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계 수계
출가 후 처음으로 머물게 된 강원에서의 일상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규칙적이었습니다.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해 예불과 독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공양 후에는 학업과 울력, 포살, 취침으로 이어지는 생활이 반복되었지요.
평상시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식사를 했지만, 안거 기간 동안은 매일 발우 공양을 했습니다.
발우 공양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 그 이상이었습니다. 조용히, 감사히, 그리고 철저히 수행자의 태도로 먹는 그 식사는 수행의
연장이었고, 나라는 사람을 더욱 낮추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절에서는 다양한 행사와 법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각종 대중 법회나 신도들의 수계식, 큰스님 초청 법회 등에서 염불을 집전하거나 법회를 보좌하는 역할도 맡았고, 일요일이면 어린이 법회나 학생 법회의 지도법사 소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분주했습니다.
매 순간이 수행이자 일이었고, 일이자 또 공부였지요.
강원에서는 불교 교육과정이 치문, 사교, 사집, 대교로 나뉘며 학년이 정해져 있었고, 사용되는 교재는 대부분이 한문으로 된 경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문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옥편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곧 자신과 마주하는 인내의 시간임을 깨달아 갔습니다.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소풍이 있었고, 가끔은 축구나 족구도 하며 몸을 풀었습니다.
학인들과 함께 외출해 외식을 하기도 했는데,
행자 시절에는 생각할 수 없던 작은 자유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출가자’로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해 갔던 것 같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긍정하고, 다시 새롭게 구성해 가는 시간이었지요.
학업에도 점차 열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특히 3학년이 되면서 개인 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느꼈던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랫반 스님들과도 우애를 나누며 지냈고, 자연과 함께하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스며들었습니다.
마치 세속의 온갖 번뇌로부터 한 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었지요.
참선법을 배우고, 화두를 들며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나가던 시기였습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이며, 저는 조금씩, 분명하게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중물’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출가자의 본색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강원의 청년 법회에서는 종종 웃픈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학인 스님이 여대생과 눈이 맞아 어느 순간 사라졌고, 후에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다들 놀라면서도, ‘절도 사람이 모인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받아들였습니다.
절에서 환속하는 승려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대부분의 스님들은 그것을 크게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출가도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니, 환속 또한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그것이 항상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출가하는 자와 환속하는 자의 비율이 비슷해 승려 수는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듯했습니다.
요즘은 출가자가 많이 줄었다지만, 제가 출가했던 당시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매년 조계종만 해도 남녀 통틀어 200명이 넘는 인원이 전국에서 출가했고, 각 기수마다 꽤나 북적였습니다.
그렇게 4년의 강원 과정을 마치고, 김천 직지사에서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정식 승려가 되었고, 종단의 선거권도 부여받으며 수행자로서의 선택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그 후에는 선방을 다녔습니다. 100일 정진 기도도 했고, 때로는 전깃불 하나 없는 깊은 산속 토굴에서 홀로 지내며 수행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수행도 스스로 설계하며 다녔던 시기였습니다.
때때로 큰스님들께 공부를 검증받는 긴장감도 있었고, 어떤 때는 전국을 걸망 하나 메고 유랑하듯 다녔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절들, 화엄사, 선운사, 고운사, 해인사, 송광사, 마곡사, 통도사, 불국사, 범어사, 월정사, 법주사... 그리고 그 외 수많은 말사와 선방, 암자들. 그 궤적 하나하나가 지금의 저를 이루는 귀한 발자취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마음공부는, 이후 제가 장애를 입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수행자의 삶은 단기적으로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혹은 기도나 휴식의 목적으로 잠시 머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수행에 전념하고자 출가를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습니다.
반드시 먼저 절에 들어가 실제로 살아본 후 결정하라고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심만으로 출가해 입산하지만, 실제로는 10명 중 8명 이상이 행자 생활을 하다 자진해서 하산합니다.
또한 비구계를 받기 전까지 4년의 시간 동안 환속하는 이들을 숱하게 봐왔고, 그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출가’라는 삶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임을 알기에 더욱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획 없이 시작하게 된 브런치 북 연재 『날라리 출가하다』도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출가 전과 후, 그리고 비구계 수계까지의 여정을 담아내며 많은 분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화는 브런치북의 마지막 이야기로, 여러분께서 댓글로 남겨주신 질문을 바탕으로 구성해보려 합니다.
댓글은 월요일까지만 받고, 정리하여 마지막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가라는 독특한 여정을 통해 만난 이 소중한 인연들이, 여러분 각자의 삶에도 조용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