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떠나는 행자들

속세의 습관 끊기가 힘들더라

by 현루

이전 절에서의 행자 생활은 고된 소임과 엄격한 규율로 인해, 솔직히 딴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간 절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외형상으로는 크고 유명한 관광 사찰이었지만, 의외로 거주 스님도 많지 않았고, 직원이나 신도의 숫자도 적었습니다.

행자들에게 주어진 소임도 단출했습니다.

공양간에는 공양주 보살과 채공 보살이 상주하고 계셔서, 행자가 매 끼니를 책임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자연히 행자들의 주요 소임은 법당 관리, 사찰 청소, 공양 시간에 일손 보태는 정도로 줄었습니다. 체력적으로는 훨씬 수월했지만, 그만큼 마음이 허투루 흔들리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절에는 선방은 있었지만 학인 스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당 소임의 대부분을 행자들이 맡아야 했지요. 새벽 3시에 기상해서 법당 문을 열고, 다기물을 준비하고, 촛불과 향을 사르고, 도량석을 돌며 새벽을 깨우는 일. 법고, 운판, 목어, 범종까지, 사물 전체를 직접 다루며 새벽예불을 준비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법고를 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법고를 울릴 땐 온몸으로 울림을 느꼈고, 절 안이 아니라 마치 우주 전체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웅장한 그 울림이 가슴속까지 전해져서, 순간만큼은 제가 정말 "출가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면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했습니다. 싸리비로 쓸고, 화단을 정리하고, 복도에 쌓인 먼지를 닦고 화장실 청소. 봄이나 여름엔 그럭저럭 할 만했지만, 가을엔 하루 종일 낙엽을 쓸어도 끝이 없었습니다.

겨울엔 눈이 문제였습니다. 밤새 내린 눈은 싸리비로는 감당이 안 되었고, 손과 발로 밀어내며 치워야 했습니다. 손가락이 얼어붙듯 시릴 때마다, "이게 수행이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행자실 분위기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총 다섯 명이 함께 지냈는데, 40대가 둘,

30대가 하나, 그리고 20대는 저를 포함해 둘이었습니다. 나이도, 성향도 다르다 보니 초반부터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웃지 못할 일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두 명의 40대 행자는 자주 자리를 비우곤 했습니다. 처음엔 “몸이 안 좋은가 보다” 정도로 넘겼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들의 진짜 ‘행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매표소 주변에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고, 그곳에서 몰래 고기에 소주를 곁들이고 있었던 겁니다. 한 번은 저를 포함한 행자들이 함께 법고 연습을 하러 늘 가던 절 안에 있는 폐가에 갔고 연습을 하고 있는데 40대 행자 둘이 들어오면서 보쌈과 족발을

들고 왔고 함께 먹기를 권했고 저는 잠시

망설였지만, 한 점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그 맛이 참… 솔직히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고기의 풍미, 그걸 말릴 만큼 제 불심은 아직 단단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저는 두 번 다시 그런 자리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마음이 불편했고, 무엇보다도 제 자신에게 실망스러웠습니다.

역시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인가 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행자는 절에서 쫓겨났습니다. 술과 담배를 들킨 데다, 외부인과의 무단 접촉까지 확인되면서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행자가 “더는 못 하겠다”며 하산했고, 그다음엔 또 다른 행자가 내려갔습니다. 어느 순간, 저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외롭진 않았습니다. 그냥 “아, 떠나는구나. 힘들었겠지.” 하는 마음만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도, 친구도, 문화생활도 없는 환경. 하루 세 번 예불, 소임, 운력, 묵언.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는 너무 단조롭고, 때로는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행자가 입산했습니다. 키가 크고 덩치도 있었는데, 첫인상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나중에 목욕탕을 함께 갔을 때 문신이 어깨를 넘고 있었고, “혹시 조직에 있었던 사람인가…” 속으로 추측했습니다.

위탁 교육으로 은사스님이 정해져서 왔고 차후 문신 제거 수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의외로 그 청년은 조용했고 자신을 낮추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편, 제가 행자실에서 가장 오래된 행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행자 반장’이 되었습니다. 스님들께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신입 행자들에게 소임을 알려주는 역할도 맡게 되었습니다. 법당의 정리 상태, 청소, 불공 준비, 제사 준비 및 염불, 공양간 정돈까지… 행자실에서 대부분 도맡았습니다. 어른 스님들께선 종종 저를 상좌, 그러니까 제자 1순위로 점찍으셨습니다.

그즈음, 절 내 서점에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서점 한쪽에 앉아 경전이나 책을 펼치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여성 한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눈에 ‘참 단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정한 외모, 조용한 말투, 손에 들고 있던 『육조단경』. 묘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이러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이후 저는 종종 이유 없이 서점을 기웃거렸습니다. 말 한마디 건넨 적도 없지만, 그 서점에 갈 때마다 마음이 요동치는 걸 느꼈습니다. 그 요란함 속에서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건 뭘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자 생활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조금씩 요동치며 흘러갔습니다. 매일 9시에 취침, 새벽 3시에 기상. 매번 정해진 루틴 속에서, 마음의 파동은 점점 미세하게 조절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밀려오는 속세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건 고기가 먹고 싶어서도, 음악이 듣고 싶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와의 온기 있는 대화, 자유로운 말 한마디, 그런 소소한 것들이 그리웠던 것이지요.

그래도 그런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절은 가르쳐주었습니다. 견디는 법, 내려놓는 법, 그리고 바라보는 법.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