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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Feb 05. 2022

영숙’s answer. 불편한 기억, 찬란한 추억

엄마 인터뷰 4차__Q. 유년 시절 등하굣길을 묘사해 주세요.


        

여자애들의 등하굣길의 추억은 조금 아기자기한 편이다아기자기한 마음으로 다니는 길이어서, ‘어떤 수단을 이용했는지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보다는 누구와 함께 오갔는지어떤 기분이었는지가 쟁점일 때가 많다내가 그랬으니까나의 등하굣길 추억이 여러 잔재미들과 온갖 기분들로 뭉쳐있는 것처럼영숙도 그렇다는 걸 이 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Q. 엄마엄마 어린 시절에 등하굣길은 어땠어요?  

   




운동장 한 귀퉁이에 빨간 외투를 입은 여자 아이가 서 있다

그 앞에 또래 아이가 뭐라, 뭐라 채근한다.

“너,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빨간색 입었지?”

아무런 반박도 대꾸도 없다.

말없이 길고 긴 시간을 서 있다.     





그게 나야. 빨간 외투를 입은 아이. 초등학교 4학년 방과 후지. 다른 애들은 춥다고 집으로 달려갔는데, 그 아이가 잠깐 보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그렇게 됐어. 이 친구가 왜 그러는지를 그 때는 몰랐지. 시간이 한참 흐르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깨달았어.      





옛날엔 읍 소재지에 영화관이 있었거든. 성업이었지. 선생님들은 종종 영화관 시찰을 하셨어. 학생 입장 불가인 영화를 애들은 어찌 그리 보려고 애썼는지……. 하루는 이 친구가 운 좋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온 거야. 4학년 때 엄마 운동장에 세워뒀던 그 친구 말이야. 


애들 앞에서 비비안리가 얼마나 예쁜지 으쓱대며 이야기했어. 자신이 꼭 비비안리가 된 것처럼. 그 애가 참 조숙한 애였던 것 같아.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총각 선생님이셨거든. 그 선생님 좋아해서 나한테 그런 거겠지?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등하교에 애를 먹은 적이 있었어. 동네 아이랑 머리채를 잡고 싸운 적이 있거든. 생전 처음으로 한 몸싸움이었어. 걔는 많이 단련된 애 같더라. 내가 졌지 뭐. 그 다음부터 등하교 길에 그 애랑 맞닥뜨릴까봐 조마조마하며 다녔어.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멀리 이사를 갔나봐. 학교에서도 안 보였어.     





국민학교 2학년 때는 학급에서 부반장을 했어. 그런데 왜 나를 부반장을 시켰는지 모르겠어. 머리채 잡고 싸운 아이 때문에 등하교 길도 무서워하던 나를 말이야. 아마 1학년 때 공부를 잘해서 뽑았겠지. 성적이 중요했으니까.      





그때는 남자는 반장, 여자는 부반장이 통념이던 시대였어. 어느 조회 시간이었어. 남자 한줄, 여자 한 줄 서는데, 반장이랑 부반장은 맨 앞에 서거든. 그런데 반장이 나를 자기 옆에 못서게 하는 거야. 인상을 막 쓰고 내 쪽으로 흙을 차며 심통을 부리네. 앞에 안서면 안 되는데……. 그때도 학교에 가기가 싫었어.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고, 학교 정문에 다다르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어정거리다 지각도 하고.     





고학년이 되면서 이런 어려운 신고식에서 벗어나게 됐지. 학교는 다 걸어서 다녔어. 걸어 다닐만한 거리고 버스도 없는 길이었지. 국민학교 가는 길에는 공동 수도가 있고 큰 길로 접어들면 가게들이 있었는데, 오스카 빵집이랑 명찰집만 기억이 나.      





중·고등학교는 한 울타리에 있었는데, 마을을 벗어나 들판을 지나야 했어. 거기 겨울바람이 얼마나 센지 ‘시베리아 벌판’이라고 불렀지. 그 ‘시베리아 벌판’이 가을에는 꽃길이 됐어. 코스모스가 길 양쪽으로 무성했거든. 어느 날인가 누가 카메라를 들고 와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코스모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 그때는 카메라가 귀했거든.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등하교를 했어. 주로 시베리아 벌판이자 꽃길인 정문으로 다녔는데, 가끔씩은 후문으로도 다녔어. 후문으로 가는 길엔 그림 같은 집이 있었거든. 눈이라도 쌓이면 멈춰 서서 마냥 보고 싶었어. 키가 아주 큰 나무들과 그 앞의 작은 초가집 그리고 넓은 마당이 있었거든. 모든 풍경에 하얗게 눈이 쌓여 세상이 다 고요한 거야.     





며칠 전, 눈이 함빡 쌓인 내 생일날 우리 둘이 동네를 휘저으며 돌아다녔잖아. 모두들 떠나버리고 몇 집 남지 않은 조용한 동네를. 그때 옛날에 등하교했던 후문 길이 생각났어. 시공간은 다르지만 눈 쌓인 시골 풍경은 어딘가 닮지 않았겠니? 마치, 옛날에 그 고요하던 세상에 네가 생명을 불어넣은 거 같다고 느꼈어. 


너 아니었으면 개밥 주러 마당에 나왔다가 “와아 예쁘다!” 한마디 하고 방안으로 쏙 들어갔을 테니까. 비싼 카메라로 찍은 작품 같은 사진들이 기대된다. 우리가 연발하던 감탄사만큼 멋진 겨울이 살아나오길.




  

질투가 많은 아이조숙한 아이피하고 싶은 아이나를 싫어하는 아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한다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다칠 필요가 없었는데……영숙의 등하굣길 추억이 꽃길과 그림 같은 집키 큰 나무와 하얀 눈으로 마무리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불편한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지고찬란한 추억은 갈수록 선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Behind     


엄마는 옷에 얽힌 기억이 많네?

그러게.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외할머니가 주변 애들에 비해서 옷을 잘 사주시고 그랬던 것 같아. 그니까 애들이 조금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엄마 아무래도 좀 잘살았나봐?

그 동네에서는 그랬지. 다 조그맣게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래도 좀 그렇다. 빨간 옷 입었다고 질투하고. 

그때가 4학년일 땐데, 총각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어.

대학 졸업해서 바로 오셨나, 두 번째 해에 오셨나, 하여튼 초야 초.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되셨는데, 

그때는 여자애 남자애 반씩 합반이었거든. 4학년 때 까지는.

근데 여자애들은 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거야.

남자애들은 거진 다 선생님을 싫어하고.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면 선생님이 운동장에 나와 가지고

애들하고 같이 놀았어.

근데 대체로 여자애들만 놀았던 것 같아.

그러면, 엄마 중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갑자기 선생님 오신다고 해서 도망쳤다는 일화도 그 선생님 얘기야?

응. 

좋았나봐?

최고 선생님이었지.

후후후.     





그 반장 남자애는 나중에 안 만났냐고 안 물어보냐?

응. 안 물어봤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몇이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

거기서 걔를 본거야. 봤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심성이 너무 좋아진 거야. 애가.

성질이 나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혼자 웃고 말았지.

안 그랬으면 한마디 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물어는 봤어야지, 왜 그랬냐고.

애들이 막 놀리니까 그랬던 거야.

왜 놀려? 앞에 둘이 같이 서 있다고?

응. 한창 그럴 애들이잖아. 나이대가.

혹시, 엄마 좋아했던 거 아냐?

아니야. 절대 아니야. 요즘 애들이랑은 달라. 

그때 애들은 그런 감정에 무던했다고. 

좋아하고 그런 거 몰랐어.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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