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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Jun 06. 2022

영숙’s answer. 요즘 다시 송충이가 보인다는데

엄마 인터뷰 11차__Q. 그 시절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와 자유는 서로 정 반대에 있는 단어처럼 느껴졌다진정한 자유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바닥에 등을 댈 수 있는 권리에서 오는데책상 앞에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수 시간을 바른 자세로만 앉아 있으라는 학교에 자유가 있을 리 없었다자유가 없는 대신 동원되는 일은 잦았다.     





Q. 엄마옛날에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바람이 쌀쌀한데 햇볕은 따뜻하구나. 곧 새싹이 돋고 꽃도 피겠지. 나른해지는 늦봄이던가? 소나무 밑에 송충이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그걸 피해 깡충깡충 뛰어 건너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본 적이 없네.     





잠깐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까, 14세기 문헌에도 나와 있대. 송충이가 소나무에 큰 피해를 주어 방제에 힘썼다고. 내가 어릴 때는 주변의 산과 들이 온통 소나무였거든. 그때까지도 송충이가 많았어. 그래서 학생들이 송충이 방제사업에 동원됐지.     


처음엔, 나뭇가지에 헝겊을 둥글게 말아 석유에 적셔서 송충이에 갖다 대면됐었어. 그런데 다음 해엔 나무젓가락으로 잡아서 병 속에 집어넣으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당량을 주었어.  


석유로 건드리기만 하는 건, 몇 마리나 죽였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워서 방법을 바꿨다고 생각했어. 근데 아니네. 천적까지 죽이는 부작용 때문이라네.     





하여튼 송충이는 정말 징그러워.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더니 한 동네 살던 친구가 잡아 줬어. 학교 가는 길에 그 친구네 집이 있어서 들려서 같이 가곤 하던 친구야. 그 집엔 다알리아 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더랬지. 여자만 사는 집이었어. 할머니, 어머니, 언니, 친구 그리고 동생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중학교 1학년 때 생각도 나. 여학교였는데, 우리 교실만 뚝 떨어져 있었어. 주변엔 잔디가 깔려있어 남다른 느낌을 주는 교실이었지.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빨강머리 앤이 한껏 들떠서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를 읊조릴 만한 교실의 한 귀퉁이에서 말뚝박기 놀이를 한 거야. 선머스마들처럼 말이야. 선생님들은 모르셨을 거야. 교무실에선 알 턱이 없었지. 너무 멀었으니까.     





점심시간엔 후다닥 도시락을 까먹고 ‘드르륵드르륵’ 책상 4개를 끌어다 붙여놓고 탁구도 쳤어. 라켓과 볼을 사 갖고 들고 다녔던 거 같아. 그 당시는 탁구 선수 이에리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날리기 시작하던 때였지.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어. 읍내에 탁구장도 있었어. 30분에 얼마씩인가 내고 사용하는 건데 사람들이 제법 북적댔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련 시간이 있었어. 그 당시는 냉전 체제여서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당연하던 때였지. 남학생들은 제식 훈련과 총기 다루는 걸 배웠고, 여학생들은 간호업무를 배웠어. 교련 가방이 따로 있었어. 하얀색에 적십자 문양이 새겨진 가방이었어. 붕대랑 부목이랑 또 뭔가가 있었던 거 같아.     





붕대 감는 법, 부목 사용법 등을 배우는데 환자 옮기는 걸 못 하겠는 거야. 둘이 나란히 서서 누워 있는 환자 밑으로 팔을 뻗어 들어 올려서 옮겨야 하는데, 들어 올릴 수가 없는 거야. 내가 팔 힘이 약했던 거 같아. 나랑 짝이 됐던 친구가 나 땜에 덩달아 감점받았어.      





내가 허구한 날 민폐만 끼치고 살았나 봐. 친구들이 착했어. 학창 시절을 무난히 보냈으니 말이야. 옛날이야기 같지? 지나고 보면 엊그제 같아.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옛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네.     

오늘따라 그립다

학창 시절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 동원의 기억들은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한 데 묶여 희석되고 말았다하지만영숙처럼 송충이 잡기에 동원됐다면 나는 절대로 그 동원의 기억을 희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송충이는 너무 못생겼다송충이 못 잡고 팔 힘이 약했던 영숙이 민폐가 아니라송충이의 존재 자체가 민폐다색깔도 우중충한 게털도 많고꾸물럭 꾸물럭 거리고.            

        

          



☎ Behind     

엄마 송충이만 잡았어?

쥐꼬리는 안 잘라갔어?

그건 안 했어.

그런 건 어른들이 했던 것 같고.

송충이 잡으러만.     

나 어릴 때만 해도 송충이 많았는데

진짜 한동안 송충이 아예 못 봤네.

가끔씩 나무 위에서 뚝뚝 떨어지고 그랬는데.

방제사업을 잘해서 없어졌나 봐.     

근데 작년 봄에 나온 기사를 봤는데,

충주시에서 송충이들이 급증했대.

송충이 방제해야 한다고 

그 사람이 쓴 글이 너무 웃겼어.

“송충이는 제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기분이 나쁘다.

일단 그 생김새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중략)… 

송충이를 발견하면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게 마련이다.”     


송충이 다 잡으면 구덩이에 모아서 

석유 뿌리고 불도 질렀다는데, 기억 안 나?

그런 거는 모르겠어.

벌써 몇십 년 전이냐? 

40년도 넘고, 50년 가까이 됐어.     

나무 위에 올라가서 흔들어 가지고

송충이 후드득 떨어뜨리다가 몸에 닿으면 

막 독 오르고 그래서 뉴스에도 나왔더라.

우린 흔들지는 않았어. 

보이는 것만 잡은 거지.     

기후변화 때문에 송충이가 느는 것 같다던데,

30년 뒤에는 소나무 아예 없어지는 거 아닌가 몰라.

아이구. 소나무가 얼마나 많은데 큰일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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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돌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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