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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갱 Mar 02. 2022

커피에도 정이 들어버렸네.

아메리카노를 내 손으로 처음 만들어 본 것은, 20대의 어느 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는데 그때는 커피가 좋아서라기 보다 만만한 게 카페 아르바이트였고, 친구와 함께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재밌어 시작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6개월 동안에도 나는 그다지 커피에 대한 애정이나 커피맛을 보고 맛있다 맛없다를 구분할 정도의 입이 아니. 그저 고객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고 하루에 한 잔 내가 먹고 싶은 커피를 만드는 딱 그 정도.  즉, 나는 커피 취향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휴 그때 만든 커피의 맛은 안 봐도 뻔하다.)


연희동 메뉴팩트

커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은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면서, 내 커피 취향이 스타벅스와 같은 강배전의 다크 한 맛보다는 중 약배전의 산미가 도드라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 커피 중독자인(?) 남편이 처음 데려갔던 카페가 연희동의 '메뉴 팩트'였는데, 난생처음 '플랫 화이트'라는 걸 맛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보통 '코르타도'라고 불리는 이 플랫 화이트는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1:1로 들어가 있어 커피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라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름은 마치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아인슈페너 같이 달달한 느낌이지만. 여하튼 난 줄아메리카노만 먹어왔는데 이렇게 고소하고 맛있는 커피는 처음이었던 거다. 특히나 '메뉴 팩트''플랫 화이트'는 아이스로 먹어야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 얼음이 들어가 뜨겁지 않으니 두세 입이면 끝나는 그 아쉬움 뒤에 오는 쌉싸르함이 매력이.


커피를 워낙에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함께 서울 곳곳의 유명하다는 카페는 꽤나 많이 다녀보았는데, 가장 기분 좋은 날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셨을 때이. 희동의 메뉴 팩트를 비롯해 연남동의 리틀 프레스 커피, 강남 고속터미널의 커피 리브레, 이태원의 파치드 서울, 광화문의 펠트, 일산의 네임드 커피, 서울 곳곳에 위치한 프릳츠, 카멜, 듁스 커피 등을 좋아했다. 서울을 떠나기 아쉬울 만큼.




하지만 결국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스타벅스가 가득한 미국 땅에 오고야 말았고, 그마저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이곳에서 커피만큼이라도 편하게 먹어보고자 '브레빌 870'이라는 커피머신을 집으로 들였다. 머신 구입 전에 남편과 약속을 한 것이 있는데, 머신의 청소 및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면 안 사는 것이 낫다. 때문에 브레빌을 사고 나서의 관리는 남편이 전담하기로 말이다. 처음 1년은 정말 반짝반짝 윤이 나게 관리도 하고 내부 청소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아무리 청소를 해도 클린 미에 들어온 불이 꺼지지 않자 남편은 멋은 웃음과 함께 "그냥 먹어도 괜찮더라"를 반복했고, 딱히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내가 아들을 키우고 말지...

브레빌로 만든 라떼

나 또한 브레빌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아서 대강 내려 먹거나, 네스프레소 캡슐머신을 이용했다. 물만 채워 캡슐만 쏙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짠 하고 나오는데 구태여 내가 공 들여  에스프레소를 뽑기 싫었다. 니..  머신을 살리는 게 내 일이 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은 했지만 당장 저 해맑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너무 얄미워서 써 외면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먼지가 쌓여가고 있는 브레빌이 눈에 들어오더니 클린 미에 떠있는 불을 지금 당장 꺼버리고 싶었다. 유튜브를 대여섯 개쯤 보았을까 전용세제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실행했고, 클린 미의 불은 드디어 꺼졌다. 한바탕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브레빌 머신의 소유권은 내게 넘어왔다. 원두도 내가 선택한 것으로, 관리도 나만이, 원두 굵기의 조절이나 추출 양과 시간 모두 내가 세팅했다.(새로운 원두를 사 오면 신선도와 로스팅 상태에 따라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아무튼  그 이후로 내 별은 '김 바리스타님'이 되었다. 


"김 바리스타님~ 에스프레소 한 잔 부탁해요."

"하 진짜 말이나 못 하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점차 커피에 대해 공부를 해가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니 맛은 덤이고 커피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어 우유 스티밍 하는 방법, 핸드 드립 만드는 법, 모카포트 추출방법 등 다양하게 커피를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우유 스티밍의 경우 가정용 머신인 브레빌 870으로 크리미 한 거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라테아트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초보자도 그럴듯한 스티밍이 가능했다.


핸드드립 도구들

 핸드 드립을 하기에 앞서서 다양한 드리퍼의 특징들을 비교해 보니 구멍의 크기와 개수에 따라 추출되는 커피의 맛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블루보틀의 드리퍼로 내린 커피의 쓴 맛의 이유를 찾았다. 블루보틀의 드리퍼의 작디작은 구멍은 가운데에 한 개가 전부였는데, 물이 내려오는 속도가 느려서 손 맛을 많이 타게 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 말인즉슨, 물이 원두에 머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테크닉이 부족하면 쓴 맛이나 잡다한 향이 함께 배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드리퍼는 누가 내려도 평균적인 맛을 낼 수 있어야 하고, 라이트 한 맛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나선형 외벽을 타고 물줄기가 내려오는 '하리오 V60 드리퍼'였다. 또 드리퍼의 디자인도 무시할 수 없었는데 투명한 유리와 나무 핸들을 조합한 하리오 드리퍼로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샌프란시스코, 어느 카페의 주인장이 된 기분이다.


우리 집

커피는 분위기, 맛, 향 3박자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집에서도 카페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원형 테이블을 배치하고 조명의 조도를 바꿔 따뜻한 느낌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엌에는 브레빌을 거실에는 네스프레소를, 다이닝 테이블 옆에는 하리오 드리퍼를 두어 언제 어디서든 커피를 마실 수 있게끔 공간을 구성했다. 분에 점점 맥시멀 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는 이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가를 구매하기까지도 무언가에 애정을 주기까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내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사람이던 물건이던 아낌없이 애정을 주고 싶다. 렇게 피에도 정이 들어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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