아빠는 이때까지는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근데 나에게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차라리 고마웠다. 미 엄마의 답변에 한 방 맞은 뒤여서 적절한 거짓말을 못해줄 바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아무튼 그 이후로 내 유년시절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마음만은 늘 불안했다. 사랑 없는 집, 적막한 집, 이야기를 시작하면 언성이 높아지는 밥상머리, 꼴통 남동생. 


종종 은 선물을 받아도 마음의 헛헛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내게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가장 중요해졌다. 어찌 보면 조금은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목말랐다고 표현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가치는 갖는 것도 힘들지만 지켜내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천천히 알게 되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무한한 사랑과는 별개로 부부간의 사랑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늘 고민한다.

누군가의 결혼생활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건 부모님 뿐일 텐데, 어찌하다 보니 내게 큰 교훈을 주셨다. 이제는 나도 성인으로서 결혼을 한 사람으로서 두 분 모두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왜 그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집집마다 뚜껑을 열어보면 저마다의 사정이 다 있으니 더 이상 나만이 겪는 특별함도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딸들이 부모 둘 중 같은 성별인 '엄마'의 상황과 감정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는 나고 엄마는 엄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딸은 엄마와 외모부터 말투까지 정말 많이 닮아 있지만, 그의 인생 연장선 필요는 없다. 그의 인생보다 더 나을 필요도 없고, 그가 해내지 못했던 걸 대신해낼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의 인생을 살면 될 뿐이고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만 하면 된다. 그 또한 기브 앤 테이크하듯 1:1의 비율로 정확히 쪼개질 수도 없으며 3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한 집에서 살아온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 관계를 만들어 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노력하며 살았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에 한 번뿐인 '결혼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