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의 생활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떡과 과일, 나물, 두부를 정말 원 없이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법회와 행사가 유독 많았던 큰절이었던 덕분에 떡이며 과일은 늘 풍성했고, 두부와 버섯, 나물 반찬은 매 끼니마다 상에 올랐습니다.
특히 된장, 고추장, 간장은 절에서 직접 담그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 비법이 전수되어 만들어졌습니다.
그 맛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맛에는 단순한 양념 이상의 정성과 기운이 녹아 있었으니까요.
한 달에 두 번은 삭목일,
즉 삭발과 목욕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이면 찰밥과 나물 반찬, 간장으로 간을 맞춘 정갈한 국이 올라왔고, 종종 떡이 함께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강남 날라리 티를 벗어내기 바빴던 저였지만,
그런 정성 가득한 식사에 점점 절집의 기운에 스며들어 갔던 것 같습니다.
행자 생활을 일정 기간 채우면, 누구나 ‘행자 교육원’에 입방 하여 21일간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수 후 사미계를 받으면 비로소 예비 승려로 인정받게 됩니다.
저 또한 행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사 스님을 정해 교육원에 입방 신청을 하였습니다.
입방 전까지는 염불 연습과 승가 고시 준비에 몰두했습니다. 준비 기간 동안, 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입방일, 교무 스님과 함께 여러 말사에서 모인 행자들과 해인사로 향했습니다.
입방에 앞서 ‘갈마’라는 예비 심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신체검사와 간단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문신 유무, 건강 상태, 출가 동기 등에 대해 묻는 기본적인 절차였지만,
이 단계에서 불합격하는 행자들도 꽤 있었습니다. 함께 입방 했던 동료들 중 몇 명은 결국 그 자리에서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기수는 유독 많았습니다.
IMF 이후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 많았던 시기였고, 그래서인지 출가를 결심한 이들도 많았던 겁니다.
전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남녀 행자들이 해인사 행자 교육원으로 모여든 장관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입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혜민’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온, 학력도 인상 깊은 청년이었는데, 마침 저희 기수의 교육 과정을 MBC에서 다큐 형식으로 촬영하게 되면서 그가 인터뷰를 하게 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방송을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행자 교육원 생활은 정말 강도 높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새벽 예불, 매일 절 수행, 목탁과 요령
특히 매 끼니 발우 공양을 시행했는데, 마지막 설거지용 물속에 고춧가루가 남아 있을 경우,
그것은 수행의 일부였습니다.
위생보다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가짐, 그 자체를 훈련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토하는 행자도 있었고, 아예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뭐 대수인가’ 하며 잘 적응했습니다.
교육 기간 중 독감이 퍼지면서, 몇몇 행자들은 격리되거나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저 역시 심한 고열로 격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오히려 동료애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열을 내려주려 애쓰는 행자들의 손길은 말 그대로 ‘수행자의 따뜻함’이었습니다.
21일의 교육 중 마지막에는 ‘승가고시’가 있습니다. 불교 교리, 염불, 예불 등 전반적인 지식을 시험하는 자리인데, 60점 과락이면 수계식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몇 명은 이 시험에서 탈락하여, 다시 절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모두가 마음을 모아 응원했지만, 그것도 인연이라 여기며 보내드렸습니다.
수계 전날에는 ‘삼보일배(三步一拜)’가 있었습니다. 해인사 경내를 돌며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하는 수행입니다. 그때 진심으로 절했던 행자들의 이마는 다 벗겨져 피가 맺히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얄밉게도 흙만 살짝 묻은 정도로 형식적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의 진정성은 그런 데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계식 날. 엄숙한 의식 속에서
왼쪽 팔뚝에 향 자국을 찍는 ‘연비’를 받을 때,
저의 마음도 타오르듯 뜨거웠습니다.
“이제 진짜 이 길을 가는구나.”라는 다짐이 몸 전체를 감쌌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으며 웃는 얼굴 뒤에는 저마다 무수한 번뇌와 싸운 흔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 각자 다시 자신이 속한 본사나 말사로 돌아가게 됩니다.
저희 본사에서는 교무 스님이 25인승 버스를 몰고 오셔서, 함께 온 행자들과 다시 절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 점심 식사 시간. 근처 식당에 들른 우리 일행에게서, 아주 작은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