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떤 인연은 나를 바꾼다
인연은 단순히 만남이나 스침의 기록이 아닙니다. 어떤 인연은 스쳐 지나가듯 사라지지만, 또 어떤 인연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한순간의 충격으로, 때로는 서서히 스며드는 물기처럼 우리를 변모시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인연이란 결국 타인의 얼굴을 빌려 우리를 다시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때로는 그 확인이 너무 강렬하여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섭니다.
처음부터 생각해 봅니다.
‘나는 나’라는 말은 절대적 진리일까요?
우리는 스스로를 고유한 개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온 궤적을 되짚어 보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타인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말투, 익숙하게 택하는 가치관, 어떤 일에 웃고 어떤 일에 분노하는 방식까지도 사실은 수많은 인연의 잔여물 속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나라고 믿는 것이 실은 나 아닌 수많은 ‘너’들의 결합체일 수 있다는 사실. 바로 이 깨달음이 인연의 무서움이자 아름다움입니다.
인연이 나를 바꾸는 순간은 흔히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한마디 말이 나의 오래된 확신을 흔들기도 하고, 어떤 눈빛이 내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게 하는 인연도 있고,
내가 몰랐던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는 인연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쌓아온 자기 정체성이 한순간에 균열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균열은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인연이 우리를 바꾼다고 할 때, 그것은 외부의 강압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선택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변화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가능성이 언제 열리는가는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혹은 누군가의 삶을 보며 감응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인연은 내게로 흘러들어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완전히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연이 나를 바꾸는 힘은 결국 내가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달콤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인연은 나를 힘들게 바꾸어 놓습니다.
나는 원래 웃음을 잃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어떤 상처 어린 인연 이후로 쉽게 웃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순진하게 믿었는데, 배신의 인연을 겪은 뒤로는 사람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연이 나를 빼앗아 갔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 빼앗김조차도 결국은 나를 다시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내가 견뎌내야 할 고통이 나를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인연에 의해 가장 크게 변했는가?” 아마 각자 마음속에 즉시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스승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연인,
혹은 지나가는 낯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인연이 나에게 남긴 흔적의 크기입니다.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원치 않았던 변화라 할지라도,
그것은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인연의 변화는 물결과도 같습니다.
파도는 스스로를 만들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야만 물결이 일어나듯, 나라는 존재도 타인의 바람이 불어야 움직입니다.
그 바람이 잔잔할 수도 있고, 거세어 나를 휩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물결은 다시 해안에 닿아 새로운 모양을 그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인연이라는 바람 속에서, 매번 다른 물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체적인 물음이 뒤따릅니다. “나는 그 변화에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수용할 것인가?”
인연은 우리를 바꿀 수 있지만, 끝내 변화의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어떤 인연은 나를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어버릴 위험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인연에 흔들리면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연이 나를 변화시킨다고 해도, 그 변화의 최종적인 결정을 짓는 것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인연은 또한 시간 속에서만 이해됩니다.
어떤 만남은 그 순간에는 별것 아닌 듯 지나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반대로 그 순간에는 내 전부를 흔든 것 같던 인연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무게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나를 바꾼다는 말은, 결국 시간이 증명하는 일입니다.
변화는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연이 나를 바꾼다는 사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나는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간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수많은 인연이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결코 혼자서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수한 인연의 손길이 나를 스쳐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또 어떤 인연이 나를 바꿀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미지의 가능성이 바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