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7차__Q. 가장 기억에 남는 소풍은?
노닐 소, 바람 풍. 소풍(逍風). 생각해 보면, 소풍날엔 늘 바람이 불었다. 바람 쐰다는 말이 알맞을 만큼 적당히 부는 날도 있었고, 머리칼이 시야를 가릴 만큼 비바람이 부는 날도 있었다.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좋았다. 소풍이니까. 그렇게 보면,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좋은 건 좋아서 좋고, 안 좋다고 생각한 것도 오히려 좋고.
Q. 엄마, 소풍 갔을 때 재미난 일 생긴 적 없어?
어머니가 오셨어.
6학년 소풍지인 안덕계곡으로 3살짜리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신 거야. 어머니는 라디오 애청자셨거든. 뉴스에 우리 얘기가 나왔대. 버스에 불이 났다고. 우리 학교 학생들이 소풍 가느라 탄 버스에 불이 났는데, 불도 끄고 다친 사람도 없다고 나왔나 봐. 그런데도 걱정돼서 오신 거야. 남자애들이 탄 버스에 불이 붙었지만, 초기에 여럿이 달려들어 발로 밟아 껐다더라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소풍날이면 다른 애들 어머니는 함께 따라오시는데, 난 한 번도 어머니가 따라오지 않으셨어. 1, 2학년 때는 두 동생이 어려서 그랬고. 게다가 3학년 때는 막내를 가져서 못 오셨거든. 뒤늦게나마 내 소풍에 오신 거지.
난 좀 어리둥절했어. 엄하신 성품이신데 아무도 쫓아오지 않은 곳을 혼자서 오셨으니 말이야. 어머니가 나를 귀히 여기셨다는 것을 알았지. 친구들은 동생이 예쁘다고, 귀엽다고 난리였어.
저학년 때 소풍은 비행장으로도 갔고 송악산도 갔던 것 같아. 커서는 맨날 용모루(용머리)고. 가면 보물찾기, 장기자랑이 빠지지 않았고. 참 시간이 더디 갔어. 그때는. 손꼽아 기다리고. 비 오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하고……. 소풍이나 체육대회 날에 비가 오면, 학교 지을 때 나온 뱀을 죽여서 그런 거라고 믿거나 말거나의 말을 하곤 했지.
전교생이 가는 소풍 말고, 우리 반만 가는 소풍도 있었어. 4, 5학년 때야. 너무 좋아했지. 4학년 때는 단산으로 갔는데, 선생님이 남자아이들만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셨어. 어머니는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주셨지.
항상 그러셨어. 달걀지단을 부쳐, 그 안에 김밥을 넣고 다시 마는 거지. 노란색 한 줄, 흰색 한 줄. 어떻게 그 옛날에, 달걀흰자에 녹말가루 풀어서 지단 부치는 걸 아셨을까? 흰자 지단도 찢어지지 않고 얌전했어.
5학년 때는 바닷가에 갔어. 여자들만 한 반이었으니까 신나게 논 것 같아. 파도에 떠밀려온 톳을 허리에 두르고 머리에도 얹고, 모래밭을 뛰어 다니며 깔깔대고……. 지금 생각하면 어디 남태평양쯤 되는 섬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맑았지. 난 두 동생을 데리고 갔어. 도시락 먹으며 찍은 사진이 있었어. 선생님이 찍어 주셨겠지?
중학교 땐 담임 선생님 고향인 가파도에 갔어. 친구들 몇이서 같이 갔는데 모슬포에서 가파도까지 눈대중으론 금방 갈 거 같지? 아니야, 멀어. 한 시간 쯤 걸렸던 거 같아. 모슬포도 옛스러운데 가파도는 더 예스럽더라. 돌담이 불규칙적으로 쌓인 조그만 밭들이 예뻤어. 물놀이도 하고 그랬어.
굳이 쓰자면 가족끼리 갔던 소풍도 있어. 아버지랑 나랑 바로 밑의 동생 이렇게 셋이서 산딸기 따러 갔었어. 산방산 앞이었는데 도시락 싸가서 먹고 그 도시락에 산딸기를 담아 왔어. 내가 취학하기 전후였으니까, 차도 잘 안 다니는 청정 구역이었지. 그 이야기를 자주 해서 잊지 않았나 봐. 또렷하진 않지만 산자락에 도시락과 딸기가 어렴풋하게 생각나.
밖에 나가니, 바람이 부는데도 너무 따뜻해.
기분이 좋다.
소풍 온 기분이야.
누군가는 삶이 소풍이랬지.
남은 삶은 이렇게 따뜻한 날씨의 소풍으로 채우고 싶어.
나는 소풍날 아쉬워 해본 기억이 없다. 엄마가 있어야 할 순간에는 늘 엄마가 있었고. 도시락에는 노랗고 맛있는 김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람이 불 땐 지퍼를 닫을 수 있는 점퍼를 입었고, 목이 마르면 바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고무 빨대가 달린 물통을 어깨에 멨다. 그게 다 영숙 덕분이었다. 영숙에게 삶이 소풍이라면, 삶은 어쩌면 아련하고 따스한 어떤 순간이겠지. 나에게 삶이 소풍이라면,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억이다.
☎ Behind
엄마, 외할머니가 안덕계곡까지 따라오시고 나서야,
엄마를 귀히 여기셨다는 걸 안거야?
김밥도 그렇게 정성스레 싸주셨는데?
글쎄. 김밥 싸주신 거로는 그런 걸 못 느꼈지.
원래 김밥은 다들 싸주는 거잖아.
어머니가 정성을 더 들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크게 생각을 못했던 거지.
외할머니 김밥처럼 예쁜 김밥 싸 오는 친구들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
아무도 없었지.
친구들이 “이게 모야?” 막 신기해하고,
엄마 막 으쓱하고 그랬어?
어, 그랬지.
외할머니한테 받은 김밥사랑 때문에
엄마도 나를 김밥으로 사랑해 준 거야?
무슨 소리야?
엄마는 늘 치즈를 잘라서 안에다 넣어주지 않고,
김에 딱 붙여서 노란 테두리가 되게 해줬잖아.
친구들이 그거 되게 부러워했어.
치즈가 많이 들어갔다고?
그게 아니라, 예쁘다고.
날 따뜻할 때 소풍 가면
치즈가 살짝 녹아서 더 맛있었는데.
그래? 몰랐네?
역시 엄마 김밥은 치즈김밥이야.
엄마 가파도 언제 갔었어?
여름이지.
그때는 보리밭이 없었어?
가파도가 보리밭으로 유명하잖아.
그땐 보리밭이 있는 줄도 몰랐어.
그랬구나, 가파도는 봄에 가야돼.
나 봄에 갔었는데 너무 아름답더라.
그치, 아름답지.
근데 엄마, 배 타면 20분밖에 안 걸려.
그래? 한 시간은 걸렸던 것 같은데
옛날이라서 그랬나? 엄마 느낌으로 그랬나.
(종용: 느그 엄마가 배를 못 타서 그래!)
진짜 20분밖에 안 걸려?
그렇다니까.
그때는 배가 후져서 1시간 걸렸나 봐. 히히히
엄마는 참 글을 써도 시적이다.
시작과 끝이 시적이야.
삶이 소풍이라니.
그렇다면 삶은 되게 좋은 거네.
안 그래?
그래. 맞아.
본 게시물의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