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식탁 위의 예법
식탁은 본래 인간이 가장 평화롭고 대칭적인 활동을 벌이는 공간이다.
왼손으로 그릇을 가볍게 받쳐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놀려 음식을 입으로 나르는 행위. 이 평범한 협응(Coordination)은 건강한 자들에게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러나 좌측 편마비가 내 삶을 습격한 이후, 나의 식탁에서 ‘받침’과 ‘보조’라는 개념은 영영 퇴장해 버렸다.
이제 나에게 식탁은 즐거움의 장소가 아니라,
매 끼니마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독하고도 치열한 전장이다.
휠체어를 식탁 바짝 밀착시키는 것으로 전투는 시작된다.
나의 왼쪽 팔은 의지할 곳을 잃은 채 무릎 위에 무력하게 얹혀 있거나, 휠체어 팔걸이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
이 정지된 반쪽을 식탁 아래로 잘 갈무리하는 것 또한 남겨진 오른쪽의 숙명이다.
마비된 왼쪽이 식사 도중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지거나 균형을 잃지 않도록, 나는 오른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척추를 세운다.
이 준비 과정만으로도 이미 등줄기에는 미세한 긴장이 흐른다.
대칭을 잃은 몸으로 음식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일을 넘어 내 몸 안의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의 식탁 위에서 가장 비정하고 공격적인 존재는 역설적이게도 ‘매끄러운 접시’와 ‘둥근 밥공기’다. 젓가락으로 나물을 집으려 하거나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려 할 때, 고정되지 않은 그릇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가끔씩 반대편으로 미끄러져 달아난다.
걷던 시절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마찰력의 소중함과 양손의 위대함이 이 작은 식탁 위에서 뼈아프게 증명된다.
달아나는 접시를 쫓아 오른손을 필사적으로 뻗을 때마다,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양손잡이’의 편의에만 맞춰 설계되어 있는지를 혀끝으로 실감한다.
결국 나는 나만의 생존 예법을 터득했다.
무거운 도자기 그릇을 사용해 자중(自重)으로 미끄러짐을 방지하거나, 접시 아래에 젖은 행주를 깔아 강제적인 마찰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때로는 턱이 높은 그릇을 벽 삼아 음식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낚아채듯 집어 올린다.
이 눈물겨운 지혜는 결핍이 나에게 준 쓰디쓴 선물이다.
오른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젓가락을 교차시킬 때, 손아귀 근육은 휠체어 바퀴를 밀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정밀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한 손으로 해내는 식사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안에는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생명을 부양하겠다는 서늘한 자존심이 깃들어 있다.
시각을 잃은 자의 청각이 날카로워지듯, 한 손만 사용하는 나의 미각은 음식의 맛 이전에 그것의 ‘무게’와 ‘저항’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숟가락에 담긴 밥 한 술의 무게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오늘 나의 오른쪽 어깨가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젓가락 끝에 걸린 고기 한 점이 유난히 질기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의 집중력이 흩어지고 있다는 경고다.
나는 이제 음식을 혀로만 맛보지 않는다.
그것이 내 오른손에 가하는 물리적 압박과 내가 그것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이 세상의 모든 맛을 재정의한다.
마비된 왼쪽 몸은 이 풍요로운 대화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침묵한다.
왼쪽 입가로 혹시라도 국물이 흐르지는 않을지, 씹는 근육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나는 수시로 오른손을 들어 확인해야 한다.
감각이 없는 쪽의 입술은 온도를 느끼지 못해 종종 화상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 반드시 오른쪽 입술에 먼저 살짝 대어 온도를 가늠한다.
이 비대칭적인 식사법은 나에게 음식이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연료가 아니라, 매일 삼시 세끼 치러야 하는 신성하고도 고통스러운 의식임을 일깨워준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나의 한 손은 더욱 분주해진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혹은 나의 장애가 그들의 즐거운 식사 시간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오른손을 놀린다.
하지만 그 서두름 끝에 그릇을 엎지르거나 음식을 흘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나면, 깊은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럴 때 나는 차라리 고립을 선택한다.
혼자만의 식탁에서 나는 비로소 ‘느림’이라는 사치를 누린다.
한 손으로 사과 껍질을 깎을 수 없고, 한 손으로 생선의 가시를 완벽하게 발라낼 수는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담담히 인정하는 법을 이 식탁 위에서 배웠다.
"도와줄까?"라는 타인의 제안에 무조건적인 거부 대신, 내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최대한의 우아함과 예의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 세상의 모든 배려는 결국 서로의 빈틈을 발견하고 그 간극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이 고요한 식탁 위의 투쟁을 통해 깨달았다.
한 손으로 식사하는 남자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비참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빈 그릇들이 놓인 식탁을 바라볼 때, 나는 이름 모를 승리감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혹은 최소한의 도움만으로 내 생명의 허기를 채웠다. 비록 왼쪽 팔은 여전히 정지된 채 시간이 멈춰 있지만, 나의 오른손은 그 정지를 보상하듯 더욱 활기차게 움직이며 뒷정리를 시작한다.
행주를 쥐고 식탁을 닦는 오른손의 움직임은 마치 전장을 정리하는 장수의 뒷모습처럼 경건하다.
나의 삶은 어쩌면 한 손으로 차려낸 소박하고 기우뚱한 밥상과 같다.
남들 같은 화려한 대칭이나 완벽한 조화는 없어도, 오직 남겨진 한쪽의 힘만으로 정성스럽게 빚어낸 하루하루가 그 위에 놓여 있다.
나는 이 비대칭의 식탁을 이제는 사랑한다. 이곳에서 나는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의 맛을 배우고, 가장 높은 의지로 내 몸의 한계를 응시하기 때문이다.
내일의 식탁 역시 도망가는 그릇과의 싸움으로 시작되겠지만, 나는 나의 단단해진 오른손을 믿으며 다시 젓가락을 들 것이다.
그 젓가락 끝에 걸린 것은 고작 음식 한 점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나의 영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