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5차__Q.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빵은 포근하게 생겼다. 세상에 모나거나 날선 빵은 별로 없다. 다 그럴듯한 곡률을 가졌다. 막 만들어진 빵은 윤이 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아마, 빵 품에 안기면 엄마 품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 빵이 엄마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니, 빵이 더 좋아지려고 한다.
Q. 엄마, 엄마는 어릴 적에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했어?
단연 빵, 빵, 빵이야! 국민학교 시절 점심시간에는 집에 다녀오도록 허용이 됐어. 그때면 어머니는 항상 빵을 쪄 놓으셨지. 밀가루에 소금, 설탕, 이스트를 넣고 되직하게 반죽해서 찜기에 면보를 깔고 부어서 찌는 거야. 다 쪄지면 장기판 무늬로 자르셨는데, 눈에 선하네.
혼식, 분식을 장려하던 때라 곳곳에 포스트가 나붙곤 했어. 밀가루는 배급으로 나왔던 거 같아. 6.25가 끝나고 한참 지났지만, 어려운 시절이라 밀가루뿐만 아니라 옥수수 가루까지 들어왔나 봐. 국민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옥수수빵을 한 덩이씩 나누어 주었지. 무료 급식으로. 제법 컸어.
어떤 날에는 빵이 남았어. 하교 시간에 몇 명 남으라고 해서는 하나씩 더 주셨어. 집에 가는 길이 정말 즐거웠지. 생각은 거기까지야. 집에 가서 먹던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아. 하지만 빵의 질감과 맛은 아직까지 머릿속에 떠돌고 있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빵도.
저녁에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도 종종 빵을 사들고 오셨어. 단팥빵이야. 그때는 ‘고급빵’이라고 불렀지. 빵집에는 고급빵과 곰보빵이랑 밤만주밖에 없었던 거 같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빵을 하나씩 받아들고 먹는데, 막내 동생만 밤만주를 먹었어. 특별히 은박지에 싸인 비싼 빵이지. 우리도 먹고 싶었지만 별로 불평은 안했어.
막내 동생은 항상 특별 대우였거든. 계란후라이도 막내 동생만 해주셨고 간유도 구해다 주셨어. 우린 매일, 담장 밑에 둘러가며 심어 놓은 호박으로 찌개를 해주셨지. 아니면 감자국이나, 조림밖에 생각이 안나. 친구들도 비슷했을 거야. 가끔 생선을 먹었는데 난 싫어했어. 그래도 못 먹겠다고 투정 부리진 않았던 거 같아.
그런 시절에 어떤 아저씨가 외국 나갔다 오셨다며 햄을 선물로 갖고 오신거야. 그게 햄이란 건 아주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됐지만 정말 별천지 맛이었지.
또 한 번 그런 맛을 본적이 있었는데 손님이 오셨을 때야. 서울로 전근 가신, 아버지의 상사분이 사모님과 함께 오신 적이 있었거든. 점심으로 중국집에 요리를 한상 시키셨어. 손님이 가시고 난 다음에 방에 들어갔더니 휘황찬란한 거야. 우리는 상에 달라붙어 신나게 남은 음식을 먹었지.
그 때 먹은 탕수육 맛이 지금은 좀 아리까리하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깊이 남아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는데. 정말 맛있었거든. 탕수육이 흔해진 지금까지도 그것과 똑같은 맛을 찾아내진 못했어.
그러고 몇 해 지나서 우리 마을에도 라면이 들어오고 라면땅 과자도 들어왔지. 생라면도 많이 먹었어. 인디언밥도 있었고 호빵도 있었어. 크면서는 고구마와 귤이 흔해져서 밥 대용으로 먹곤 했지.
빵을 그렇게 맛있게 매일 먹으면서 웬 식탐인지 어느 날은 떡이 먹고 싶은 거야. 그 당시 우리 집은 설과 추석 때만 떡을 먹을 수 있었거든. 애들이 다들 동네 골목에 나와서 놀잖아! 그러면 어떤 애들은 지난밤에 제사를 지냈다며 떡을 들고 나와 먹었어. 그게 부러웠어. 빵도 좋아했지만 떡도 좋아했거든.
하루는 어머니한테 우리도 제사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어. 떡이 먹고 싶어서. 그런데 몇 해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어. 그 후로 제사 때마다 떡이 나왔겠지? 하지만, 제사 때 기억이 전혀 없어. 절도 하고 그랬을 텐데. 떡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생각이 안 나네.
지금은 그 묵중했던 마음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일상으로 채워졌어. 오늘도 아빠가 읍내에 나가면서 떡을 사오겠다고 하셔서, “난 바람떡이 맛있더라. 바람떡도 사오세요!” 라고 했어. 이렇게 한편으론 무덤덤히 또 한편으론 웃어가며 여전히 살고 있네.
빵으로 시작해서 빵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야기가 떡으로 끝나고 말았다. 빵처럼 보드라운 영숙의 마음속에 ‘우리도 제사 지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따끔하게 남아 있다니. 빵처럼 부풀었던 내 마음도 푸욱 꺼져 슬퍼졌다.
☎ Behind
엄마, 옛날에 나 국민학교 다닐 때, 일요일마다 우리 가족 다 같이 목욕탕에 갔잖아. 집에 오기 전엔 꼭 빵집에 들러서 맘모스나 모카빵 같은 거 사왔고.
어, 그랬던 거 같다.
그거 나는 아빠가 먹고 싶어서 갔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였어?
몰라. 아빠도 좋아했겠지 빵을.
그건 그렇고. 그렇게 나한테 빵을 사서 먹여놓고
빵에 익숙하도록 키워놓고서, 이제 와서 ‘빵녀’네 뭐네 놀리는 건 너무한 거 아냐?
으허허허. 그러게.
그때는 몰랐으니까. 밀가루 음식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몰랐잖아.
내막?
살찌기도 하고, 많이 먹으면 안 좋고.
그래도 빵은 맛있어.
그건 그렇지.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께 "우리도 제사 지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걸 기억하지만,
아마 외할머니는 아프셔서 돌아가시게 됐을 때도 그런 말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을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나만 기억나는 거잖아. 그런 건.
그래 그렇기도 해.
아니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늘나라에 가고 나서야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났을 수도 있어.
응? 무슨 소리니?
외할머니가 뒤늦게 엄마의 어릴적 바람이 기억나서
제사가 왕창 있는 집으로 시집가도록 도와주셨나보지.
떡 엄청나게 많이 먹게.
으하하하. 핫핫핫.
떡 많이 먹어서 좋아?
그래. 좋다.
어제 바람떡은 먹었어?
아니 아빠가 안 사오셨어. 잊어버리셨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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