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계식이 끝났습니다. 행자교육원 수료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난 뒤, 버스에 오르며 저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가자로서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마침 인솔은 교무스님께서 맡으셨고, 함께 교육받은 도반 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귀사(歸寺) 길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해인사에서 출발해 국도로 운행 중이었습니다. 시간이 정오 무렵으로 접어들자 교무스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밥 먹고 가자.”
잠시 후, 버스는 한적한 시내 외곽에 멈췄습니다. 외관은 깔끔한 한정식집처럼 보였고, 우리는 조용히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유리문을 열자 풍겨오는 냄새가 낯설었습니다. 고소한 육향이 코끝을 자극했고, 입구에 걸린 메뉴판에는 ‘꽃등심’이라는 큼직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저를 포함한 몇몇 도반들과 눈빛이 오갔습니다.
그곳은 고깃집이었습니다.
아직 우리의 승복에는 수계식 때 묻은 향내가 가시지 않았고, 머리에는 삭발 자국이 생생했으며, 머릿속엔 계율의 조문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계율’을 더욱 또렷이 떠올리게 된 건, 아마도 단순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잠시 모였습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공기는 묵직했고, 누구 하나 장난스레 웃는 이도 없었습니다. 조심스레 의견을 나누며 결정을 내렸습니다.
“식사는 생략하고, 그냥 바로 절로 가자.”
정중히 교무스님께 다가가 말씀드렸습니다.
“스님, 저희가 잠깐 상의했는데요. 그냥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하고, 먼저 절로 돌아가겠습니다.”
교무스님의 얼굴에 짧은 당혹이 스쳤습니다.
잠시 후엔 살짝 언짢은 기색도 읽혔지만, 우리 쪽의 결심이 단호하다는 걸 느끼신 듯 더 말씀은 않으셨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우리는 식당에 앉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곧장 본사로 향했습니다.
교무스님의 뜻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수고한 사미승들에게 한 끼 잘 먹이고 싶으셨을 뿐이라는 것, 다들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계식을 막 마친 날의 선택은 그저 ‘한 끼’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본사에 도착하자 각자의 소속 사찰로 흩어졌고, 저는 본사 소속 행자였기에 그곳에 남아 어른 스님들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많은 스님들께서 덕담과 격려를 아낌없이 건네주셨고, 때로는 따뜻한 용돈도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이어서 은사 스님이 계신 암자로 향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에 따라 저는 그 암자에서 일정 기간 시봉 생활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암자에 도착하고 저녁 식사 상을 받았습니다.
상 위에는 여러 반찬들 가운데 고기와 생선이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수고했으니, 맛있게 먹자.”
은사 스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숟가락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갓 수계를 마친 제자에게, 은사 스님이 마련해 주신 첫 상차림이 고기반찬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너무나 충격이 컸습니다.
사실 은사 스님과는 오래 인연을 쌓아온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본사에서 지낼 때 몇 번 뵌 것이 전부였고, 행정적으로 지정된 은사님이셨습니다.
‘참 단정한 분’이라는 인상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게… 출가자의 밥상일까?”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습니다. 수계식을 마치고 도반들과 마음을 모았던 장면이 떠올랐고, 식당 문 앞에서 교무스님께 고개를 숙였던 순간이 스쳐 갔습니다.
그 결심은 어디로 갔나 싶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이 길이 맞는가’라는 질문이 맴돌았고, 급기야 ‘탈출’이라는 단어까지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이런 위기가 오히려 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예감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조차 공부의 일부라는 듯이. 그래서 결국 결심했습니다.
지금 바로 공부를 시작하자. 가능한 한 빨리.
조계종에서 비구계를 받으려면 사미계를 받은 뒤 최소 4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전통 강원, 기초선원, 혹은 동국대와 중앙승가대 같은 학교에서 수학하거나, 안거를 8회 이상 성만 해야 합니다.
저는 전통 강원을 택했습니다. 도시에서 멀고, 세속과 경계가 뚜렷한 곳이 필요했습니다.
강원은 교학을 중심으로 한 수행처였기에 지금의 제 마음엔 가장 적합해 보였습니다.
여러 군데를 수소문한 끝에, 한 전통 강원이 마침 입방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빨리 서류를 제출했고, 입방 허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그 시기, 은사 스님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속가 부모님께 인사 다녀오너라.”
사실 속마음으론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그 무렵, 잠시나마 낯익은 얼굴들을 보는 건 저에게도 위로가 될 터였습니다.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라 가족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아버지는 잠시나마 저를 자랑스러워하셨고, 동시에 약간은 애잔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평생을 절에서 보낼 제 앞날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려 애쓰시는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잠깐 외출할 때는 운동복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조심조심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필 동네 친구를 마주쳤습니다. 눈을 피하려 했지만 단번에 저를 알아봤습니다. 그리고는 카페로 데려갔습니다.
“야, 진짜 스님 된 거야?” “이건 안 퍼뜨릴 수가 없는데…”
그 친구의 입은 빠르기로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결국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이 빗발쳤습니다.
망설이던 끝에, 마지막 인사라는 마음으로 모임 장소 카페에 갔습니다.
예전에 단골로 다니던 곳이었는데, 들어서자 친구들이 이미 몇십 명은 족히 모여 있었습니다. 작은 환영회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탄산음료를 마시며 지금의 삶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했습니다.
그저 제 선택의 이유만을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미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속가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날 밤, 속가에서의 마지막을 마음 깊이 각인한 채 다음날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드디어 입방 허가가 떨어졌고, 은사 스님과 함께 전통 강원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행자 교육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도반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선배 학인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였습니다.
이전까지의 행자 생활은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강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공부, 도반과의 관계, 예기치 않은 깨달음과 회의…
다음 화에서 그 시작을 들려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