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화장실의 부재

무너진 자존의 기록

by 현루

​내가 외출을 꺼리는 이유는 단순히 휠체어를 밀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나의 지도는 맛집이나 명소가 아닌 ‘장애인 화장실’의 위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걷는 자들에게 화장실은 어디에나 있는 공기와 같은 존재지만, 나에게 화장실은 외출의 성패를 가르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외출 전, 나는 방문할 건물의 층별 안내도를 이 잡듯 뒤진다. 장애인 화장실 유무를 확인하지 못한 장소는 나에게 금단의 구역이다.
​세상은 나에게 외출 시 늘 묻는다.

"오늘 외출 시 배설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 머릿속은 이미 방광의 압력과 화장실의 거리를 계산하는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 찬다.

이 긴장감은 즐거워야 할 외출을 하나의 생존 미션으로 변질시킨다.

때로는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해 나는 다시 집이라는 안전한 감옥으로 숨어든다.


문 밖의 세상은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 같은 몸을 가진 이들을 거부하는 차가운 대리석 벽들이 버티고 서 있다.


문턱 뒤에 숨은 절벽, 그리고 첫 번째 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환측 통증만큼이나 선명하다.

장기간 입원하다 퇴원하고 활동지원사 서비스 신청하고 승인을 대기하고 있던 중에 볼일이 생겼다.

분명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는 표시를 지도로 알고 찾아간 건물이었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화장실 문 앞에는 휠체어가 넘을 수 없는 5cm의 턱이 버티고 있었고, 문은 좁아서 휠체어가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간신히 들어갔는데 장애인 화장실이라는 이름표를 달고서 청소 도구함으로 쓰이고 있는 좁은 공간에서 난감해하며 어떡하든 자리를 확보하고자 애쓰던 중 그만 실수가 터져 나왔다.

참으려 애썼던 방광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옷이 젖어들기 시작했을 때, 나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마비된 왼쪽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살아있는 오른쪽은 그 비참한 온기를 실시간으로 읽어냈다.


축축하게 젖어드는 바지와 휠체어 시트, 그리고 주변의 공기를 타고 흐르는 묘한 냄새.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한 수치심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지켜온 마지막 보루가 무너졌다는 거대한 자괴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휠체어를 돌려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거워진 바지는 나를 바닥으로 끊임없이 끌어내렸다.


나를 잃어버린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길었다.

사람들의 평범한 눈길조차 내 젖은 바지를 향한 비난처럼 느껴졌고, 휠체어 바퀴를 구르는 오른손은 수치심으로 떨렸다.

집에 돌아와 마비된 왼쪽 다리를 씻어내며, 나는 짐승처럼 울었다.

감각이 없는 다리는 여전히 무심하게 뻗어 있었고, 나는 그 다리를 닦아내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이 자괴감은 며칠 동안 나를 침대에 가두었다.

밥을 먹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신체의 자유를 잃은 것도 모자라, 가장 기본적인 생리 현상 앞에서 무력해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의 휠체어에 걸쳐진 외출 가방에는 늘 여벌의 옷과 비닐봉지가 들어차게 되었다.

그것은 준비성이 아니라, 다시는 그 비참한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겠다는 절박한 방어기제였다.

화장실의 부재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자존을 난도질하는 폭력이었다.


​재가요양사와의 동행, 그럼에도 남는 그림자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방문요양 승인이 났다.

이제는 재가요양사가 나의 외출을 돕는다.

그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화장실을 찾기 위해 앞장설 때 나의 육체적 고통은 분명 줄어들었다.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장실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당황할 일은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든든한 조력자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요양사의 손을 빌려 화장실 문턱을 넘고, 가끔은 그의 도움을 받아 옷정리를 해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나의 '의존성'을 재확인한다.

그는 직업적 소명으로 나를 돕지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타인의 손길이 닿아야만 비로소 해결되는 생리 현상은 나에게 또 다른 형태의 굴레다.

요양사와 함께하는 외출은 안전하지만, 동시에 내가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존재임을 매 순간 일깨워주는 아픈 거울이기도 하다.

세상은 나아진 듯 보이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건물 앞에서 요양사와 함께 쩔쩔매는 상황은 여전히 빈번하다.


이 세상에 던지는 무거운 질문


​장애인 화장실의 부재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민낯이다.

화려한 외벽과 첨단 엘리베이터를 갖춘 건물조차, 가장 낮은 곳의 화장실에는 인색하다.

나는 묻고 싶다.

대부분 누리는 그 당연한 평범함이 누군가에게는 사투 끝에 얻어내야 할 특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나의 자괴감은 단순히 내 신체의 장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려하지 않은 이 세상의 설계에서 온다.
​나는 요즘도 외출을 앞두고 지도 앱을 켠다.

그리고 익숙한, 하지만 여전히 낯선 장애인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한다.

요양사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서는 나의 오른손은 긴장으로 림을 꽉 움켜쥔다.


다시는 그 비참한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를, 오늘 마주할 화장실의 문은 휠체어를 거부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말이다.


앉은키 높이에서 내가 바라는 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 편히 볼일을 보고, 젖지 않은 바지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이 보장되는 세상이다.