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모두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다. 여전히 우편을 주고받거나 이메일 또는 전화로 소통하며,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어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실수가 잦고, 그 실수를 만회하면서 자연스레 시간은 지체된다. 그래서 항상 일하는 사람을 100퍼센트 신뢰하기보다는 당사자가 이중 체크를 하는 것이 필수이다.
나도 한 가지 경험이 떠오른다. 미국에 오자마자 아파트 렌트 계약을 했을 때 아파트 오피스 직원이 적어준 주소로 입주 전에 필요한 물품을 시키고, 운전면허를 발급하고, 은행에서 체크를 발행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직원이 적어준 주소는 아랫집이었다. 계속해서 택배는 아랫집으로 배송되었고, 운전면허 발급은 다시 이루어졌으며 은행에서 발행한 체크는 사용이 가능했지만 어딘가 찜찜했다.
글로 읽으면 그럴 수도 있지 싶겠지만, 운전면허 발급이 다시 이루어진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발급해주는 곳은 느리고 느리고 또 느리기로 아주 악명 높기 때문이다. 특히나 코로나19 이전에는 관공서에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가서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여하튼 이 잘못된 주소로 이민국에 그린카드를 신청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상황들은 그냥 묵묵히 해결했다. 어쩌겠는가11221(우리 집)과 11211(아랫집)의 한 끗 차이로 인한 파장이었다.
그리고 주소를 잘 기입했다고 한들 배송 실수는 워낙에 일상적인 일이라서 택배를 찾으러 옆 동까지 가는 일은 흔하디 흔했고, 배달음식을 시킬 때 집을 찾지 못하는 배달원들은 수도 없이 만났다. 이 정도면 이정표를 잘 만들지 못한 아파트 측의 문제인지 배송원의 문제인지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또 최근에 있었던 배송 실수 썰을 하나 풀어보자면, 식탁을 시켰는데 상판과 다리가 분리되는 모델이라 박스가 총 2개였다. 다른 주에서 제작 후 배송되는 물건이기 때문에 몇 주 기다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배송 당일 집에 도착한 박스는 한 개뿐이었다.
"왜 박스가 하나뿐인지 혹시 아니? 분명 두 개라고 뜨던데?"
"몰라, 우리가 창고에 물건을 받을 때 이거만 가져가라던데? 업체에 문의해보지 그래?"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다 그는 그냥 배송만 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 화내 봤자 소용이 없다.'
업체에 메일을 남기고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매번 이중으로 하는 이유는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다.
"오늘 너희가 배송한 물건 중 하나만 받았는데, 확인해줄 수 있니?"
"음… 확인하고 다시 연락 줄게."
(10분 뒤)
"음.. 내가 확인해봤는데, 요즘 이런 일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네. 분실된 건 아닐 테니 기다려줄 수 있니?"
"분실된 건지 아닌 건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배송은 이미 두 개가 다 도착했다고 뜨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기다리라고만 하면 되는 거야?"
"나도 힘들어. 우리 회사랑 협력하는 배송업체인데, 나도 이 회사가 마음에 안 들거든. 정말 미안해."
갑자기 그의 넋두리를 들어줘야 했다. 누가 피해자인지 웃음이 났다. 협력업체가 마음에 안 든다니, 요즘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니, 본인도 힘이 든다니. 미국에서 가구를 판매하는 꽤나 유명한 업체였고, 나름 고가의 물건이라 잘 오겠거니 안일한 마음을 가졌던 게 또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을까.
미국 생활 3년 차, 이런 상황에서 구태여 감정소비를 하기보다는 문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우선 물건은 배송업체에게 넘어갔고, 창고에서 분실되었을 가능이 높으니, 가구 업체가 아닌 배송업체에 직접 문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가구업체에게 부탁해봤자 말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시간만 지체될 뿐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배송업체는 심지어 프랑스 회사였는데, 후기를 보니 난리도 아니었다. 박스가 세 달째 오지 않았다는 건 물론이고 망가져서 왔다는 댓글은 수도 없었다. '아.. 앞으로는 배송업체까지 어떤 회사를 쓰는지알아보고 물건을 시켜야 하는 걸까?'
생각을 멈추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세 번쯤 걸었을 때 드디어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내 배송 번호는 0000이야, 지금 박스 두 개 중에 하나만 받았거든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줄래?"
"오, 나 이 얘기 전달받았어. 지금 굉장한 이슈라서 박스 찾고 있는 중이야. 이틀 뒤에 다시 연락 줄게."
내 박스의 행방은 여전히 모르지만, 이 상황을 알고 있다니 참으로 고마웠다. 이틀을 기다렸고, 박스를 찾았으니 배송받을 날짜를 정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배송 당일 다시 전화가 왔다.
"아 일단 정말 미안해. 분명 어제까지 A구역에 박스가 있었는데, 오늘 박스를 찾으러 가니 다시 사라진 거야. 다시 찾는 데로 연락 줄게."
"뭐라고? 너희 진짜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박스에 발이라도 달린 거야? 물건 망가지면 난 절대 너희에게 좋은 소리를 할 수가 없어. 무조건 찾아내고, 내일 다시 전화해."
다행히 박스는 찾았고, 다음날 박스가 너덜너덜해진 채로 배송이 되었다. 물건에는 하자가 전혀 없어서 남편과 더 이상의 문제를 해결해도 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식탁을 설치했다.
아마 우리의 박스는 크나큰 텍사스 어딘가에 위치한 창고에서 이리저리 옮겨지면서 누군가가 인수인계를 똑바로 하지 않은 탓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찾고 잃어버리길 반복했겠지만, 이 문제의 원인조차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어이없었다.
그나마 한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화가 덜 났을까? 아니면 이 나라에 벌써 익숙해진 것일까? 돈을 지불해 구매했으니 당연히 이 식탁이 내 집에 온전하게 있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멀쩡한 식탁을 쓸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감사함이 밀려왔다. 내가 불평을 한들 이러한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불평과 불만이 나를 잡아먹기보다는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 이왕 미국에 온 거 더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