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리기가 제일 힘들어요

by 현루

절집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수행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단연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불쑥 튀어나오는 내 마음 다스리기요."

그날도 평소처럼 법회 준비로 분주히 움직였고 법당 맨 앞, 스님 곁에 앉아 의식 집전을 챙기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서 누군가 절을 올리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인 채 염불책을 바라보려 했지만… 본능이라는 녀석이 문제였습니다.

법회나 행사 때 참석하시는 여신도 대부분 긴 법복 차림이나 바지를 입고 오시는데 관광차 왔다가 참석하는 여자분들 중 간혹 짧은 치마 차림의 여성분이 참석할 때가 있습니다.

절을 올리고 공손하신 건 좋은데…

어찌나 치마가 짧으신지 속옷이 훤히 보였습니다. 그것도 바로 제 눈높이에서요. 저는 정좌한 채, 자세를 고치려다 더 민망해질까 싶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산도 옮긴다더니, 저는 산은 못 옮기고 눈알만 돌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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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무념무상… 무념무상…" 주문처럼 되뇌었지만, 그런 건 TV 드라마에서나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내가 아직 한참 멀었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며칠 동안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내가 아직도 욕망에 이리도 휘둘리는가?' '출가까지 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용기를 내어 선원장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제가… 좀 부끄러운 고민이 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차를 따르시며 "그게 뭔데 그리 어깨를 움츠리나?" 하셨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그날의 상황을 설명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 스님은 잠시 정적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허, 그거야말로 출가자라면 한 번쯤은 겪는 관문이지."

그러시곤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욕망은 마주 보고 웃으며 지나가야지, 애써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억지로 참으면 더 커지고, 들여다보면 작아진다오. 그러니, 그 감정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수행의 재료로 삼아보게."

그리고는 '음욕을 다스리는 관법(觀法)' 몇 가지를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마음속 욕정을 적으로 여기기보다는 손님처럼 대하기로 했습니다.

"오셨습니까. 자리에만 앉으시고, 큰소리 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차 한 잔 대접하듯 마음속 욕망을 대하고 나니, 언젠가부터 그 불길은 점점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진짜 수행은 번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번뇌를 데리고 사는 연습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날의 짧은 치마는 저에게 참 긴 교훈을 남겼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절이다 보니 그 시절 KBS 대하사극 '태조 왕건' 촬영팀이 자주 들렀습니다. 배우, 스태프, 엑스트라까지 수십 명이 한꺼번에 오면 법당 주변은 북적였고, 촬영이 끝나면 청소는 늘 우리 행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처음엔 청소일이 너무 많아 투덜대기도 했지만, 김갑수, 김영철, 염정아 등 배우들이 수고한다고 건네주신 간식을 받으며 결국은 즐겁게 뒷정리를 했지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문신을 한 채 입산한 행자였습니다. 스스로 말하길, 충청도 유명한 조직 깡패였는데 어느 날 경전을 읽다 큰 깨달음을 얻어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께 출가 상담을 하고 마음을 굳혔다 했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마음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형, 동생 하며 서로 마음으로 의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행자실 분위기가 바뀌면서 그 뒤에 새로 입산한 행자들은 큰 탈 없이 잘 적응했고, 제가 사미계 수계를 받기 전까지 함께 일하며 공부하며 잘 지냈습니다.

절에는 선방이 있었습니다. 하안거와 동안거가 시작되면 전국 각지의 스님들이 입방 하여 참선을 하셨고, 그 시기에는 공양간이 더 바빠졌습니다. 발우 공양이 시작되면 정해진 의식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에, 식사 시간에도 행자들은 온몸으로 집중해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발우 공양을 배우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음식의 소중함, 나눔의 예의, 낭비 없는 식생활. 이 시대에야말로 발우 공양은 꼭 필요한 문화라 생각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일어난 해프닝도 하나 있습니다. 어느 겨울 동안거 시기였습니다. 한 신도님이 수행 중인 스님들을 위해 따뜻한 만두 공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미 행자실에는 만두가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고, 다들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두를 찌기 시작한 후, 그것이 '고기만두'라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순식간에 사찰은 술렁였고, 주지 스님과 선원장 스님 사이에서 팽팽한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먹을 수 없다"는 쪽과 "음식을 버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 맞섰고, 결국엔 후자의 손을 들어 모두가 감사히 먹자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저희 행자들은 정말 오랜만에 포식다운 포식을 했습니다. 그날의 만두는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불교에는 다양한 갈래가 있습니다. 남방불교, 북방불교. 규율과 수행 방식도 다릅니다. 한국 불교는 북방불교 계열로, 육식을 엄격히 금합니다. 그래서 고기 음식이 들어왔을 때 스님들 사이에서 그렇게 진지한 논의가 있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절집에 점차 정이 들었습니다. 매주 한 번 있는 교리 공부와 한문 학습, 염불 습의. 차츰 저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생활도 안정되어 갔습니다.

수많은 유혹과 갈등, 시행착오 속에서도 제 마음 한편에는 늘 "수행자답게 살자"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어느 짧은 치마 한 장과, 겨울 점심의 따끈한 만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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