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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Mar 04. 2022

영숙’s answer. 그것만은 절대 안 돼요

엄마 인터뷰 6차__Q. 어린 시절, 가장 소중했던 물건은?

        


영숙의 답변 첫머리에 그것만은 절대 안 돼요!”라는 문장이 쓰여 있어 놀랐다. ‘그것만은과 절대는 아무 때나 등장하는 단어들이 아니니까문장을 더 읽어보지 않아도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관련된 이야기일 거라는 사실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말을 내뱉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날이었다큰고모가 내게 할아버지의 금반지를 받겠느냐고 물었다나는 할아버지를 성심성의껏 간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유품이 그렇게 내 손을 떠났다    

 

나야 다 큰 어른이지만영숙은 중학교 3학년의 작은 소녀였으니 소중한 물건을 놓쳐버린 그 순간이 분명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 것이다물건은 물건일 뿐이라 해도어떤 잃어버린 물건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Q. 엄마어릴 적에 가장 소중히 여긴 물건은 뭐였어?     

     




“그것만은 절대 안 돼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꼭 이 말을 했어야만 하는 순간이 몇 번인가 있었어. 그중의 한 날이야.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나랑 동생에게 금목걸이와 반지를 유품으로 남기셨어. 반지 모양은 생각이 안 나는데, 목걸이는 생각나. 하트 모양의 메달이 달렸는데, 열어서 사진을 넣을 수 있는 거야. 정말 내게 둘도 없는 소중한 물건이 생긴 거지.     





하지만 우리가 어리니까 클 때까지 보관해 주시겠다고 가져가셨어. 그런데 어느 날 형편이 어려워지자 팔아야겠다고 양해를 구하시는 거야. 어떻게 거부하겠어. 어른들 말씀에 순응하는 것만이 다라고 알고 있었던 때야. 난 그날 아무 말도 못 했어. “그것만은 절대 안 돼요.”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어머니의 옷 하나는 붙잡고 있었어. 보라색 코트였는데, 들고 가서 내 옷으로 만든 거야. 누군가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어. 죽은 사람 옷을 입었다고 뭐에 씌웠다고 했으려나? 난 상관없었어. 옷으로나마 어머니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의식하던 옷에 대한 집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내가 옷에 욕심이 있었던 거라면 인형 놀이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싶어. 어릴 때 인형에 여러 가지 옷을 갈아입히며 놀았잖아. 너희들은 바비 인형이나 총천연색 종이 인형을 갖고 놀았지? 우리 때는 직접 연필로 그린 흑백 인형을 갖고 놀았어. 엄마들이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그건 어린애들이 어부바 놀이할 때나 쓰는 거라서 오히려 종이 인형을 더 갖고 놀았지.     





순정 만화에 나오는 여자애들을 그려서 오렸어. 옷도 잔뜩 그려서 오리고. 난 만화책을 보면서 베껴 그렸지. 창작력은 별로였지만 모방은 제법 그럴듯해서 친구들의 부탁을 많이 받았어. 유난히 예쁘게 그려질 때가 있었어. 그럼 그걸 소중하게 보관하고 조심스레 갖고 놀았어.     





놀다 보면 인형 머리가 댕강 떨어지기도 해. 그러면 목 뒤쪽을 테이프로 단단하게 붙여서 갖고 놀았지. 그런데 어느 날, 반 친구 하나가 헝겊으로 만든 예쁜 인형을 갖고 온 거야. 긴 머리에 얼굴은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볼펜으로 그리고 몸은 날렵해서 얼마나 예쁜지 몰라. 고등학교 다니는 언니가 만들어 줬대.     


한 번만 빌려주면 소원이 없겠는데 안 빌려주는 거야. 언니한테 혼난다면서. 등하굣길에 그 친구 집이 보여서 지나다닐 때마다 생각났지. 그 인형이 정말로 갖고 싶었어. 옷이나 신발이나 학용품은 친구들이랑 비슷한 수준이어서 특별히 아끼거나 부러워할 게 없었는데, 그 인형은 정말 부러웠어.      





인형 말고도 한 가지 더 부러운 게 있었어. 어머니가 암 치료하시느라 서울서 잠시 사셨는데, 그때 우리 식구 모두 서울 불광동에 간 적이 있거든. 외할아버지 직장 상사 중에 서울로 전근을 가신 분의 집에 갔는데, 충격이었어. 작은 정원이 달린 단독 주택인데, 그분 딸이 피아노를 연주해 준 거야. ‘은파’라는 곡이었어. 음악에 문외한이었지만 참 아름다웠어.     





피아노가 있는 격조 있는 부유한 집을 처음 봤어. 그러니 충격이었지. 내가 사는 곳 친구들의 살림살이는 다 비슷해서 격차가 없었거든. 피아노도 참 부러웠고. 그래서 피아노를 조금 배우기도 했는데, 나이 들면 손이 굳어서 배우기가 힘들다고 하더라. 금방 한계가 왔어.    


  



결국 피아노 배우는 건 그만두었지만, 미련이 남아서 결혼하고 얼마 후에 기어코 피아노를 샀지. 내가 아는 만큼만 너를 가르쳐서 나중에 피아노 학원을 보내겠다고. 그러면 피아노 값을 조금 뺄 수 있지 않을까 머리를 쓴 거지. 그 덕에 네가 음악에 관심을 갖고, 피아노와 기타를 취미로 삼으며 노래까지 잘 부르는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때로는 욕심도 적당히 부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을 하트 목걸이는 영숙의 곁을 금방 떠났다그다음으로 소중했던 보라색 코트는 어디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영숙은 말했다한 번쯤은 꼭 빌려보고 싶었던 헝겊 인형은 영숙의 손에 끝내 쥐어지지 않았다     


하지만한가지영숙이 끝까지 놓지 않은 피아노에 대한 열망은 영숙의 품에 안겼다가 어린 나에게까지 왔다영숙의 어떤 소중한 물건(피아노)’은 세대를 건너와 나와 나의 삶까지 만들었다그러니 그것은이미 나의 소중한 물건이기도 하다.     



       


☎ Behind     

엄마, 그 하트 목걸이 안에 사진이 들어있었어?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나는 거 보면 없었나 보다.

그럴 수도 있고.

그걸 팔자고 한 건 외할아버지야?

모르겠어. 직접적으로 말을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외할아버지이지 않았을까 싶어.

엄마 왜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냥 울어버리지.

허허허허. 엄마가 참 어릴 때부터 좀 감정이 무덤덤한 성격이었던 것 같아.

무덤덤한 건 무덤덤하게 지나가야 무덤덤한 거야.

근데 기억 속에 계속 남아 있잖아.

그게 무슨 무덤덤한 거야.

그냥 속으로만 꿍꿍 앓고 표현을 못 한 거지.

그런가?

반지는 어떻게 됐어? 그것도 팔아버리신 거야?

어, 같이.

아쉽네.

그러게, 요즘은 금값도 비싼데.

아니, 내가 아쉽다고 내가. 

그걸 엄마가 계속 갖고 있었어야, 나한테 물려주지. 

하하하하하하핳. 그렇구나.

그거 진짜 레어템이었을 거야.      



#화천선등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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