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경계를 지키는 마음
불사음(不邪婬)’이라는 말은 낯설고
어렵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한자를 그대로 보면
는 뜻이지만, 이것을 오늘날 우리 삶에
맞게 이해하려면 조금 더 넓은 관점이 필요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음(邪婬)’이란 단순한
성적 부도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지 않는 관계,
욕망으로만 맺어진 관계, 책임지지 못할
행동 등도 이 계율에 포함됩니다.
즉, 이 계율은 성적인 절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관계 맺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내 욕망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때
우리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도 지극히 당연한 감정입니다. 문제는 이 욕망이 상대방의
의사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때,
관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발생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관계를 ‘사음’이라 하고,
이를 경계하라고 가르칩니다.
단지 스스로를 절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생명과의 건강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지키기 위한 계율인 것이죠.
바른 사랑, 바른 만남
그렇다면 바른 관계란 무엇일까요?
첫째, 상대를 물건처럼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계는 상호적이며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감정이나 몸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은 결국 둘 모두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둘째, 책임을 갖는 마음입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하는 것, 그 자체가 수행이고 계율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셋째, 나와 남이 모두 평안한 방향으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불교는 자신을 존중하듯 남을 존중하라고 가르칩니다. 건강한 관계는 성숙한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 계율을 보며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사음 계율은 우리에게 단순한 도덕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자비의 울타리입니다.
불교는 억압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불사음 계율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관계로 인해 후회하고, 상처받고,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 계율은 그러한 고통을 줄이고, 더 깊고 따뜻한 만남을 만들어가는 내면의 지혜를 길러줍니다.
맺으며
불교는 단지 혼자 산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공부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 마음 사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를 지키고 남을 배려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불사음 계율은 단지 ‘하지 말라’는 억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관계 속에서 나도 자유롭고, 상대도 존중받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불교적 해답입니다.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서로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욕망이 아닌 자비로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불사음의 참된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