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10차__Q. 유년 시절 가장 크게 친 사고는?
유치원 실내에 미끄럼틀이 하나 있었다. 미끄럼틀 꼭대기 옆면에는 농구 골대가 달려있었다. 친구들이 공을 좀처럼 넘겨주지 않던 어느 날,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쌓기 놀이에 쓰던 원통형 나무토막을 골대에 던지고 만 것이다. 성인 주먹보다 큰 나무토막은 반 친구 남자애의 관자놀이에 떨어졌다. 영숙이 유치원에 찾아와 그 애 엄마에게 사과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눈이라도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 내 인생 최악의 오점을 일곱 살 때 만들 뻔했다.
Q. 엄마, 어릴 적에 장난하다가 사고 친 적 있어?
불을 냈어.
대여섯 살 무렵이야.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울타리 앞에서 동네 언니들과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거든. 밥을 한다며 울타리에 종이를 구겨 넣고 나에게 성냥을 갖고 오라고 시켰어. 아궁이에 불 때는 흉내를 내려는 거였지. 부뚜막 위에 놓여 있는 성냥을 들고나와 언니에게 주었어. 언니가 불을 켜 종이에 갖다 댔어.
어떻게 됐겠니? 울타리에 불이 붙어 버린 거야. 동네 앞에 개천이 흐르고 맞은편에 군인부대가 있었어. 소방시설을 갖추고 있었던지 차로 금방 달려와 불을 끄더라고. 다행히 집에 옮겨붙지는 않고 울타리만 탔어. 바짝 말라 있었더라면 집까지 번졌을 텐데 그렇지는 않았나 봐. 다행이었지.
어머니께 종아리를 맞았고 언성을 높여 혼을 내신 게 기억나. 울며 집 밖으로 나왔던 거 같아. 쫓아내신 건지……. 다행이지. 발가벗겨져 쫓겨나지 않은 것이.
그럴 뻔한 일이 나중에 생겼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 설 무렵이었나 봐. 떡을 해서 먹고 있었는지 다른 음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옆집 남자아이가 나보다 어린앤데 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거지같이”
라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어.
그 애 어머니가 따라오셔서 자기 아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며 얼마나 퍼붓고 가셨는지. 우리 어머니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나 봐. “옷 다 벗고 나가!” 하셨어. 그 당시는 어머니들이 “잘못하면 발가벗겨 쫓아낸다!”라고 엄포를 놓으시곤 했거든. 그런데 정말로 그러신 거야.
우리 어머니는 군기 반장 같은 스타일이셨어. 어떻게 하겠어? 어머니 말을 어길 수는 없는 거야. 하나씩 벗었어. 울며불며 “엄마!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그럴 거라고 예상하셨을 텐데…….
어이가 없으셨는지 “옷 입어.” 그러시더니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고 마무리 지으셨어. 군기반장 스타일이라 했지만 맞은 적은 그 두 번뿐인 거 같아. 하지만 꿇어앉아 손들고 벌선 적은 많은 거 같아. 저녁에 동생 둘과, 셋이서 뭘 잘못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란히 꿇어앉아 벌을 서곤 했어.
팔이 엄청 아프지. 다리는 저리고. 아버지 오시기만 기다리는 거야. 아버지만 오시면 끝나거든. 그러고는 아버지가 들고 오신 빵을 받아먹으며 다 잊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운동화를 잊어버린 적이 두 번이나 있었던 거 같아.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데 신발장이 학교 현관에 있었거든.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보니까 운동화가 없는 거야.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수업 시간에 신발장을 다 둘러보라셔.
둘러봤어.
없어.
다 둘러봤는데…….
아이들이 가고, 남은 다 떨어진 운동화를 끌고 집에 왔어. 내가 바보 같다는 기분이 들어 속상했어. 어머니한테 혼난 기억은 안 나. 지금 생각하면 신발은 정말 필수품이야. 신발을 못 쓰게 되면 당장 학교조차도 못 나오잖아. ‘오죽했으면 그걸 훔쳐 갔을까?’ 어머니는 그리 생각하셨을 지도 몰라.
아! 그러고 보니 돈을 훔친 적이 있네. 초등학교 입학했을 무렵인데,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이라서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거든. 양동이 하나에 얼마씩 내고. 하루는 그 옆을 지나는데, 양동이가 차례로 줄을 서 있고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
그런데 한 양동이 속에 보니까 동전이 있는 거야. 물값이었겠지. 그걸 손에 쥐고 갔어. 과자를 사 먹었는지, 조마조마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하지만 그 순간을 여태껏 기억하는 걸 보면 나쁜 짓이라는 걸 알았던 거겠지. 그렇지만 그건 지금까지 완전범죄였을 거야. 그 일이 거론된 일은 없었으니까.
좀도둑이었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종용의 점퍼 주머니와 영숙의 가방에서 지폐를 훔친 적이 있다. 친구의 실내화 주머니에서 오백원짜리 동전을 몰래 가져간 적이 있다. 집으로 가던 길에 구멍가게에 들러 새콤달콤이나 블랙조를 슬쩍 주머니에 넣은 적이 있다. 들켜서 혼꾸멍이 난 적도 있고,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사과한 적도 있고, 완전범죄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간 적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범죄가 어디 있나? 내가 알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제 알게 된 걸?
☎ Behind
엄마, 내가 사고 쳤던 건 기억나는 거 있어?
글쎄.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없네.
그거 뭐야. 텔레비전 떨어뜨린 거.
그건 내가 아니라 진환이가 떨어뜨린 거야.
그리고 청소하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사고 쳤다는 표현은 좀 너무하지.
그거 기억나?
유치원에서... 나무토막 던져서
남자애 얼굴 다쳤던 거.
그때 엄마가 유치원 와서 사과했잖아.
그 애 얼굴에 엄청 큰 멍이 들었었어.
기억 안 나.
헐.
그럼 그건 기억나?
학교에서 부반장 됐다고
거짓말했다가 학부모 참관하는 날 발각된 거.
엄마가 화가 나서 입 꾹 다물고
집까지 엄청 빨리 걸어갔었는데.
기억 안 나.
헐.
그럼 그거는?
엄마 가방에서 만원 훔쳐서
시외버스 타고 서울 갔다 온 거.
그건 기억나.
니가 말했잖아. 서울 갔다 왔다고.
근데 만원 갖고 간 건 기억 안 나는데.
너도 사고 많이 쳤구나?
외포리도 갔다 왔잖아 너.
그건 어떻게 기억해?
니가 말해줘서.
헐.
엄마는 내 얘기는 하나도 기억 못하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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