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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Apr 25. 2022

영숙’s answer. 12년의 소소한 하이라이트

엄마 인터뷰 9차__Q. 학창 시절 혼자의 힘으로 해낸 가장 뿌듯한 일은

     


어린 시절 겪은 어떤 뿌듯한 일 몇 가지는 무의식 속에 가만히 뿌리내리고 있다가 살면서 한 번씩 밖으로 이파리를 낸다그런 이파리들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폭풍이 몰아친 다음 날에도 굳건히 매달린 이파리 한 장을 발견했을 때가만히 미소 짓게 되는 그런 게 바로 삶.     


                 



Q. 엄마학창 시절에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낀 일은 뭐였어?    

           




이번 글감을 쓰라고 네가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해 볼 거리를 나열해 줬잖아? 한 가지 빼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그런 일들이 없었던 거 같아. 


      



선생님께 크게 칭찬 받은 일은 있었을 법도 한데 생각이 안 떠오르고, 운동회에 1등 한 적은 말 하나 마나 없고. 어쩌면 선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수 있는지, 물건을 주워 주인을 찾아 준 적도, 동식물을 키워본 적도 없었어.     


난 이렇게 심심한 아이였나 봐.     





그나마 한 가지 생각나는 건 1등 상을 받은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문예부를 했거든. 다른데 뛰어난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하다 보니 학창 시절 내내 문예부를 했어. 별로 특출나지는 않았어.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아. 독후감을 써오라는 거야.      





무슨 책이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 그런데 마침 국어 교과서에 독후감이 수록돼 있었어. 수업 시간에 배웠거든. 내가 순정 만화의 공주 그림을 잘 베낀다고 했잖아? 글도 비슷해. 교과서에 실린 독후감을 염두에 두고 같은 방식으로 써 내려 간 거야.     


초등학교 때는 줄거리를 쓰고 간단하게 느낌을 붙였는데,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독후감 형식대로 서두와 줄거리 사이사이에 느낌을 넣어가다가 총 감상으로 끝을 맺었어. 그게 전교 1등이 된 거야. 얼떨떨했지 뭐.   


 

 


중‧고등학생 전부 800명가량의 작은 학교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내가 이룬 가장 뿌듯한 일이었어.     


이런 일도 있었어. 국민학교 6학년 때일 거야. 친구가 책 50권 읽기를 제안했어. 방학 동안이었던 거 같은데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방학은 너무 기한이 짧아서…….     





책은 걱정이 없었어. 학교 도서관에 가득했으니까. 처음에는 동화책 종류를 읽다가 개수를 맞추기 위해서 ‘어깨동무’ 같은 아이들이 보는 월간지의 부록까지 한 권으로 치며 목표치를 달성했어. 아직까지 생각나는 거 보면 이것도 뿌듯하게 느꼈던 거 아닐까?       

 

이상이다.

12년의 하이라이트가 이거구나.

소박하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록해 놓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남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무슨 상관인가내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인 것을실수하고 잘못한 기억은 잊히지 않는데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기억은 쉽게 묻혀버린다면 너무 불공평하다삶은 비즈니스가 아니잖아.            


        

☎ Behind     

엄마, 학창 시절에 공부 되게 

잘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어?

시골에서는 잘한 축에 끼지.

전교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대체로 한 2등 정도?

그러면, 공부 잘했던 게 제일 뿌듯한 거 아니야?

시험을 잘 봤다던가, 동네에 소문이 난다던가.

아니 뭐. 하도 맨날 있는 일이니까.

엥?

근데, 엄마 말고 항상 1등 하는 애가 있었거든

선생님 딸이야.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딱 한 번 내가 1등 한 적이 있었어.

대단하네.

그리고 중학교 땐가 우린 시험 볼 때

애들 몇이서 한집에 모여서 

공부하고 그랬거든.

근데 그 1등 하는 애는 밤에 일찍 자고

항상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공부한다는 거야.

그래서 시험공부 하다 말고

네 시쯤 돼서 걔네 집에 가봤었어.

진짜 불이 켜져 있어.

근데 아무도 그걸 따라 하지는 못했지.

그 새벽에 직접 확인할 생각을 다 하다니.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지 그랬어. ㅋㅋ     




엄마도 참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

국어 선생님이 되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국영수에서 국어를 좀 못했어. 엄마가.

수학을 제일 좋아했고,

국어는 더 잘하는 애가 한둘 있었어.

그래서 국어 선생님 될 생각은 안 했나 봐.

엄마 근데 나도 수학을 제일 잘했어.

그래?

결국 돌고 돌아서 이러고 있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사니까 좋잖아.

그렇게 좋지는 않아.

수학 선생님이 됐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

애들한테 쉽게 가르쳐 주고 그러고 싶은 거야.

근데 수학과 갈 점수가 안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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