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인터뷰 18차__Q. 20대가 되어 처음으로 경험해 본 일은?
종용에 대한 인터뷰가 청년 시절로 넘어오면서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20대의 종용에게 군대는 청춘 그 자체이자,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온통 군대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을 알면서도 하려던 질문을 했다.
Q. 아빠, 20대 초반에 처음 경험해 본 일은 어떤 게 있었어요?
나 김종용은 20대 청춘을 국가에 헌납한 사람이다. 19살에 군 생활을 시작하여 20대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하사관 ‘쫄병’ 생활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군 생활은 강화도 교동이라는 곳에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얻어터지는 시절이었다.
군 생활은 늘 비슷했지만 그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공수 숙달 훈련이었다. 일명 ‘짬쁘’라고 불렀다. 나는 군 생활을 하느라 20대가 되고도 어디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지만, 그 훈련을 받으러 다녀오는 일은 꼭 여행처럼 느껴졌다.
공수 교육을 받은 하사관은 3개월에 한 번씩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 공수 교육대에 가서 공수 낙하 훈련을 한다. 훈련은 약 1주일 동안 실시되는데, 3회 정도를 낙하하면 회당 6,000천원의 수당이 나왔다. 훈련을 마치고 수당을 받아서 선술집에서 술 먹고 트로트를 부르며 하루 신나게 놀았다. 그다음 날 부대로 복귀하면 훈련이 끝났다.
아주 단순한 일정이었지만, 그렇게 훈련하고 놀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다. 그러니까 그건,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너무나 재미나는 훈련이자 여행이었던 것이다. 내 20대를 국가에 다 바쳤으니 힘들었던 일은 말로 다 못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좋은 기억들도 함께 생각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강화 교동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김포 지경이라는 곳으로 부대를 이동했다. 그리고 약 6개월 정도 훈련만 하고 살았다. 당시 부대 쪽문으로 빠져나가 산 하나를 넘으면 ‘청수골’에 갈 수 있었다. 거기엔 국수와 돼지고기, 홍어 무침을 파는 곳이 있었다. 얼마나 맛나던지 부대에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쳐 묵고 있기도 했다. 부대에서 찾으러 나오면 겁나게 얻어터지면서도 얼마나 좋았던지 모른다.
김포 지경이라는 곳은 군기가 흐려진 상태를 바로잡아서 다시 전방 경계 근무지로 투입하는 후방 교육대였다. 지경에서 약 3개월 정도 훈련하고 나면 경기도 연천으로 보포병 종합 훈련을 나간다.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는 미군 헬기를 타고 갔다. 그때 병들이 말썽을 일으키곤 했다.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눈에 보이는 헬기의 나사를 전부 다 빼가지고 숨겨놓고 내어놓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나사를 찾아서 전부 반납하기 전까지 헬기는 복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나사가 다 나올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야만 했다. 병들을 교육해야 하는 하사관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천으로 훈련을 나가면 꼭 묵어봐야 하는 것도 있었다. 바로 고구마 줄기로 만든 막걸리였다. 얼마나 독한지는 먹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먹을 땐 아주 달콤하고 술술 잘 넘어가지만, 취하고 나면 그다음 날은 하루 종일 헤롱헤롱거렸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처음에는 선배들이 술에 장난을 친 줄 알았다. 다음 기회에 내가 골탕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 술이 그런 술이었다.
물론 계속 부대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종종 휴가도 받았다. 하지만 집에 간다고 한들 몸이 편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할머니, 두 노인이 일하고 계시는데 내가 휴가라고 놀고 자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자니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또 일만 하다가 조용히 부대로 복귀했다. 그것이 내 20대의 생활이었다.
나에게는 직업군인인 남동생이 하나 있다. 그러니까 종용에게는 아들이다. 부자가 함께 해병대 하사관이라는 공통분모를 얻은 것이다. 그 후로 가족이 한데 모이면 둘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오늘의 인터뷰와 같은 아련한 추억은 언급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질문하길 잘했다.
☎ Behind
공수 낙하 훈련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예요?
처음에 공수 낙하를 할 수 있게끔 4주 교육을 받아.
3주 지상 교육을 받은 뒤에, 1주 낙하 교육을 받지.
일주일 동안 세 번 낙하를 해.
두 번은 비무장으로 뛰어내리고,
한 번은 완전무장한 채로.
거기서 합격을 해야 낙하 패용증을 줘.
처음에 교육 받을 때는 130-150명 정도인데,
다 떨어지고 40-50명 정도만 패용증을 받은 것 같아.
패용증을 받은 후에는 3개월에 한 번씩 낙하 숙달훈련을 하고.
3번을 뛰면 한 번에 6천 원씩 주는 게 바로 그때야.
다해서 낙하를 몇 번이나 하셨어요?
내가 중사 때도 계속했으니까.
총 60회 이상 했어. 계속하는 거야.
하사관만 하는 거예요?
병들도 교육을 받으면 할 수가 있어.
그런데 해병대 2사단에서는 하사관들만 보내줬어.
낙하하는 거 안 무서웠어요?
처음에는 되게 무서웠지.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사정없이 뛰어내렸지
뒤지든 살든.
근데 나중에 10회 이상 올라가면 그냥 재미야, 재미.
하늘에 올라가서 딱 봤는데 바람이 너무 불면
“야, 우리 하지 말자. 바람이 너무 불어.
다리 부러지면 너가 책임질 거야?
안 돼. 내일 해, 내일.” 그러면,
다시 비행기가 돌아와 부러.
그 훈련을 일주일 정도 가는데,
되게 소풍 가는 느낌이고 재밌었어.
비행기 타고 올라가서 낙하할 때는 항상 떨리긴 하지, 항상.
내 낙하산이 펴질까, 안 펴질까, 그런 두려움도 있고.
헬기 타고 하신 거예요?
아니야, 아니야.
프로펠러가 밖으로 나와 있는 비행기였어.
뛰어내릴 때 구호 같은 것도 외쳐요?
응. 근데 뛰어내릴 때가 아니고,
소장이 “뛰어!” 하면, 일단 뛰고 난 다음에,
“일만, 이만, 삼만, 사만!”하고 외쳐.
예? 일만, 이만, 삼만, 사만이요?
그래. “하나, 둘, 셋, 넷” 하면 타이밍이 너무 빠르니까.
그러고 위에를 쳐다보는 거야. 낙하산이 펴지는지 어떤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야 하고.
고구마 줄기 막걸리는 시판 상품이었어요?
시판 상품이 아니야.
우리만이 아니라, 육군도 거기로 훈련을 가거든.
군인들한테 팔려고 그냥 자기들이 만들어서 파는 거지.
먹을 때는 얼마나 맛있고 좋은지 모르는데
먹고 나서 다음 날 죽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선배들이 처음 따라간 후배들이 있으면
고구마줄기 막걸리를 딱 사서 먹으라고 줘.
근데 자기들은 잘 안 먹어.
한 잔만 먹고 “맛있지? 맛있지?” 하면서 먹이지.
그러면 먹고 죽어버리는 거야.
그럼 그 후에는 그 막걸리를 어디서도 본적 이 없어요?
응, 한 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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