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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는 말의 무게

프롤로그

by 현루

인연이라는 말, 우리는 참 많이도 사용합니다.
"이것도 인연이지요", "인연이 아니었던 걸까요", "어쩌다 보니 인연이네요"
짧은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담기도 하고, 어떤 관계의 시작과 끝을 설명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말은 정말 그렇게 가볍고 손쉬운 것일까요.
살아가면서 저는 점점 그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 담긴 무게와 흐름, 그리고 사라진 뒤에 남겨지는 침묵의 깊이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절에 머물던 시절, 사람들과의 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오히려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은 단지 ‘누구와의 만남’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흐름이자, 방향이었고, 때로는 아무런 말 없이 다가와 스며드는 어떤 조용한 힘이었습니다.

사람을 잃고, 사람을 보내고,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인연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놓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머무를 수 있다는 역설도 함께요.

이 책은 특정한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삶의 흐름 속에서 마주한 인연의 본질을 사유하고,
그 사유를 따라 읽는 여러분 스스로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여백을 두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관계에 지쳐 있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상대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다 결국 자신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글이 조용한 쉼표가 되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과의 만남도 하나의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그 인연이 얇지 않고, 잠시라도 따뜻하게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연이라는 말,
이제는 가볍게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말이 품고 있는 시간과 마음의 결을 오래 느끼고,
그 뒤에 조용히 한 줄 남겨봅니다.



인연은, 흘러야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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