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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Apr 08. 2022

영숙’s answer. 모슬포 옛집이 아직 거기 있다

엄마 인터뷰 8차__Q.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을 소개해 주세요.


모슬포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대정여고에서 모슬포항으로 내려가는 도로가에 위치한 작고 오래된 집이다사람이 살지 않은 지 꽤 된 것 같지만대문이 꽉 잠겨 집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다그저 어깨만한 높이의 돌담 너머로 훑어만 본다가끔은 깊은 밤에 무단 침입하고픈 욕망을 들끓게 하는 그 집은 사실, 50여 년 전 어린 영숙이 살았던 집이다영숙은 그 집에서 무얼 먹고 무얼 했을까집 안의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어렴풋이 상상만 하던 미지의 세계를 유영할 방법은 영숙에게 직접 묻는 것뿐이었다

 

    



Q. 엄마엄마 어릴 적에 살던 집은 어떻게 생겼어?    

        




‘옛날 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은 뒤꼍(뒤뜰)이야. 상추랑 쪽파가 심겨있는 작은 텃밭 뒤로 함박꽃(수국)과 분꽃이 한 무더기씩 피어있고, 아침에 일어나 뽕나무 밑을 바라보면 오디가 떨어져 있었지. 커다란 나무들이 담 위로 뻗어 있어 친구들이랑 담으로, 나무로 오르락거리며 놀기도 하고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가는 일도 다반사였어.     





무궁화꽃은 그 당시에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었어. 어릴 때였지만 국화(國花)라는 건 알고 있었거든. 국화에 해충이 많이 끓어서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거라고 부정적인 말들을 했었어.    

  

정말 해충이 많이 끓더라고. 하지만 국화로 정해진 게 그렇게 오랜 옛날이겠어? 그리고 티뷔를 보다 보니까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다 모진 풍파들을 겪으며 살아왔던데? 한 집안의 내력만 봐도 행복하게만 산 집을 찾기 어려울 텐데, 이 넓은 세상이야 말해 뭐 하겠어.     





그건 그렇고. 우리 집은 부엌이 개방돼 있었어. 친구들이랑 소꿉놀이를 하려면 대문을 통해 들어와 부엌을 거쳐 뒤뜰로 가거든. 그렇게 애들이 부엌을 지나다니고 나무며 담장을 넘어 다녀도 어머닌 아무 말씀 안 하셨지. 염려스러워서 높이 올라가지만 말라고 하셨어.      


부엌 바닥은 방 밑으로 불을 때야 하기 때문에 움푹 들어가 있었어. 문턱이 높아서 다니기는 좀 불편했지. 그래도 애들이 부엌을 통과했던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 흙바닥이었거든.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불을 땠기 때문에 찬장이나 음식물은 부엌방에 따로 보관했어. 부엌은 넓고 거칠 것이 없는 공간이었지. 그래서 부엌을 통해 뒤뜰로 갔던 거야.      


부엌방에 있는 찬장 속엔 커피잔 세트가 있었어. 그 당시는 그릇 만드는 기술이 모자라서인지 커피잔 색깔이 변해 있었어. 하지만 손님 오실 때만 꺼내는 걸 봤으니 많이 아끼셨던 거 같아.     





어머니는 보리를 섞어 밥을 하셨는데, 우선 보리를 삶아서 반은 쌀을 넣고 밥을 지으시고 반은 부엌방에 걸어 두셨어. 저녁에 또 밥을 지으시려고. 추석에 송편을 빚어서도 부엌방에 두셨던 게 기억나. 거기가 부엌과 가깝고 시원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시원하기로는 마루만한 데가 없었지. 여름날엔 앞쪽 미닫이문과 뒤쪽 여닫이문을 열면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어 얼마나 시원했는지 몰라. 어머니랑 누워 있었던 기억도 나. 마루의 시원한 감촉까지……. 마루에는 어머니가 가장 아꼈을 재봉틀이 있었고 아버지가 쓰시는 책상도 있었는데, 두 분이 안 계실 때는 우리들의 놀이터였어.      





책상 위에 서류 올려놓는 책꽂이 비슷한 것도 있었는데, 우리가 뭘 한다고 내려놓았었거든. 근데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 일종의 역할놀이를 했던가? 소꿉놀이는 풀이랑 흙이 있어야 해서 집안에서 하기는 곤란했고.      

책상 위에는 전화가 있었어. 동그란 판에 10개의 구멍이 뚫려 번호대로 손가락을 넣고 돌려서 거는 전화. 아닌가? 옆으로 난 손잡이를 돌려서 교환을 통해 걸던 전화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두 가지를 다 거쳤나?    


 



안방에는 반닫이 장 하나에 식구들 옷을 다 보관했던 거 같아. 옷이 많지 않았으니까. 그 위에 티뷔가 있었어. 그리고 부엌 쪽으로 세워진 벽에는 1/2 공간이 있었지. 부엌에서 보면 위아래를 반으로 나눠서 아래쪽이 아궁이였거든, 그 위의 반은 안방에서 벽장으로 사용했던 거야. 벽장엔 이불을 올려놓고 한쪽에 전축이 있었어. 레코드판이 몇 개 있었는데 어머니가 따라 부르곤 하셨지.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아직도 기억나.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불어 - (중략) - 지는 해 잡을 수 없으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 봄이 오면 꽃 피는데 영원히 나는 가네.”      


이건 ‘스잔나’라는 곡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야. 어머닌 겨울은 넘겼는데 꽃이 지천으로 피는 5월에 떠나셨어. ‘구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린’이라는 비문의 글이 내 가슴에 새겨졌어. 막냇동생 위의 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죽어서 어머니 가슴에 묻었고, 막내가 6살일 때 그 위의 동생 둘과 첫째인 나까지 넷을 두고 떠나야 했으니,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힘겨웠을 나이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다시 집 얘길 해볼까? ‘우리들 책상’은 기다랬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갖고 오셔서 모두 나란히 앉아서 공부했어. 책상이 높았던 게 기억에 남아. ‘우리들 침대’에서는 너희 이모랑 나랑 같이 잤는데, 전기 장판을 깔았거든. 너희 이모가 어느 날 낮인지 초저녁인지 혼자 자는데, 이상해서 문을 열어 보니까 불이 붙어 있는 거야. 다행히 금방 발견해서 다치지 않고 쉽게 껐어.     





광은 커다란 열쇠로 굳게 잠겨 있었어. 어느 날 열린 걸 봤거든. 어두침침한데 먼지가 잔뜩 쌓인 큰 항아리가 네댓 개 놓여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곡식을 덜어 가시는 거야. 잠겨 있을 땐 몰랐는데 열린 걸 본 후론 쳐다보고 싶지 않았지. 뭐가 나올 것만 같이 무서웠어. 주인 할머니는 진짜 주인은 아니고 관리해 주시는 분이었어.      

진짜 주인이 오신 적도 있었지. 일본 교포셨는데, 양복에 외투까지 아주 말끔한 노신사셨어. 집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몰라도 약간 일본풍이라고 생각했던 게 그 영향이었던 거 같아.     





부엌에 물 항아리는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때 쓰던 거야. 물을 마실 때면 얼굴을 찡그리곤 했지. 항아리 특유의 맛이 배어났거든.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개인 수도가 생겼어. 부엌 옆에 하나 그리고 목욕탕에 하나.      


목욕탕엔 시멘트로 둥글게 만든 탕도 있었는데, 헛간에서 불을 때서 물을 덥혀서 몸을 담글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야. 하지만 물값이 아깝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해서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어. 찬물밖에 안 나오기 때문에 목욕탕은 여름에만 사용했던 거 같아.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구정물통’도 있었어. 쌀뜨물이나, 버리는 음식물 같은 걸 담는 항아리야. 우리는 돼지를 기르지 않아서 모아두면 동네의 돼지 기르는 집 아주머니가 갖고 가셨지. 화장실은 집과 떨어져 있어서 밤이면 가기가 무서웠어. 헛간에는 잠시 닭을 기르기도 했지. 우리가 아주 어릴 때는 마당 한편에 토끼도 키웠고.     


옛집을 생각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슬픔이 늘 함께 따라와. 그러면서도 제주에 내려가면 꼭 그 집을 다시 들여다보게 돼.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남아 있어주길 바라며…….


영숙에게 물어보길 참 잘했다나는 이제 담장 안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지 않아도그 집의 색깔과 냄새소리와 온도 같은 것들을 더욱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계절마다 스스로 옷을 갈아입었을 꽃과 나무의 색깔들보리밥을 짓고 커피를 탈 때 부엌에 스미던 냄새들재봉틀과 레코드판이 돌아가며 마당으로 흘러나왔을 아련한 소리들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동생들과 함께 복작대며 머물렀을 집안의 온도까지더 이상 50년 전의 세계로 가보고 싶어 안달을 부리지 않아도 되게 됐다.            


   



☎ Behind     

엄마, 내가 하는 말 듣고 너무 슬퍼하지 마.

왜?

그 집은 아마 꼭 팔릴 거야.

양옆에 이미 큰 건물이 올라갔는데, 딱 거기만 남아 있잖아.

마당도 있고 나무도 많고 햇볕도 잘 들고.

게다가 길 건너에 공용 주차장도 하나 있더라고.

카페 하기가 딱 좋아서 팔릴 것 같아.

그래? 

그 집 너무 많이 바뀌면 아쉬우려나?

응,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다 부수고 파헤쳐서 높은 건물 세우는 것보다는

카페라도 돼서 엄마랑 같이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그래, 거기가 너무 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주 조금만 변했으면 좋겠어.

우중충하게 남아 있는 것 보다는 카페가 돼도 좋고.

내가 사실 그 집 사서 카페 해볼까 하고 

건물이랑 토지 공시지가 얼마인가 검색도 해봤어.

그런데 토지만 해도 1억 6천을 넘더라고!

그렇게 비싸니?

건물이 아무리 싸도 다해서 2억은 넘을 텐데,

내 비루한 재력으로는 불가능해.

그래서 너무 슬프더라. 

그러네.

나도 왠지 그 집 좋은데.

그래서 로또 더 열심히 사기로 마음먹었어. 

그래. 그래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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