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남들을 보고 특별히 부러워하는 것이 없다. SNS를 비롯한 미디어를 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예쁜데 나는 왜 이럴까 라던지. 저 사람은 돈이 저렇게 많아 좋은 집에 사는데, 나는 갑자기 미국에 와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던지. 혹은 저 사람은 저렇게 똑똑해서 대단한 학벌에 멋진 직장을 가졌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던지. 단순하게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비교하지 않는다.
내 현실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기에 부러워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부러워한다는 감정 하나만을 가지고서는 내가 저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많은 인내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나서 저 자리에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사진 한 장 혹은 잘 꾸며진 미디어 속에서 내가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일부분일 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화목한 가정이 있는 삶이다. 매년 둘러앉아 집에서라도 가족사진을 찍는다거나, 캠핑 혹은 여행을 같이 간다거나,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거나 하는 사소하지만 어려운 것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내주는 방학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드는 날이면 가족사진을 찾기 힘들어 사진첩을 뒤지고 또 뒤지다 결국엔 6살 때 찍은 제주도 여행 가족사진을 쓰고 또 썼던 기억이 난다.
나의 친정 가족은 서로를 향한 불만이 한 해 두 해 쌓여가다가 점점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각자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기보다는 어찌 되었든 네 명 모두의 노력 없이는 회복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부탁도 회유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내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내 인생 목표 중 하나랄까.
엄마는 첫째인 나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고, 일명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엄마 얘길 나 아니면 누가 들어주겠나 하는 생각에 그저 들어주었던 것인데 해가 지날수록 쓰레기는 나에게 쌓여만 갔나 보다. 중립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아빠는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존재이다. 어릴 땐 무서워서 제대로 된 말을 못 했고 머리가 크고 나서는 항상 거절만 당하니 의지할 수 없었다.딸들이 흔히 하는 "아빠 나 지금 독서실인데 밤에 무서우니까 데리러 와"를 못해서 매번 혼자 뛰어왔으니까.
이것의 연장선으로 결혼식 날에도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지 않았다. '딸을 사위에게 내어주는 그 행위' 자체가 주체적이지 않아 보여 싫었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난 아빠한테 의지한 적이 없는데, 하필 가장 중요한 날정형화된 형식에 의해휩쓸리듯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나는 남편이 정말 좋다.
혹여나 삶에 있어서 사람마다 '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그 운을 다 써서 남편을 만난 것 같다. 유일하게 나를 희생하더라도 아깝지 않은 사람. 남편에게 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소한 부탁을 할 수 있고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나도 큰 감사함을 느낀다.
잠자리에 들기 전 물을 떠다 달라 거나 차고지에 있는 카펫용 청소기를 가져다 달라는 것, 분리수거를 해달 라거나 강아지 배변패드를 치워달라는 것.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부탁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누군가는 뭐 포르셰를 한 대 뽑아 준 것도 아닌데 이런 걸 가지고 좋아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쌓이고 쌓여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받침대가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사소한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결혼 생활을 한다. 남편도 나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오히려 항상 말하길 내가 가지고 있는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응원이 된다.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나를 참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지적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고, 시키기보다는 스스로가 먼저 행하고 기다려주는 것. 자신이 하는 일의 대부분을 나와 공유하는 것.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오랜만에 남편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이 결혼 직전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거 다 보상받는 기분으로 살게 해 줄게."
그당시에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 줄게"라는 말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함께 산지 3년이 다되어가니 어떤 의미로 건네었는지 알겠다. 나에게 아주 귀한 말이었는데 오랜만에 떠올린 걸 보면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언젠가부터 연인과 부부 사이에 흔히 말하는 '꽃길만 걷게 해 줄게'라는 문구를 보며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어 시를 써봤다.
꽃길이 언제부터 편한 길이라 했나
꽃도 꽃 나름이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길이면 가시에 찔리고 피가 날 텐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꽃길 꽃길 하지 마라
진정한 꽃길은 흙길도 자갈길도 다 걷고 온 그 거친 발로 밟는 길이다.
나에게 꽃길은 이러한 길이다. 흙길도 자갈길도 내가 이미 걷고 왔기에 지금의 삶이 꽃길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 남편과 함께 흙길과 자갈길을 다 걷고 난 뒤에야 꽃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저 단순히 얻어지는 편한 길이 꽃길은 아니라는 거다. 진정한 꽃길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이미 굳은살이 많이 배겨있는 거친 발을 지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