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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Jul 01. 2022

영숙’s answer. 그깟 늑목이 대수인가요?

엄마 인터뷰 12차__Q.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달을 때마다 깜짝 놀란다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친구의 아기들은 엄마의 얼굴만이 아니라 말투도 쏙 빼닮는다학교라는 사회에 발을 디딘 후에는 거기서 만난 선생님들의 문제 해결 방식과 세상을 보는 눈을 닮아간다어른의 영향력은 참 힘세고 오래간다.      


          



Q. 엄마어떤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     

     




고등학교 다닐 때는 무기력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어. 고3이 되니까 공부 좀 한답시고 기고만장할 때도 있었고. 전체 조회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야 되잖아? 공부한다고 몇이서 안 나간 거야. 교장 선생님께 걸려서 교무실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를 맞았어.     





그리고 한 번은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다 보고 계시는데 따귀를 맞았어. 시험지에 정답을 오답 처리했다고 따지러 갔다가. 다른 선생님들 다 계시는데서 선생님에게 망신을 주었으니 화를 주체 못 하신 거지. 선생님도 사과를 하셨고 나도 내 잘못을 깨달아서 크게 앙금이 앉지는 않았어.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어. 초등학교 1학년 땐가 봐. 운동장에 늑목이란 게 있었어.     





양쪽에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막대기를 가로로 듬성듬성 끼워 넣어 만든 거야. 체육 시간이었나 봐. 달려가서 늑목을 타고 올라가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거였어. 나는 올라가다가 무서워서 반대편으로 넘어 가지를 못 한 거야.      


도로 내려왔더니 내게 벌을 내렸어. 그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서 있으라는 거야. 어릴 때는 운동장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알지? 거기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어. 여자 선생님이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나. 무슨 생각으로 그런 벌을 내렸을까?     


그 시간이면, 내가 무서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반대편으로 내려오리라 생각하신 걸까? 나는 그저 1시간 동안 서 있으래서 서 있었어.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을 너무 일찍 맛본 날이야.      


    



시골 촌 학교인데 호사를 누려 본 적도 있어. 고등학교 땐데 서울대 나오신 선생님이 부임하신 거야. 아우라가 있으셨어.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네 과목을 다 맡으셨는데, 서울대 출신이어도 소용이 없었어. 학생들이 기초가 안 돼 있으니까, 알아듣지를 못하는 거야.     


시험을 치는데 너무 창피해서 있는 그대로의 내 실력을 보일 수가 없었어. 1번 문제부터 끝 문제까지 한 번호로만 찍었어. 근데 나보다 더한 친구가 있었어. 한 장은 마름모 모양으로 또 한 장은 일자로 답을 표기해서 두 장을 낸 거야. 그 친구는 단단히 혼이 났지.     


선생님도 참 난감하셨을 거야. 가르칠 맛도 안 나셨겠지. 그 당시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빈번하던 때인데, 골치 아픈 인물로 간주되어 멀리 귀양 보내듯 보내버린 거였어.      


    



롤모델 같은 선생님도 계셨지. 초등학교 6학년 때인데 그 선생님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왔어. 밖으로 롤이 말린 조금 긴 단발머리였어. 그때는 하얀 블라우스가 유행이었나 봐. 하얀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으셨어. 스승의 날에는 학급에서 돈을 모아 하얀 블라우스를 사다 드렸어.     

 

우리 어머니도 하얀 블라우스를 사 가지고 와서 내게 주셨어.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이건 친구들한테 미안한 짓인데’ 생각하면서 갖다 드렸어.     


어느 날 시험을 봤는데 답안지를 걷지 않고 직접 채점을 하라셨어. 산수였는데 한 문제가 이상한 거야. 분명 맞게 풀었는데 소수점 한자리가 틀리게 찍어진 거야. 얼른 지우개로 지우고 맞게 고쳤어. 그걸 선생님이 보셨나 봐. 모두 눈 감으라더니 정답 고친 사람 손들래. 살짝 손을 들었어.      


아무 말씀 안 하셨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해 주셨어. 그랬으면 부정행위는 안 했어야 하는데 또 하고 말았어. 중학교 땐데 시험 문제 몇 개를 모르겠어서 쳐다만 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손으로 짚어 주시는 거야. 4지선다형이었으니까. 시험으로 우리만 평가받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도 평가받으셨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알려주셨나 봐.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우리 몇 명을 집으로 부르셨어. 사과는 껍질을 얇게 벗겨야 한다며 보여 주시고 먹게 하셨어.     


그리고 녹음기에, 한 명씩 노래를 녹음해서 들려주셨어. 근데 친구들 목소리는 똑같은데 내 목소리만 다르게 들리는 거야. 얼마나 둔탁하게 들리는지 깜짝 놀랐어. (지금 하고 그때 목소리는 또 달라) 내 목소리가 내가 듣는 그 소리가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지.





하루는 선생님이 바쁘셨는지 우리에게 시험지 채점을 부탁하셨어. 옳은 문장이면 공표(동그라미) 틀린 문장이면 가깨표(엑스표)를 그리는 시험 문제였어. 한 사람은 답안지를 들고 정답을 말하고 또 한 사람은 채점을 했어. 공표는 ‘공’ 가깨표는 ‘깍’으로 줄여 말하기로 했는데, 아직도 그게 생각나. “공 깍 공 공 깍 깍 공…….” 하고 부르던 소리가.





마지막으로 내가, 아니 많은 친구들이 최고 좋은 선생님으로 꼽는 분은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셔. 학교에 가면 조회 시간 전에 운동장에 나가서 신나게 놀아. ‘미음자 놀이’나 ‘8자 놀이’ ‘공놀이’ 같은 걸 하거든.


미음자 놀이는 술래가 미음자 속에 들어가서, 미음자를 싸고 있는 그림 속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는 놀이야. 8자는 기억이 안 나네. 이런 놀이를 하는데 선생님이 같이 노시는 거야. 함께 뛰고, 소리 지르고, 웃으며…….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공부 잘하는 애든 못하는 애든, 예쁘게 생긴 애든 못 생긴 애든, 부잣집 애든 가난한 집 애든, 다 소용없었어. 똑같이 대해 주셨어. 공부하는 시간에도 공부 못한다고 무시하거나 혼내시는 법이 없었어. 공부가 재미있어졌어. ‘빵’점도 받아 봤던 내가 성적이 깡충 뛰어올랐어.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야.     

 

그렇게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데 선생님이 떠나시게 됐어. 다른 학교가 아닌, 그것도 월남(베트남) 전쟁터로. 월남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 전쟁 중이었는데 거기 파병을 가시게 된 거야. 학교를 떠나시는 날 아이들이 ‘엉엉’ 울며 버스 타는 곳까지 ‘우르르’ 따라갔다 왔어.





나중에 반장 앞으로 편지가 왔더랬어. 군복 입고 총을 들고서 찍은 사진이랑. 아이들은 답장을 하느라 난리였지. 무사히 돌아오셔서 서귀포 ‘위미’랬나 거기서 근무하신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찾아간 적도 있는데, 못 만나고 돌아왔어.     


그 후에 우연히 단짝 친구 집에서 뵈었는데, 처음엔 집안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어. 훌쩍 커버린 내 모습을 보이기가 부끄러웠던 거야. 그러고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네.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려보지 못하고....      


         



영숙은 여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오랜만에 긴 글을 써서 보내왔다누구나 일고여덟 살이 되면 학교로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온갖 추억을 만들어 저장한다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무장했던 시기였기 때문일까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어른들은 그때의 이야기를 바로 엊그제 일어난 일인 듯 말하는 것 같다.


                  

☎ Behind     

엄마도 늑목 무서워했구나? 

1학년 때.

나중엔?

나중에도 건너려고는 안 했던 거 같아.

엄마, 나도 늑목 무서워했던 거 같아.

근데 나중엔 잘 탔어.

넘어가기도 하고?

넘어간 기억은 안 나는데.

넘어가지 못하면 못 하는 거 아니야?

근데, 늑목 위에 한참 앉아있었던 기억이 나.

맨 위 칸 구멍에 다리 넣고?

네.

대단하다. 야.

솔직히 늑목도, 정글짐도

떨어지면 거의 저승행이잖아.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놀이기구가

버젓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우리 때는 정글짐 없었어.

정글짐이 없었어요? 그렇구나.     

그리고 늑목 못 넘는 게 어떻다고

애를 한 시간이나 세워놓고 말이야.

한 시간은 아니었고, 수업 한 교시였으니까.

한 45분 됐을 거야.

요즘 그랬으면 아동 학대라고 했을 걸?

하하하.

근데 엄마는 집에 가서 

그런 일 있었다고 말도 안 했던 것 같아.

왜?

한 번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학교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얘길 안 해봤어.

그러니까 왜 안 했는데요?

글쎄, 내 사생활은 얘기를 안 한 거 같은데. 

엄마, 사생활이라기엔 국민학교 1학년은 너무 애기인데?

몰라. 

그냥 엄마 성격이 그랬나 봐.     





4학년 때 선생님은

왜 선생님 하시다가 갑자기 파병을 가셨어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군인들 군대 갈 날짜 되면 소집을 할 거 아냐.

근데 월남 가는 군대에 뽑혀 버린 거야.

자원이 아니고?

자원 아니야. 차출이야.

집안이 어려워서 자원입대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엄청 젊으셨던 거네.

그렇지 대학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바로 왔던가, 

그다음 해에 왔던가, 그랬으니까.

그것도 교육대학 나왔으니까. 2년 제로 짧았거든.

그럼 군대 갈 나이가 맞긴 하네.

그럼 그때 친구 집에서 다시 만났을 때

처음에는 숨어버렸지만,

나중에는 인사도 하고 그랬던 거예요?

선생님 얼굴이 기억나는 거 보니까

나와서 인사드리긴 했던 거 같아.

그 선생님은 쭉 제주도에서 사셨대?

제주도 사람이었던 것 같아.

이제 돌아가셨고요?

모르지. 연락이 다 끊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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