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출가하다 마지막 화

질문과 답변

by 현루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17년 동안의 승려 생활을 담아보면 좋겠다고 여겼지요.
하지만 막상 프롤로그와 1화를 쓰고 나니, 이슈나 이벤트가 거의 없는 단조롭고 반복된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를 10화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주에 예고드린 대로, 궁금한 점에 답변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몇 분이 질문을 남겨주셔서, 마지막 화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 글을 채워보려 합니다.


● 질문
스님이 되면 마음에 평정이 찾아오나요?

그런 분들이 정말 있으세요?

정말 삼법인을 깨달으신 분들이 있으신가요?

● 답변
많은 분들이 “스님이 되면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질 거다”라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출가했다고 해서 갑자기 번뇌가 사라지거나, 세상사에 아무 동요도 없는 초연한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가자는 세속을 떠났지만, 인간적인 마음과 습관, 성격은 그대로 가지고 출발합니다. 수행은 바로 그 마음을 다루는 일이고, 평정심은 꾸준한 훈련과 통찰을 통해 서서히 길러집니다.

출가 후에도 기쁨, 슬픔, 화, 서운함, 외로움 같은 감정은 그대로 찾아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힘’이 점점 생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화가 나면 바로 말과 행동으로 터뜨렸다면, 수행을 하면서는 “아, 내 마음이 지금 화로 물들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이 생기고, 그 틈이 커집니다. 그 틈이 바로 평정심의 씨앗입니다.

물론, 아주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꾸준히 계율을 지키고, 좌선·염불·경전 공부를 통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 스님들 중에는, 웬만한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분들이 계시죠. 그런 분들은 말과 행동에서도 힘이 느껴지고,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고요해집니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른 분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출가자들은 여전히 수행 중인 ‘수행자’ 일뿐입니다.

삼법인(諸行無常·諸法無我·涅槃寂靜)을 실제로 깨달으신 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깨달은 이가 있다”라고 전해 내려옵니다. 역사 속 고승대덕들, 혹은 지금 이 시대에도 깊은 수행을 통해 무상·무아·열반을 체득한 분들이 계신다고 합니다. 다만 ‘깨달음’은 외부에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본인조차도 그 상태를 언어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또 진정한 깨달음은 특별한 표식이나 신비한 능력보다는, 아주 일상적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범하게 앉아 계셔도, 그 말과 행동과 눈빛에서 이미 ‘법’이 드러나는 것이죠.

정리하자면, 출가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평정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꾸준히 수행하면 그 평정심이 자라날 가능성이 커지고, 그 길 끝에는 삼법인을 깊이 체득하는 경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숫자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여전히 수행의 길 위에 있습니다.


● 질문

속세(?)에서 불편함이 없는 생활을 하셨는데 틀림없이 흔들리는 순간들이 많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술 마시고 클럽 뛰고 그런 즐거움이 어떻게 포기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런 걸 여쭤보는 건 저도 몇 년 전에 재속회 수녀가 될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물욕이 너무 많아 이 생활 포기가 안되더라고요.


● 답변

사실 저도 출가 전에는 속세에서 평범하게 꽤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맛있는 거 찾아 먹고, 여행 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기분 내서 놀러 다니는 걸 즐겼죠. 그러니 출가 후에 이런 즐거움이 한 번에 ‘싹’ 사라진 건 절대 아니었어요. 오히려 처음엔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1. 포기라는 말의 진짜 의미

많은 분들이 ‘포기’라고 하면 “억지로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수행에서의 포기는 조금 다릅니다. 억지로 끊는 게 아니라, 경험과 통찰을 통해 “이게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 처음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절에선 고기를 못 먹으니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욕구가 잠깐 올라왔다가 그냥 사라지는 걸 보게 됩니다. “아, 없어도 살 수 있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오죠. 그게 포기입니다.

2. 즐거움과 행복의 구분

속세의 즐거움은 강렬하고 빠르게 찾아오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맛있는 음식 먹고, 좋은 술 마시면 분명 기분은 좋아집니다. 그런데 그 여운은 금방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되죠. 수행 중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행복을 맛봅니다. 소리 없이 앉아 숨을 고르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 뜨거운 차 한 잔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 해가 지는 걸 그냥 바라보는 순간 같은 것들입니다. 이건 자극은 적지만, 오래 남아요. 이걸 맛보기 시작하면, 자극적인 즐거움이 조금씩 덜 필요해집니다.

3. 흔들림과 마주하는 법

출가했다고 해서 마음이 항상 고요하진 않아요. ‘속세에서의 나’가 불쑥불쑥 고개를 듭니다. 그럴 땐 싸우지 않고, 그냥 그 마음을 바라봅니다.

“아, 지금 내가 옛날 생각이 나서 마음이 흔들리는구나.”
그렇게 알아차리면 그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억누르려고 하면 오히려 더 커지고, 인정하면 힘이 빠집니다.



4. 믿음보다 중요한 건 ‘실감’

재속회 수녀나 출가를 생각할 때, 처음엔 신앙적인 ‘믿음’이 동기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믿음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길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실감이 있어야 오래갑니다. 저도 수행 과정에서 그걸 조금씩 느끼면서, 예전의 즐거움보다 마음의 고요함과 단순함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5. 물욕과 수행

물욕이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누구나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건 인간의 기본 설정 같은 겁니다. 중요한 건 그 욕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내가 욕구의 주인인지, 욕구가 나의 주인인지’를 보는 거죠. 물건, 맛, 여행, 관계—all 좋지만, 그게 없으면 내가 무너지는 상태라면 힘들어집니다. 수행은 바로 그 균형을 찾아주는 과정입니다.

결국, 저는 속세의 즐거움을 억지로 버린 게 아니라, 다른 종류의 행복을 맛보면서 조금씩 자리를 바꿔 온 셈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건 없어도 괜찮다”라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 질문
첫째, 환속하시게 된 계기
둘째, 환속하시고 후회는 하지 않으셨나
셋째, 출가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씀
넷째, 마음의 평정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

넷째는 아마도 출가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답변
첫째, 환속 계기

절에서 갑자기 1차 뇌졸중이 있었고 치료에 전념하고자 하산해서 대학병원과 병원이 밀집된 곳에서 치료를 받고 산으로 돌아 가려할 때
2차 뇌졸중으로 장애인이 되어 본의 아니게
환속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환속하고 후회는 않았는지.

답변:본의 아닌 질병으로 환속하게 되어서 후회는 없었고 실망, 좌절, 그리고 극단적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과정을 통해 마음이 회복되었고 이렇게 글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출가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씀

출가를 결심하는 순간은 대개 깊은 내적 갈등이나 인생의 전환점에서 찾아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명확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출가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훨씬 복잡하며, 훨씬 사람 냄새가 진한 일상입니다. 그러니 저는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출가는 도망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마주함이라는 것을요. 세속의 관계와 번뇌를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출가한다면, 처음엔 숨통이 트일지 몰라도 곧 알게 됩니다. 그 번뇌는 사람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내린 것이라는 사실을요. 절집 안에서도 기쁨과 질투, 경쟁과 실망, 그리고 무수한 자기 의심이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버티고, 내려놓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없으면 오래 견디기 어렵습니다.

또한, 출가는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권유, 환경의 압박, 또는 일시적인 상처와 상실감 때문에 내린 결심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불만과 회의가 커집니다. 반대로, 수많은 이유를 내려놓고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단단한 중심을 세운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도 평온을 발견합니다. 출가는 단순히 불교 의식과 수행만의 세계가 아닙니다. 마당을 쓸고, 설거지를 하고, 장작을 패고, 신도와 대화를 나누는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닦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출가를 결심하기 전에, 세상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 보십시오." 세속의 삶 속에서 이미 참선하듯 마음을 다스리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며, 욕심을 줄여가는 연습을 해 보세요. 그 과정을 거친 뒤에도 여전히 ‘나는 이 길을 가야만 한다’는 확신이 남아 있다면, 그때 출가는 가장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마음의 평정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

마음의 평정을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믿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입니다. 평정이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평정을 ‘마음이 고요한 상태’라고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분노, 슬픔, 기쁨, 불안이 모두 올라와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가 평정입니다.

이 연습의 첫걸음은 ‘판단을 멈추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마음을 가장 먼저 흔듭니다.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판단을 내려놓고,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예를 들어, 차가 막혀도 ‘왜 이렇게 막히지?’라고 불평하기보다 ‘지금 차가 막히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 작은 전환이 마음을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둘째는 ‘호흡을 붙잡는 것’입니다. 마음이 요동칠 때,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이 호흡에 집중하는 겁니다.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숨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 보세요. 숨이 짧고 가빠지면 마음도 불안해지고, 숨이 길고 안정되면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비우는 습관’을 들이세요. 물건이든, 생각이든, 관계든, 너무 많이 쥐고 있으면 그 무게 때문에 마음이 쉽게 흔들립니다. 버릴 수 있는 건 버리고, 놓을 수 있는 건 놓으세요. 마음의 평정은 더 많이 쥐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비우는 데서 옵니다.

이 방법들은 출가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적용할 수 있고, 작은 습관부터 시작하면 놀라울 만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평정은 외부 상황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길러내는 힘이니까요.




질문

제가 궁금한 것은, 깊은 수행 체험 이후 이걸 현실에서 어떻게 녹여내며 살아야 하는지?입니다.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고는 하는데 뭔가 불충분한 느낌이랄까요. 함이 없이 하는 맛을 본 뒤, 함이 있는 걸 다시 보니까... 음. 치열하게 금연 캠프 갔다 와서 다시 흡연 시작하는 환자의 마음이 이럴라나 싶어요.

● 답변

깊은 수행 체험이라는 건, 마치 산 정상에서 새벽안개와 함께 맞는 햇빛 같은 순간이지요. 그때는 모든 게 맑고, 분별이 걷히고, ‘아, 이렇게 사는 거구나’ 하는 확신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 일상의 시장 바닥에 서면, 그 맑음이 서서히 흐려집니다. 소음, 사람, 일정, 욕심, 기대… 이런 것들이 서서히 마음에 먼지를 쌓이게 하지요.

그때 느끼는 허전함과 불충분함은 체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담는 ‘그릇’을 아직 단단히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깊은 수행의 순간은 강력한 번개 같은 것이어서, 순식간에 마음을 밝히지만, 그 빛이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 그 빛을 오래 켜두려면, 작은 불씨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저는 그걸 “체험을 구조로 옮기기”라고 부릅니다. 즉, 그때의 호흡, 그때의 마음가짐, 그때의 시야를 ‘습관’의 틀에 넣어 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수행 중에 함이 없는 순수한 호흡을 경험했다면, 그걸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5분이든 10분이든 되살리는 ‘루틴’을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체험은 점차 ‘기억 속 특별한 한 장면’에서 ‘몸이 기억하는 현재의 상태’로 변해 갑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함이 있는 것과 함이 없는 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연습입니다. 수행 중엔 함이 없는 맛을 보지만, 일상은 본질적으로 ‘함이 가득한 무대’입니다. 거기서 “이건 맑고, 저건 탁하다”라는 잣대를 세우는 순간, 마음은 금세 과거의 체험과 현재를 비교하며 괴로워집니다. 오히려 함이 있는 현실 속에서도 함이 없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수행의 성숙한 형태입니다. 즉, 커피를 마시면서도, 회의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족과 대화하면서도, 잠시 호흡에 머무는 거죠. 그게 되면 함이 없는 상태는 더 이상 ‘수행 중에만 가능한 특별한 영역’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스며드는 바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수행 체험은 ‘절정의 맛’을 보여주지만, 삶은 그 맛을 천천히 우려내는 과정입니다. 금연 캠프에서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회귀 현상입니다. 중요한 건, 다시 피우더라도 ‘아, 내가 왜 끊으려고 했는지’를 잊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잊지 않는 마음이, 언젠가 다시 맑음으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정리하자면,

1. 체험을 습관의 구조로 옮겨라 — 짧아도 좋으니 매일 반복되는 루틴으로.


2. 구분하지 않는 연습 — 함이 있는 현실 속에서도 함이 없는 태도를 유지.


3. 잊지 않는 것 — 완벽하게 이어가지 못해도, 체험의 향기를 마음속에 살려두기.



이렇게 하면, 그때의 빛은 일상의 먼지 속에서도 조금씩 배어 나와, 예전처럼 번개가 치지 않아도 은근한 등불처럼 계속 당신을 비춰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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