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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배 Jan 29. 2019

어느 겨울 계절학기 수업



아침에 눈을 떠보니 9시10분.

9시 반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허겁지겁 세수하고 출발. 다행히 교통이 막히지 않아 오히려 30분이 남았다. 매점에서 간단한 간식 거리와 커피를  사서 강사 휴게실로 갔다. 과자로 속풀이 후에 커피와 강의노트를 들고 강의실로 올라간다.


강의는 출석부를 부르면서 시작된다. 출석부를 부르는 것은 나에게 수업 시작 의식과 같다. 어떤 소설가는 연필을 깍는 의식을 한 후 글을 쓴다고 한다. 출석부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맘이 편해지고 수업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학생들도  그 비슷할거라 생각된다. 이름은 최대한 발음을 주의하며 부른다.  


"오늘까지 진도가 겨울 계절학기 중간고사 범위입니다. 시험은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주말 동안 복습 열심히 해주세요."


이렇게 중요 알림을 하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나에게 강의는 하루 중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다. 머리속에서 많은 것이 조율되어  말이 되고 글이 된다. 물론 글보다는 계산이 휠씬 많다.  강의할 주제들 사이의 관계, 학생들의 순간순간 반응, 각 주제를 설명할 적당한 예제와 상황, 지루해 하는 학생들을 위한 재밋는 농담, 등등. 시간은 어느 순간 훅 지나간다. 이렇게 3시간 수업이 끝난 후 느낌은 그날그날 다르다. 수업이 잘 되었을 때는 마음이 편하고 성취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반대일때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목욕탕에서 때를 충분히 밀지 못한 느낌. 수업을 다시 복귀해 본다. 더 좋은 설명방법을 찾아보고  반성한다.


내가 강의하는 과목은 물리학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듣고 싶어하는 과목은 아니다. 커리큘럼 상 들어야 하기 때문에 듣게 된다. 따라서 수업 중 학생들에게 환환 표정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신 내가 환한 표정을 지어보려고 노력 하지만 강의가 시작되면 역시나 우리 모두의 표정은 사라진다. 칠판에는 숫자와 문자의 나열로 꽉차게 되고 일부 학생들은 졸기 시작한다. 설명이 잘 진행되면 조는 학생은 조금 감소한다.


간혹, 혹은 자주 국어나 국사 선생님들이 부럽다. 물리보다는 재밋는 이야기를 할테니까, 수학 선생님은 나 보다 더 불쌍할 것 같다. 정말 숫자와 문자 밖에 없는 논리학이 바로 수학이란 과목이 아닌가.


오늘은 에너지를 설명할 차례이다.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있다. 첫 번째는 단어의 정의에 때문이다. 물리학이나 공학에서는 그 양이 정확히 수치화 되어야 한다. 단순히 크다, 작다라고 표현하면 곤란하다. 사랑은 수치로 나타낼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사랑도 에너지도 너무나 많이 쓰이면서도 정의를 말하기 어렵다. 당신에게도 스스로 질문해 보라. 아마도 머뭇거리게 될거다. 세 번째는 우리 모두는 사랑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경험상 사랑을 얘기하면 모두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뭔가 생각하는것 같다. 첫사랑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혹시 앞에 있는 학생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때 대부분 학생들은 난처해 한다. 그렇지만 간혹은 당차게 애기하는 학생도 있다. 몇 년전 4학생 여학생이 이 상황에서 "사랑은 죽도록 아픈것요."라고 말했다.

모두 놀랬다. 마치 엄청난 비밀을 들은 것 처럼. 가요 가사나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이 어떤 배경 음악도 없이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그 느낌은  조금은 충격이고, "정말?" 이라는 물음이 곧 나올것 같았다. 


물리학에서 에너지란 일 할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일이란 그 양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또한 계산할 수도 있다.


수업은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항상 숫자로 끝이난다. 대학 수업시간은 보통 3시간 연강이다. 수업이  끝날때쯤엔 모두가 지쳐있다. 오전에 시작했으면 점심때쯤이 되고, 오후에 시작하면 저녁쯤이 된다. 학생들은 강의실을 나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죽을뻔 했어~"  나는 오늘도 학생들 여러명을 죽일뻔 했다. 이렇게 계절학기는 끝나가고 있다.


 물리학, 수학, 화학 같은 기초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물리학을 가장 많이 듣는 공대생 조차도  피하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계에서도 산업계에서도 회피과목이 되버린 느낌이 든다.


이번 겨울은 눈도 별루없고, 미세먼지는 자주 날아오고, 나라는 어수선하다. 대학에서는 강사법 때문에 강사를 대량 해고한다고 한다. 뭐, 어쩌라! 평범한 나는 하루를 살기 위해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할뿐이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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