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18차__Q. 첫 아이가 생겼을 때 기분이 어땠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아이가 없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당연하게 결혼하고 당연하게 아이를 낳고 당연하게 아이를 또 낳던 시대. 직업이 있든 없든, 혹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가정생활을 꾸리는 방법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던 시대. 그럼에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어떤 의문을 떠올리는 대신,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어진 인생의 과제를 하나씩 하나씩 재빠르게 해결해 나갔다.
Q. 엄마, 나 임신하고 낳을 때 어땠어?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데리고 마실 나왔다가 우리 집에 들러 한 마디씩 훈수를 두던 동기생 부인이, 한 달쯤 지나서부터는 더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어.
“좋은 소식 없어? 이상하네. 생길 때쯤 됐는데...”
자기는 결혼하고 아기가 바로 생겼다는 거야. 그런 기다림 속에 서너 달이 지나자 기별이 보였어.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모두 반가워하셨지. 남편의 형제들은 많았지만, 시댁에서는 할아버님도 아버님도 독자셨거든. 손이 귀했기 때문에 장손을 기다리고 계셨던 거야.
친정은 아버지가 6.25 때 혼자 월남하셔서 혈혈단신인 데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지들과 왕래가 끊기는 바람에 적적해하셨어. 그러던 참에 네가 생긴 거지.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하시게 됐으니 얼마나 설레셨겠어? 모두들 좋아하시니 엄마도 아빠도 덩달아 좋았지.
어느 날 점심시간에 아빠가 집으로 오셨어. 집 근처에 중국집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짜장면을 사 주시는 거야.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 더 맛있었어. 입덧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나 봐. 막, 뭐를 먹지 못하고 구역질을 한다든가 그러진 않은 거 같아.
오히려 잘 먹게 된 게 있어. 전엔 사과를 4분의 1쪽밖에 못 먹었더랬거든. 향이 싫었어. 근데 사과가 먹고 싶더라고. 그 당시엔 사과를 트럭에 싣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팔곤 했는데, 빨갛고 작은 플라스틱 양동이에 가득 담아 2,000원에 팔았어. 그걸 사다가 한자리에서 한 갠가 두 개를 다 먹었어. 그래서 딸인가 보다 생각했어. 과일을 좋아하면 딸이고 육고기를 좋아하면 아들이라고 했거든.
그 당시 초음파 검사는 없었어. 엄마는, 엄마 생각에 딸이니까 아기 용품을 분홍색으로 샀어. 이불도 목욕통도 분홍색이었고 배냇저고리는 흰색밖에 없었어. 신생아 속싸개도 흰색이었고 바디로숀도 사고 분도 샀어. 아마 모빌이랑 딸랑이도 미리 샀을걸? 기저귀는 전용 천을 사다가, 자르고 감침질을 해서 서너 번 비벼 빨고, 삶았다가 널었다가 반복해서 부드럽게 만들었어.
출산일이 다가오자 미리 짐을 챙겨 두었어. 아기 옷이며 싸개며 기저귀 같은 것들을 산기가 오면 바로 들고 병원으로 가려고. 아기에 대한 기대를 한껏 하면서 기다렸지.
‘똑똑하고 야무진 아기로 태어나주렴.’
한편 자연분만이라 얼마나 아플지 불안해하며 날짜가 가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머릿물이 터진 거야. ‘양수’라고 하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가 없었어. 허둥지둥 대며 주인아주머니한테 얘기하고 네 아빠한테 전화를 했지. 주인아주머니 댁 전화로.
아빠랑 둘이서 챙겨둔 가방을 들고 택시를 타고 이용하 산부인과로 갔어. 바로 입원실에 들어갔지. 화장실이 딸려 있는 좌식 방이었어. 화장실도 자주 갔는데 ‘혹시 아기가 나와 버리면 어쩌지?’ 하고 안 해도 될 고민을 했지.
‘허리로 튼다.’는 말을 들었는데 엄마가 그랬어. 보통은 배가 아파서 낳는데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야. 엄마도 허리가 아픈 거야. 맞아서 아픈 거와는 다른 느낌인데 짓눌리는 느낌이었나? 오래되니까 잘 기억이 안 나네. 아프다가 좀 주춤했다가 다시 아프고 반복하더라. 낮에 입원했는데 다음날 오전에야 분만 침대에 올라갔어. “힘주세요-.”를 대여섯 번 들은 후 네가 태어났지. 낳는 건 생각보다 안 아팠어.
넌 정상 체중이었어. 손가락 발가락도 열개씩 정상이라고 했어. 의사 선생님이 들어서 보여 주시는데 신생아는 처음 본 거잖아? 조막만 했어. 이쁜지 못생겼는지 구분할 수가 없는 형태로 내 눈앞에 있었어. 낳고 나서 바로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몸이 얼마나 가볍던지 날아갈 거 같더라.
외할머니도 전화받고 병원으로 찾아오셨더랬지. 산후조리원은 없었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시던 때지. 시어머니도 며칠 있다가 오셨어. 서너 번 차를 갈아타야 올 수 있는데 글 한자도 모르시면서 찾아오신 거야.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어.
아기를 낳은 날 바로 퇴원했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 그때부터 “응애-, 응애-.” 소리에 따라 이리 가고 저리 가며 살았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아기 키우기에 매진했어.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나 낯설었는데도 말이야.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영숙이 그렇게 당연한 마음으로 나를 낳아주어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아기를 낳는 일이란 여전히 한없이 크고도 두려운 일이지만, 영숙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 또한 긴 인생의 소소한 하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짜장면을 먹고, 사과를 먹고, 분홍색 육아용품을 사는 일. 어쩌면 임신과 출산은 태산 같은 일이 아니라, 태산을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 Behind
엄마는 걱정 없었어?
‘아기가 건강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기가 너무 멍청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 말이야.
그런 걱정은 안 했던 것 같아.
어떻게 그런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
글쎄. 주변에서 그런 아이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럴까?
그럼, 그런 걱정은 없었어?
아들을 기대하시는데
딸인 것 같아서 드는 걱정.
하하하.
걱정은 안 했지.
왜 걱정이 안 돼? 그 시절엔 다들 아들을 원했잖아.
엄마가 조금 뭐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엄마 성격이 순해져서
남의 생각도 많이 해주고 그러는데,
그 당시에는 아니었던 것 같아.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랬어.
그러면, 그런 걱정은 없었어?
모두 다 착하고 바르게 크는 건 아니잖아.
‘나중에 불량 청소년 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
너 고등학교 때 하고 다니는 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지.
아 그땐 내가 좀 그랬지.
엄마 미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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