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경계에 서서
턱 앞에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기묘한 정적이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지만, 휠체어 바퀴를 움켜쥔 나의 오른손 주변으로는 진공 상태와 같은 고요가 내려앉는다.
이 정적은 물리적인 소음의 부재가 아니라, 내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의 결과다.
마비된 왼쪽 팔은 중력의 방향을 거스르지 못한 채 무겁게 아래로 늘어져 있다.
내 몸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는 그 생경한 무게감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침묵의 짐’과 같다.
왼쪽 발 역시 차가운 휠체어 발판 위에 붙박여 제 역할을 잊은 지 오래다.
오직 살아있는 나의 오른쪽 팔과 다리만이 이 고요를 깨뜨리고 나를 전진시킬 유일한 도구가 된다.
바퀴의 플라스틱 림(rim)을 꽉 쥘 때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감각은 매번 낯설면서도 명확하다.
그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의 중력장에 속해 있음을, 그리고 홀로 이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걷는 자들에게는 신발 밑창에 닿는 감촉조차 남기지 못할 미미한 높이지만, 좌측 편마비의 몸으로 휠체어를 밀어 올리는 나에게는 정교한 무게중심의 이동과 근육의 폭발적인 긴장이 응축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지점이다.
"도와드릴까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개 조심스럽고 따뜻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순간, 나는 턱이라는 물리적 장애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가파른 내면의 장벽과 마주한다.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채 차오르기도 전에, 이름 모를 당혹감이 먼저 고개를 든다.
이것은 혼자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유치한 객기일까, 아니면 평생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아왔던 과거의 관성이 만들어낸 거부 반응일까.
나는 멈췄던 동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잠시 갈등의 늪에 빠진다.
내 오른쪽 팔 근육은 이미 턱을 넘기 위한 최적의 긴장 상태에 돌입해 있고, 마비된 왼쪽 몸은 그 긴장을 지탱하며 위태롭게 중심을 잡고 있다.
타인의 리듬에 내 몸을 맡기는 순간, 내가 쌓아 올린 주체성은 잠시 유예된다.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에는 악의나 동정이 아닌, 그저 길 위의 행인으로서 건넬 수 있는 순수한 배려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배려를 수락하는 찰나, 나는 공식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의 범주 안으로 편입된다.
걷던 시절의 나는 언제나 손을 내미는 위치에 있었지, 내밀어진 손을 잡는 위치가 아니었다.
이 역할의 전격적인 전복은 눈앞의 턱보다 더 가파른 경사로 나를 밀어붙인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이들은 대개 힘차고 의욕적이다.
그들은 이 작은 턱 정도는 한순간의 반동으로 가뿐히 넘겨주려 하지만, 좌측 편마비인 나의 몸은 그 급작스러운 속도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뒤에서 가해지는 갑작스러운 추진력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나의 왼쪽 팔이 크게 휘청거리고,
발판 위의 왼쪽 발은 휠체어의 진동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요동친다.
밀어주는 이의 친절은 목표 지점을 향한 직선적인 힘이지만,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나의 몸은 곡선적인 저항을 일으킨다.
나는 내 몸의 주도권을 잠시 양도한 채, 그가 그리는 궤적에 나를 맞춘다.
턱을 무사히 넘고 난 뒤, 그는 밝은 인사를 건네며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다시 홀로 남아, 방금 일어난 짧은 소동의 여운을 오른손 끝으로 만져본다.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나의 목소리에는 늘 미묘한 미안함이 섞여 있다.
나의 느린 몸이 그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했다는 부채감, 그리고 그들의 친절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존엄이 그 미안함 속에 녹아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이 모든 불편함은 사실 ‘친절한 개인’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만약 이 도시의 도로와 건물들이 애초에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설계자가 배제한 자리를 개인의 친절로 메우려다 보니, 도움을 주는 쪽은 의도치 않게 시혜자가 되고 받는 쪽은 빚진 자가 된다.
이 불평등한 기하학 안에서 장애를 가진 몸은 자주 고립된다.
오른손 하나로 휠체어를 굴리며 다시 길을 나설 때,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네오는 손길을 무조건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오른쪽 팔의 근육이 한계에 다다라 비명을 지를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내 휠체어 손잡이에 닿는 그 감촉은 차가운 휠체어보다 훨씬 생생한 온기를 전해준다.
비록 내 몸은 반쪽의 감각을 잃었지만, 그 빈자리를 타인의 온기가 잠시 채워주는 순간, 나는 내가 이 거대한 세계에서 완전히 추방된 존재가 아님을 느낀다.
왼쪽 팔이 마비되어 늘어진 채로, 나는 오른손을 들어 나를 도와준 이의 뒷모습에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넨다.
그것은 턱이라는 장애물이 만들어준 기묘한 만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속도에서 비껴 난 자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짧은 교감들은, 내가 걷지 못하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얻게 된 새로운 삶의 감각이다.
턱은 여전히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의 오른쪽 팔은 내일도 고단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턱 앞에서 장애물만을 보지 않는다.
그곳에 고이는 시간과, 그 시간을 기꺼이 나누어 갖는 낯선 이들의 얼굴을 본다.
멈춘 자리에서 세계는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나는 그 낮은 목소리에 응답하며
다시 한번 오른손에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