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은 겪으면서 강해진다.
비장애인일 때는 멘탈이 강하다고 믿었다. 작은 일쯤은 버텨낼 수 있고, 웬만한 고통쯤은 웃으며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뇌출혈은 그런 자만심을 무너뜨렸고. 정신도 무너졌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그때 알았다. 멘탈은 원래부터 강한 게 아니라, 극한 상황 속에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거란 걸. 이 글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제 더는 걷지 못한다.
두 다리 중 하나는 무게를 잃었고,
균형은 내 의지 밖의 일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걷는 재활 운동을 한다.
요즘은 사발지팡이 없이,
겨우겨우 하루에
세상이 말하는 ‘걷는다’와는 다른
걸음이지만,
나는 지금 이 걸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안다.
처음엔 너무 조급했다.
이러다 다시는 못 일어나는 게 아닐까.
이대로 병상에 묶여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무기력과 불안은 내 손과 다리보다
더 무거운 짐이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슴 위에 올라앉았다.
몸은 분명 아팠지만, 마음은 더 아팠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보다, 앞으로의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더 깊게 흔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삼키는 생각들과 싸워야 했다.
‘왜 나인가’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건가’
이따금 마음속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면 고개를 돌려 벽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 숨이 내 유일한 확신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겨우 하루, 또 하루를 버텼다.
몸의 통증은 단단하고 명확했다.
관절의 날카로움, 허벅지의 묵직한 무력감,
균형을 잃은 몸이 바닥을 향해 쏠릴 때의 두려움.
사발지팡이를 짚고 처음 일어섰을 때,
나는 내 발이 아니라 지팡이의 중심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마음의 통증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고,
어떤 날은 멀쩡해 보이다가도
혼자 남은 밤이면 나를 무너뜨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몸의 고통은 육체를 통해 오지만,
마음의 고통은 존재 전체를 흔들어버린다는 걸.
그리고 그 고통은 내가 살아온 모든 기억,
자존감, 희망, 믿음…
그 모든 걸 끌어다 끓이기 시작한다는 걸.
시간은 내게 두 가지를 가르쳤다.
하나는, ‘몸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마음만 놓지 않으면 반드시 나아간다’는 것.
걸을 수 없었던 시절에도
나는 매일 창문을 열었다.
햇살을 얼굴에 받아들이고,
그 하루를 살아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게.
걸음은 여전히 느리고 적지만
어정쩡한 반걸음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 걸음은 다시 일어선 발걸음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은 의지의 발걸음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묻는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셨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아직 못 걷지만,
마음은 훨씬 멀리 걸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진짜 회복의 의미다.
내 마음이 여전히 이 삶을 붙들고 있고,
내가 여전히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늘 몸이 낫는 걸 치유라고 부르지만
실은 ‘내가 나를 다시 믿기로 한 날’이
진짜 치유의 시작점이다.
오늘도 반 걸음을 걸었다.
너무 느렸고, 허벅지가 떨렸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데리고 걸었다.
몸은 여전히 낯설고,
내가 살던 세계는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새로운 세계에서
나를 다시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조급함은 늘 나를 밀어붙인다.
“빨리 회복해야지.”
“이대로는 안 되잖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그런 목소리는 처음엔 나를 자극했지만
점점 나를 짓눌렀다.
나는 이제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살아도 된다.’
‘불완전한 몸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만들 수 있다.’
‘다만 마음만 놓지 않으면 된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과거의 건강했던 나와
현재의 불편한 나 사이,
걷지 못하는 현실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 사이.
그 사이에서 나는 배운다.
느리게 걷는 삶의 깊이,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의 고요함,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으려는 마음의 온도.
그리고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말하고 싶다.
정신력이란 게 있다. 흔히 '멘탈'이라 부르는 그것.
많은 사람이 다쳤을 때 육체를 걱정하지만,
실은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몸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멘탈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게 아니다.
작은 절망이 차곡차곡 쌓여 벽이 되고,
그 벽이 점점 내 안의 빛을 가려버린다.
내가 한동안 웃지 못했던 건,
몸의 아픔보다 그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마음의 그림자,
그곳에 나는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프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눈물이 나면 참지 않고 흘렸다.
그게 약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멘탈을 다스린다는 건,
기운을 내라는 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을 안아준다.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느려도 좋아. 멈춰도 괜찮아.
오늘은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해.”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나 자신에게 남긴다.
“오늘도 그 반 걸음,
정말 잘 해냈어.
조급해하지 마.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오늘도, 마음만 놓지 않으면 돼.”
"뇌졸중이지만 아직 작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